[구약 성경 다시 읽기] 갈라진 믿음, 갈라진 백성 “주 저의 하느님,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어느 누가 이렇게 큰 당신 백성을 통치할 수 있겠습니까?”(1열왕 3,7-9 참조) 열왕기는 어떤 책인가 열왕기(列王記)는 다윗의 말년과 죽음을 시작으로, 솔로몬의 통치 시대(B.C. 975-935년)와 남·북왕국 시대, 북이스라엘의 멸망(B.C. 722년)과 남유다의 멸망(B.C. 587년), 남유다 임금 여호야킨이 바빌론의 감옥에서 석방된 때까지(B.C. 561년) 약 400여 년간의 역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열왕기를 읽다보면 우리는 자연스레 이스라엘이 평화와 번영을 누렸던 때와 전란에 휩싸여 고통을 겪었던 때, 이 두 상이한 시대에 주목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운명은 ‘임금들이 하느님과 그분의 말씀에 충실했던가’, 또 ‘백성들이 예언자들의 질책과 경고, 회개의 요구에 진심으로 응답했던가’에 달려 있었음을 확인하게 되지요. 그렇게 열왕기가 전해주는 임금들과 백성의 모습에 지금 나의 모습을 포개어 비추어 보면, 내가 가야 할 길이 분명하게 보이곤 합니다. 솔로몬 시대의 명(明)과 암(暗) 솔로몬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지혜로웠던 임금으로서, 자신의 이름(샬롬: “평화”)처럼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부를 이루어 태평성대를 가져온 인물입니다. 다윗의 뜻을 이어받아 성전을 건축하고 잠언과 노래를 수천 편이나 지었으며, 탁월한 외교력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강력한 왕권으로 중앙집권 국가를 이루어낸 위대한 임금이지요. 그러나 신명기계 역사가는 이러한 찬란한 업적을 이룬 솔로몬을 냉정하게 평가하면서, 남북 왕국이 분열된 탓을 그에게로 돌립니다.(“내 계약과 내가 너에게 명령한 규정들을 지키지 않았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너에게서 떼어 내어 너의 신하에게 주겠다.”: 1열왕 11,9-11.31-37 참조) 그토록 지혜로웠던 솔로몬의 잘못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우선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는 과정부터가 폭력과 살육을 통한 반대파 숙청(아도니야, 에브야타르, 요압, 시므이: 2,13-46)에 의한 것이었는데, 이는 하느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했던 야곱의 일화(창세 27장)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후 그가 벌였던 대규모의 건축사업은(성전공사 7년, 궁전공사 13년) 하느님께서 이집트에서 구해내신 백성의 삶을 다시 노예처럼 만들어버렸고,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그가 맺었던 수백 명의 이방 여인들과의 정략혼인은 왕국 내에 이교 제사들을 유입시켰으며(1열왕 3,1-3; 11,1-8), 전통적인 열두 지파 간 협력 체계를 무시한 중앙집권 체제는 대다수 북부 지파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습니다. 예, 맞습니다. 남북 왕국 분열의 원인은 분명 솔로몬에게 있었습니다. 솔로몬, 대다수의 임금들처럼 악한 임금인가 이러한 솔로몬의 행적들은 하느님께 오롯이 충성하지 못했던 것으로 평가받기도 하지만(“그는 자기 아버지 다윗과는 달리, 나의 길을 걷지 않고 … 나의 규정과 법규를 지키지도 않았다.”: 1열왕 11,33) 그렇다고 그를 여느 임금들과 같은 나쁜 임금으로 볼 수 없습니다. 젊은 시절 솔로몬은 분명 하느님께 장수도 부귀영화도 아닌 ‘백성을 올바로 다스리는 지혜’(“듣는 마음”)를 청하고(3,4-15) 백성을 위해 마음을 다하여 기도했던 임금이었고(8,22-61) 무엇보다 그가 말년에 쓴 작품이라 전해지는 코헬렛은 ‘권력과 향락으로 가득했던 감각적인 삶이 결국엔 허무에 불과함’을 깨닫고 가슴을 치며 고백하는 그의 참회록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오직 백성을 위한 지혜만을 청하며 겸손되이 기도했던 솔로몬, 온 힘을 다해 성전을 지어 하느님께 봉헌하고 수천 편의 노래를 지어 백성과 함께 그분을 찬미했던 그가 말년에 인생의 허무함을 깨닫고 하느님께 신뢰를 고백하는데 온 마음을 다했다면, 결국엔 그가 모든 과오를 뉘우치고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했음을 어찌 의심하겠습니까. 