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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구약 성경 다시 읽기: 왕정(王政)의 실패, 신정(神政)에 다시 눈뜬 백성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11-17 조회수6,447 추천수1

[구약 성경 다시 읽기] 왕정(王政)의 실패, 신정(神政)에 다시 눈뜬 백성

 

 

신명기계 역사서(여호수아기∼열왕기)를 다 읽고서 이제 바빌론에서의 귀환 이야기가 펼쳐지겠거니 기대했더니, 난데없이 이야기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아담에서 아브라함에 이르는 족보. 아담, 셋, 에노스…”(1역대 1,1) “응? 왜 또 처음으로 돌아가지?”

 

 

역대기는 사무엘기와 열왕기의 반복?

 

역대기 상·하권과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 이렇게 네 권을 묶어 ‘역대기계 역사서’라 부릅니다. 이 책들은 신명기계 역사서 여섯 권 다음에 수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과 주제 면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지요. 역대기는 천지 창조부터 바빌론 유배시대의 종결까지, 이어지는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는 유배 후 다시 성전을 짓고 유다 공동체를 재건하던 시대를 다룹니다.

 

그런데 역대기를 읽기 시작할 때, 간혹 이런 의문을 갖는 분이 있습니다. “아니, 이전까지 오경과 역사서의 내용이 시대 순으로 잘 진행됐는데, 왜 갑자기 아담 이야기부터 다시 시작하지? 역대기의 내용 대부분이 사무엘기, 열왕기와 겹치는 것 같은데, 왜 반복하는 걸까?” 예. 물론 역대기는 기존 이야기들을 단순히 반복하는 책이 아닙니다. 이를 설명하자면, 먼저 역대기계 역사가들의 시대와 그들이 처해있던 역사적 상황을 알아야겠습니다. 이미 신명기계 역사서들이 있었는데도 그들이 과거 역사를 새로운 관점으로 재해석하고자 했던 필요성, 즉 역대기계 역사서를 써야 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거든요.

 

 

왕정(王政)의 실패, 신정(神政)에 다시 눈뜬 백성

 

역대기계 역사서는 유배 시대 이후의 것입니다. 역대기 하권 끝에 유다인들의 귀환을 허락하는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칙령(기원전 539년)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역대기의 최종 편집이 유배 시대 이후에 이루어졌다는 뜻이고,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가 전하는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 공사 역시 귀환한 후의 일이니까요. 그렇다면 유배 시대 이후(!) 역대기계 역사서 저자들이 ‘새롭게’ 기록하려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유배에서 돌아온 유다인들은 절대 망하지 않으리라 맹신했던 다윗 왕조의 몰락과 폐허뿐인 성전 터를 바라보며 현실을 직시했습니다.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 밤낮으로 그치지 않는다. 처녀 딸 내 백성이 몹시 얻어맞아 너무도 참혹한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예레 14,17) 하신 마음으로 손수 이스라엘을 치셨던 하느님의 ‘극약 처방’, 그 교육적 견책과 구원의 회초리가 제대로 통했던 걸까요, 이스라엘은 이제 더 이상 왕정이나 세속적 방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을 기반으로 한 하느님의 다스림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했습니다. 이것은 가나안 정착시대(기원전 1200년경) 이후 계속해서 우상 숭배와 종교 혼합주의 속에 병들어갔던 이스라엘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참으로 획기적인 변화였습니다.

 

이 중요한 시기에 역대기계 역사가들은 ‘우리 조상들이 한 분이신 하느님만을 섬기고 계약과 율법에 충실했던가?’ 반성하며 지난 역사의 흥망성쇠를 기록한 신명기계 역사관(과거 지향적)을 받아들이면서도, 그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고자 했습니다. 성전과 전례에 관한 과거 역사의 긍정적 측면을 더욱 부각시킴으로써, 앞으로 펼쳐진 ‘전례 공동체로서의 삶’을 힘차게 시작하기 위한(미래 지향적) 발판으로 삼고자 했던 거지요. 이러한 ‘역사의 재해석’ 작업은 실의에 빠진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의 신정(神政) 시대를 새롭게 열어가는 데 꼭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역대기는 무엇이 다른가

 

기껏해야 강원도 크기 정도의 팔레스티나 땅에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다가 바빌론이라는 거대한 제국 안에서 여러 민족들과 함께 섞여 살았던 세월은 이스라엘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자기보다 훨씬 더 강력한 여러 민족들을 경험했던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탁월한 신원과 자존감을 재확립할 필요를 느꼈고, 그래서 무엇보다 먼저 역대기 시작 부분(1역대 1-9장)에 창조주 하느님과 직접 맞닿는 족보(‘아담∼사울’)를 수록했습니다. 폐허 속에서 새롭게 일어서려는 백성에게 ‘우리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아담의 직계 후손이며,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민족이다!’라는 자부심을 심어주려던 역대기 저자들의 부성(父性)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부분입니다. 그저 지루한 ‘남의 집 족보’ 이야기가 아닌 게지요.

