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묻고답하기

제목 카인은 무엇을 잘 못했을까? 카테고리 | 성경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1-20 조회수449 추천수1 신고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카인과 아벨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며 깊이 묵상하며 풀어나가야 할 아주 중요한 숙제라고 묵상해 봅니다. 어쩌면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깊게 볼 수 있는 대목은 아닐까하고 생각해 봅니다.
성경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말씀이므로 이것이 답이다라고 한가지로 답을 하기 어려운 부분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삶의 모습이 다양한 만큼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다가와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 성경공부와 묵상의 이유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카인과 아벨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에 대해서는 문경준 형제님께서 해 주셔서 저는 다른 관점에서 제가 묵상한 내용을 나누려고 합니다.

카인과 아벨에 대한 사회학적 해석은
하느님께서는 농경민(카인)보다 유목민(아벨)을 더 돌보아 주신다.
하느님께서는 부를 축척하기 힘들었던 유목민을 약자로서 더 편들고 계신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렇게 배웠습니다.

저는 이러한 신학적 해석도 아닌 제가 삶 안에서 묵상한 내용을 나누려고 합니다.

저는 먼저 성경은 왜 카인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말하지 않는가에 대해서 묵상해 보았습니다.
굳이 가르쳐주지 않는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름대로 묵상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성경이 말하지 않는 이유는 그 만큼 중요하다는 말씀이라고.
말하지 않으니 곰곰히 생각해 보겠지요?

그렇다고 답이 없는 것도 어려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히려 나름대로 답이 너무 쉬워서 그것이 답임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항상 인생의 답을 어렵고 또는 특별함에서 찾아 헤메지만 사실 인생의 답은 아주 평범함 안에 있음을 보았습니다.
또한 너무 평범하고 쉬워서 그것이 답인지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선 카인이 화를 낸다는 사실부터 나누어 보겠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하느님의 처사에 화가 났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화가 난다는 것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에 만족스럽지 않을 때입니다. 그렇다면 카인이 만족하지 못한 것이 무엇일까?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어 에덴동산에서 쫒겨난 이후의 사건으로 아담과 하와가 어떻게 해서 하느님과의 관계가 단절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사건이라면 카인과 아벨 이야기는 하느님과 관계가 단절된 인간이 무엇때문에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단절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사건인 것입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 단절은 사실 지나친 욕심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애정)이든 물질적이든 말입니다.
먼저 애정의 욕심에서 보자면
카인은 어떤 이유에서든 하느님이 자신의 동생을 더 사랑한 것에 기뻐해야 하는 사람임을 말해주고 싶은 것입니다.

자신의 친동생이 누군가에게 자신보다 더 사랑받는 것을 인간이 기뻐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은 이웃이 자신보다 더 잘 되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느님과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며 다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적어도 이웃이 하느님의 사랑을 나보다 더 많이 받고 있다고 느끼면 그가 나라고 생각하고 기뻐할 수 있을 때에 행복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요?

또다는 관점에서 바라본 인간의 문제는 제물에 관해서 입니다.
제물을 바치는 여러가지 이유가 성경에 제시되고 있습니다.
주로 감사해서 바치는 제물과 죄를 지어 용서받기 위해서 바치는 제물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절대로 없는 것이 있는데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서 바치는 제물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무상으로 주시지 인간에게 무엇을 받으시고 그 제물의 가치를 보고 인간에게 무엇을 주시는 분이 아니심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아벨은 베풀어주신 은총에 감사하는 제물을 드렸다면 제 생각에 카인이 드린 제물은 목적이 있는 제물로 드렸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어쩌면 아벨의 제물보다 더 훌륭한 제물을 드렸을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이치에 맞는지는 모르지만 카인과 아벨 당시에는 아직 하느님께서 동물을 먹으라고 허락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허락하지 않은 상태라면 그다지 중요한 상태는 아니라고 생각 됩니다.

그렇지만 아벨의 생각은 이랬을 것입니다.
비록 하느님께서 먹으라고 허락한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 아니더냐? 그러므로 주님의 것을 주님께 정성을 다해 드린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제물의 의미입니다.

반면 카인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모든 것(땅의 소출을 먹을 것을 허락하심 창세 1,29 참조)을 먹도록 허락하셨는데 그의 마음 안에는 욕심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욕심에서 드리는 제물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물이 아니고 뇌물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가장 역겨워 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것이 다 당신의 것인데 무엇이 필요하셔서 인간에게 제물을 원하시겠습니까?
우리 민족 신앙(무속신앙) 안에서 보면 인간이 제물을 바치는 경우가 어떤 때입니까? 그들이 말하는 천지신명께 감사해서 바치는 것이 아니라 천지신명이 자신이 드리는 제물을 보시고 복을 내려 달라고 바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뇌물인 것입니다.

뇌물은 어떤 것입니까?
뇌물은 바치는 어떤 것이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것을 신에게 드리며 내가 이것을 드리니 당신은 나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십시오하는 것이 아닌지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서 바치는 것?