나약한 인간으로 치기 어린 잘못들을 범했지만 그대로 주저앉지 않고 하느님께로 돌아섰던 그 모습이 어찌 그리도 아버지 다윗을 쏙 빼닮았을까 싶습니다. 남북 왕국의 분열 솔로몬이 죽고 난 뒤, 부역 총감독이었던 예로보암은 지나친 부역과 세금 문제와 북쪽 지파에 대한 차별 등 여러 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해 온 백성과 함께 솔로몬의 아들 르하브암 임금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내 새끼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소. 내 아버지께서는 그대들을 가죽 채찍으로 징벌하셨지만, 나는 갈고리 채찍으로 할 것이오.”(1열왕 12,10-11)라는 답변밖에 듣지 못했지요. 르하브암은 자신의 눈과 귀를 가리는 젊은 조언자들에게 휘둘려 백성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한 채 오히려 그들을 겁박했고, 실망한 예로보암은 자신을 따르는 열 지파(유다와 벤야민 지파 외)를 이끌고 북이스라엘을 세워 갈라져 나갑니다. 하나였던 나라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그렇게 두 나라로 갈라지게 되는데, 이는 하느님께서 진작부터 아히야 예언자를 통해 말씀하신 그대로였습니다.(11,26-40) 아집과 교만, 무뎌진 현실 감각으로 백성의 아픔을 헤아려 올바로 응답하지 못하는 지도자의 어리석음은 귀한 하느님의 백성을 양 갈래로 찢어놓고 맙니다. 북이스라엘 북이스라엘의 초대 임금 예로보암은 원래 아히야 예언자를 통해 하느님께 큰 축복을 받았던 인물입니다.(“내가 다윗에게 세워 준 것처럼 너에게도 굳건한 집안을 세워 주고, 이스라엘을 너에게 주겠다.”: 1열왕 11,38) 그러나 그는 임금이 되자마자 남유다의 예루살렘 성전을 의식하여 베텔과 단에 금송아지를 하나씩 두고 산당들을 짓고 일반 백성을 사제로 임명하는 등(12,26-33) 전통적인 신명기 사상(한 분이신 하느님, 하나의 성소, 율법과 관습의 준수 등)을 훼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북이스라엘은 이후 한결같이 종교 혼합주의에 빠져 쉽게 바알 신앙에 젖어들었고 이방 민족의 풍속을 따라갔습니다. 하느님을 저버린 백성에게 평화와 안정은 있을 수가 없지요. 겨우 200여 년의 역사 동안 아홉 개의 왕조, 19명의 임금들이 피와 칼부림 속에 세워지고 쓰러지는 혼란의 시대가 뒤따랐습니다. 그 중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임금은 단 한 명도 없지요. 북이스라엘 임금들의 가장 큰 죄는 하느님께 대한 불충과 우상숭배를 일삼으며 백성들까지도 같은 길로 인도했던 잘못이었습니다. 예언자들(엘리야, 엘리사, 호세아, 아모스 등)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거부하면서 말이지요. 그렇게 살아가던 북이스라엘은 결국 B.C. 722년 아시리아 제국에게 멸망하게 됩니다.(2열왕 17,7-23) 남유다 다윗과 솔로몬의 계보를 잇는 남유다는 350여 년간 단일한 다윗 왕조를 유지하며 20명의 임금들이 통치했습니다. “유다도 주 저희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이스라엘이 만들어 낸 풍속을 따랐다.”(2열왕 17,19)라는 역사가들의 평가처럼, 안타깝게도 남유다 역시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지만은 못했습니다. 남북으로 왕국이 분열된 뒤 르하브암이 조상 다윗의 덕행을 오롯이 따라 살아간 것은 고작 3년이었고(2역대 11,17) 이후 남유다는 종교 혼합주의에 빠져 우상 숭배에 현혹된다든지, 하느님이 아니라 주위의 강력한 국가들에게 의존하는 모습을 취하면서 점차 본모습을 잃어 갔습니다. 그렇지만 열왕기를 읽다보면, 우리는 남유다의 역사 안에서 밤하늘 별과 같이 빛났던 임금들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히즈키야(B.C. 715-687년)와 요시야(B.C. 640-609년) 임금입니다.(집회 49,4 참조) 히즈키야는 즉위하자마자 산당과 우상을 없애 성전을 정화하고 평생 계명들을 충실히 지켰던 임금으로(2역대 29-31장), “그의 앞뒤 임금들 가운데에서 그만 한 임금이 없었다.”