 

이어서 역대기는 다윗(1역대 11-29장)과 솔로몬(2역대 1-9장), 즉 유배 이후 백성이 공동체를 재건하는데 중추가 되는 성전의 건축과 예배의 기초를 놓았던(!) 이 두 임금에게 집중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무엘기나 열왕기와는 달리 다윗 왕조의 위상에 누가 되는 역사를 과감히 배합니다. 다윗이 임금으로 즉위하기 전에 겪었던 박해와 도피 이야기, 우리야의 아내 밧 세바를 취했던 사건, 다윗 왕실 내부 갈등과 권력 투쟁의 역사는 생략하고, 그를 이상적인 임금으로 그려냅니다. 다윗은 계약 궤를 예루살렘에 모셨고(1역대 15-16장) 성전이 지어지리라는 신탁을 받은 이로서(1역대 17장), 사제복 에폿을 입고서(1역대 15,27) 사제단과 레위인과 성가대를 조직하고(1역대 23-25장) 수많은 찬양노래를 지어 성전 전례의 기초를 놓은 신앙의 모범으로 그려집니다. 이 점은 솔로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피로 점철된 즉위 과정이나 말년의 죄상들(우상숭배, 사치스런 삶)에 대한 언급들은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성전 건축의 과업을 이루어낸(2역대 2-7장) 성왕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역대기는 다윗과 솔로몬 시대를 신정(神政)이 완벽하게 이루어진 신앙의 시대로 전하면서, 이후 아사(2역대 14-15장), 여호사팟(2역대 19-20장), 히즈키야(2역대 29-31장), 요시야(2역대 34-35장) 같은 임금들 역시 성전 재건이나 전례 개혁에 기여했는지를 기준 삼아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이들이 모두 남유다의 임금임은 알고 계시겠지요? 솔로몬 사후 남북 왕국 역사를 다루면서, 역대기는 유일한 성소인 예루살렘 성전 전통을 지킨 남왕국 유다의 이야기만을 전합니다. 그렇게 역대기는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성전과 그곳에서 드리는 참된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때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다스림 안에 머무름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를 가르치며 하느님의 백성을 격려합니다. 우리는 역대기를 읽으며 자신에게 매번 물어야 합니다. 이토록 소중하게 간직되어 온 하느님의 성전과 전례가 내 삶의 가장 귀한 자리에 잘 모셔져 있는지,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다스리시도록 내 마음 속 성전을 잘 가꾸고 있는지 말입니다.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는 그 내용과 주제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실제로 초대 교회의 구약성경이었던 그리스어 칠십인역 성경은 이 둘을 한 권의 책으로 묶습니다.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는 유배에서 귀환한 유다인들이 성전을 다시 짓고, 에즈라 사제와 느헤미야 총독이 귀환하여 예루살렘 성벽과 이스라엘 공동체를 재건하고 종교-사회 개혁을 이루었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에즈라기는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칙령으로 유다인들이 유배에서 돌아온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유다인들은 즈루빠벨 총독과 예수아 사제의 지도로 성전 건축을 시작했지만(기원전 537년경) 공사에서 배제되었던 사마리아인들의 방해와 모함으로 작업이 강제로 중지되었습니다.(에즈 1-4장) 유배에서 돌아온 소위 “남은 자들”(1,4)과 본토에 남아있던 사람들(혈통과 신앙 측면에서 순수성을 의심받던 이들)간의 충돌 양상이 시작되는 부분이지요. 이후 즈루빠벨 총독과 예수아 사제는 하까이 예언자와 즈카르야 예언자의 도움을 받아 다시 공사를 시작했고, 결국 성전(제2성전)을 완성하고 봉헌식을 올리는 쾌거를 이룹니다.(기원전 520-515년경, 5-6장) 그리고 세월이 지나(기원전 458년경) 사제 에즈라가 귀환하여 종교-사회 개혁을 합니다.(7-10장) 이어지는 느헤미야기는 페르시아에서 임금의 헌작 시종이었던 느헤미야가 유다 총독으로 임명받고 돌아와(기원전 445년경)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했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느헤 1-7장) 이는 단 52일만에 이뤄냈던 기적같은 일이었습니다. 이후 에즈라 사제가 백성들에게 율법을 선포하고 초막절 축제를 거행했던 일(8-10장), 성벽이 하느님께 봉헌되고 느헤미야가 실시했던 개혁 이야기가 따릅니다.(11-13장)

 

이스라엘 백성이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성전을 다시 짓고 성벽을 완공하여 하느님 안에서 새 삶을 시작할 것을 다짐하던 날, 에즈라 사제와 레위인들이 백성에게 율법을 통역하고 풀이해주던 바로 그 날을 그려봅니다. 율법을 낭독하고 해설하는 동안, 온 백성이 펑펑 울었던 날이었지요.(느헤 8장) 그 눈물은 그토록 멀리 돌고 돌아 이제야 하느님 앞에 서게 되었다는 서러움 때문도, 이제는 히브리말도 잊어버려 누군가 아람말로 풀이해 주어야만 율법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자괴감 때문만도 아니었습니다. 율법 안에 담긴 하느님의 진심을, 거룩함과 선한 삶 안에 당신 자녀들을 머물게 하여 그들 모두를 구원하시려는 아버지 하느님의 그 사랑을 비로소 알아듣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금 우리는 손만 내밀면 닿을 곳에 하느님의 성전이 있고, 그 안에서 원 없이 하느님을 찬미하며 구원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복되고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계명들과 성경 말씀의 뜻을 올바로 알아들어 가슴에 새기고, 나와 누군가의 부족함으로 금이 가고 부수어진 교회의 성벽을 튼튼하게 고쳐 쌓으며, 두 눈과 양팔을 들어 성전에서 기도하며 구원의 삶을 기쁘게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기원합니다. “온 백성은 자기들에게 선포된 말씀을 알아들었으므로, 가서 먹고 마시고 몫을 나누어 보내며 크게 기뻐하였다.”(느헤 8,12)

 

[월간빛, 2018년 11월호, 강수원 베드로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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