사실 거의 많은 사람들의 마음 안에 이런 카인의 마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벌었으니 내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지 않습니까?
주님의 것이라면 주님께 드리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봉헌하고 있는지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드린 제물이 이웃이 드린 제물보다 더 멋지고 값진데 나보다 보잘 것 없는 제물을 드린 동생(불쌍한 사람 내지는 동생의 개념에는 내가 돌보아줄 사람)이 하느님의 축복을 나보다 더 받는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단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곧 네가 하느님과 관계가 회복된 사람이라면 하느님을 사랑할 것이며 또한 너는 형으로써 네 동생을 잘 돌보아줄 것이다. 카인이 자신의 입으로 한 고백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를 실천할 것입니다.
왜 우리가 형이겠습니까?
주님을 그들보다 먼저 만났기에 형인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카인이 아벨을 칼로 찔러 죽였다고 생각하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카인은 자기 아우에게 덤벼들어 죽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세상을 돌보라고 만들어 주신 손으로 형제의 목을 조른 것입니다. 우리가 어렵게 생각하지만 형제의 목을 조르는 것은 아주 작은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카인과 아벨을 통해서 묵상할 수 있습니다.

내 생각만 하고 사는 것, 내 행복만 생각하고 사는 것은 아닐까요?

부족한 저의 묵상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묵상방이 아닌데...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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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업 (rlawhddjq) 쪽지 대댓글

    탁!~~요건요 내가 무릎을 칠때 내는 소립니다요.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이러한 지혜를 주신 하느님은 찬미 받으소서. 제가 의아했던것, 궁금했던것이 여기서 봄눈 녹듯합니다. 제일 기분 좋은 아침이네요. 거듭 하느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리며 글라라님 바쁘신 가운데도 사랑을 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살롬!살롬!살롬!

    2012-01-20 추천(0)
  • 김종업 (rlawhddjq) 쪽지 대댓글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 5:44-48)

    2012-01-20 추천(0)
  • 이정임 (kr3217) 쪽지 대댓글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감사합니다. 바로 그 말씀을 살아내기 위하여 우리가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고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며 묵상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어제 공부하며 저를 만나주신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묵상하고 있습니다.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어라."하신 말씀을 통하여 저도 방주를 만들라고 하십니다. 신앙인과 비 신앙인의 차이는 주님께서 방주를 만들라는 명령에 순종하고 만드느냐 만들지 않느냐는 아닐까요? 결국 그 방주는 나 혼자만 들어가지 않습니다. 세상 만물을 품을 수 있는 방주를 우리는 만들어야 합니다. 노아에게 전나무를 주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주셨으니까요. 형제님 함께 방주를 만들어요

    2012-01-20 추천(0)
  • 이정임 (kr3217) 쪽지 대댓글

    노아의 가족들이 함께 만들었듯이 우리 함께 만들어요. 우린 주님 안에서 한 솥밥을 먹는 가족이니까요! 샬롬(사랑합니다. 행복하세요. 주님이 원하세요!)

    2012-01-20 추천(0)
  • 문경준 (jeunerhino) 쪽지 대댓글

    묵상이라는 전제하에서는 님의 글에 공감합니다. 그러나 같은 묵상도 그 성경 본문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뒷받침이 된다면 더더욱 충실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의견을 답니다. 똑같은 제사에서 아벨은 감사를 카인은 요구를 했다는 이분법은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단지 그 결과만 두고 한쪽을 편들고 한쪽을 욕하는 것 뿐이지요. 마치 부자를 두고 '열심히 살았구나'라 하고, 거지를 두고 '게으른 놈'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 부자가 남을 수탈했을지도, 또 그 거지가 작년까진 떵떵거리다 감당 못할 부도를 맞았을지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또한, 당시에 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내용에 대하여도 고민이 필요합니다. 물론 홍수 이후에 육

    2012-01-20 추천(0)
  • 문경준 (jeunerhino) 쪽지 대댓글

    식을 허용하셨다는 구절이 뒤에 나오지만 그건 또다른 관점이지요. 아벨이 양을 치는 목자로 나오는데 그 많은 양들을 그럼 제사용, 또는 관상용으로만 키웠겠습니까... 이미 아담의 범죄 때 자신들이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었을 때 하느님께서 가죽 팬티를 만들어주셨지요. 그럼 그 때 가죽을 벗긴 짐승의 살은 그냥 버렸겠습니까... 결론적으로 말해, 카인이 살인자라는 선입관, 아벨이 목동이자 피살자라는 연민(이건 현대 기독교인들에겐 예수님의 이미지를 연상시키지요)이 바로 위와 같은 묵상을 낳게 된다는 것입니다. 님의 묵상을 방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방향을 바라보는 묵상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가톨릭대

    2012-01-20 추천(0)
  • 문경준 (jeunerhino) 쪽지 대댓글

    사전의 묵상 항목도 그런 쪽에서 설명을 해주고 있더군요. 심기가 불편하시다면 죄송합니다.

    2012-01-20 추천(0)
  • 이정임 (kr3217) 쪽지 대댓글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절대로 심기가 불편하지 않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카인과 아벨을 통해서 내 삶을 들여다 보고 그렇게 깊이 본 삶을 살아내서 깨어진 하느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 촛점을 맞추어서 묵상한 내용이어서 저는 이 묵상이 정답이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신학적인 것에 관심을 둔 내용이 아니라 저의 삶의 바탕에서 생각한 것이니 지적해 주시는 내용도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2012-01-20 추천(0)
  • 이현미 (dlgusal) 쪽지 대댓글

    † 찬미 예수님! 이정임님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2015-05-28 추천(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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