(2열왕 18,5 참조)는 후대의 평가를 받는 임금입니다. 주변의 모든 나라들이 아시리아에게 굴복할 때 그는 아시리아에 맞섰는데, 이는 결코 정치, 군사적 능력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오직 하느님께만 의지했을 때 하느님께서 천사를 보내 아시리아의 대군을 직접 물리쳐 주셨던 일화는 잘 알고 계시겠지요.(18,13-19,37) 이후 히즈키야가 죽을 병에 걸렸을 때 하느님께서 그의 기도를 기꺼이 들어 치유해 주셨던 이야기도 말입니다.(20,1-11) ‘믿기는 하지. 그래도 그게 믿는다고 되는 일이야?’ 하며 불신 속에 현실적인 대안만을 찾던 대다수의 임금들과는 달리, 히즈키야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느님께 의탁했기에 그분께서 맡기신 백성을 잘 인도해 낼 수 있었습니다. 요시야 역시 히즈키야와 마찬가지로 훌륭한 임금으로 손꼽히는 임금입니다.(23,25) 요시야는 성전을 보수하며 발견한 율법서를 백성들 앞에서 봉독하면서 하느님과 새롭게 계약을 맺게 하고(23,1-3)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통해 순수한 야훼 신앙을 회복했습니다. 그러나 이후의 임금들은 하나같이 조상들의 죄를 반복하며 하느님께로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B.C. 587년 남유다는 바빌로니아 제국에게 멸망하게 됩니다. 그렇게 왕국시대가 끝나고, 이스라엘 백성은 약 50여 년간의 유배 시대를 맞이하게 되지요. 열왕기가 주는 교훈 과거 역사 속에 존재했던 어느 나라도 영원하지는 못했습니다. 우리의 삶이 길어야 8~90년이듯, 나라도 수명이 있게 마련이지요.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저 생겨났다 쪼개지고 사라져간 여느 나라의 이야기와는 달리,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살아갔던 우리 신앙 선조들의 역사이며 지금의 우리 삶을 그대로 비춰주는 ‘구원의 거울’입니다. 열왕기는 하느님과 함께한 구원 역사의 주인공으로 임금들을 꼽으며 그들의 공과(功過)를 밝힙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백성을 망치고 분열과 고통 속에 빠뜨린 것을 오직 임금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임금 곁에서 듣기 좋은 말만 하며 제 밥그릇을 챙기던 거짓 예언자들, 본질을 잃어버리고 외형적인 예배 의식만 고집하던 사제들, 하느님은 제쳐두고 의지할 만한 다른 무언가를 찾으면서 믿음을 잃어가던 백성, 거기에다가 그런 하느님 백성을 무너뜨리고 제 욕심을 채우려는 주변 세력들까지,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어지럽히고 거부했던 책임은 그들 모두에게 있습니다. 열왕기를 읽는 우리는 그들의 어리석었던 모습이 혹여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모습은 아닌지 진심으로 경계하며 살펴야 합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주시는 확신과 평화를 누리던 삶을 잊어버리고, 채 한줌도 되지 않는 무언가를 놓쳐버리지 않으려고 지난 과오에 얽매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으로 그저 망해가던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가 우리에게 반복되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다윗과 솔로몬, 히즈키야와 요시야, 우리보다 앞서 구원의 길을 갔던 이스라엘의 성왕들이 우리에게 손짓합니다. 현실을 회피하고 우유부단한 자세로 가진 것을 지키려고만 하지 말라고, 생채기가 나는 것을 두려워 말고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 안에서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마련해 두신 구원의 “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월간빛, 2018년 10월호, 강수원 베드로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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