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성경의 인물]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 대한 이야기는 마르코 복음(16,12-13 참조)에서도 언급하지만, 더 자세한 내용은 루카 복음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 마을로 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고 토론하며 가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십니다. 모든 희망을 앗아간 예수님의 돌아가심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어 섰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 클레오파스라는 이가 예수님께,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 하고 말하였다”(24,16-18). 루카 복음사가는 이 두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 주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이름이 클레오파스라는 정도만 전할 뿐입니다. 하지만 이들을 ‘제자들’이라고 알립니다. 이는 곧 예수님의 열두 제자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이고, 그분을 따르며 당신의 중요한 순간들을 직접 확인한 목격 증인이자 예수님께 직접 가르침을 듣고 체험한 이들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무슨 일이냐?’ 하시자 그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입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 …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24,19.21). 두 제자에게 예수님은 힘이 있는 예언자로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희망을 주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예수님께서 당신의 때가 되시자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으시고 힘없이 붙잡히셔서 수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당대에 가장 저주받은 죽음이라 여겨졌던 십자가 형벌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라 여기며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따랐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최후는 그들의 모든 희망을 앗아 간 참혹한 사건이었고, 앞으로 어떠한 기대나 계획조차 세울 수 없는 무력감과 허탈감을 안긴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시다 이 황망한 사건이 일어난 지도 사흘이 흘렀습니다. 주간 첫날 새벽 일찍이 몇몇 여인들이 준비한 향료를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으로 갔지만 그곳에 예수님의 시신은 없었습니다. 당황한 여인들에게 천사 둘이 나타납니다.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되살아나셨다. 그분께서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 기억해 보아라.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고 말씀하셨다”(24,5-7). 천사의 말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 예고를 기억해 낸 여인들은 무덤에서 돌아와 사도들에게 이 일을 모두 알립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이 말을 믿지 않습니다. 분명 돌아가신 분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니! 헛소리라 여겨질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현실에 대한 비탄과 슬픔, 괴로움과 상실감은 이들의 침통한 표정으로 드러납니다(24,17 참조). 두 제자는 예루살렘에서 60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습니다. 1스타디온이 약 185미터이니, 엠마오는 예루살렘에서 1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마을입니다. 이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 마을로 간다는 것은 이제 예루살렘에서 더 이상 어떠한 희망도 찾을 수 없기에 예전의 생업 터전이나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침통한 그들에게 가까이 가시어 함께 걸으십니다. 우리의 가장 어렵고 괴로운 순간에도 함께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하지만 이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마르코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셨기 때문이라고 전하지만(16,12 참조), 루카 복음에 따르면 이들의 눈이 가리어져 있었기 때문에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어떠한 충격적인 사건에 놓이게 되면 다른 것들은 전혀 인지할 수 없는 상황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크나큰 슬픔이나 상실감에 빠지면 이러한 모습은 더욱 심해지겠지요. 여인들이 전한 천사의 말도, 다른 제자들이 전한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소식도 이들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믿음과 기대가 컸던 만큼 마음의 깊은 상처와 상실감이 이들의 눈을 가렸을 것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다가가시어 함께 걸어가십니다. 그들이 비록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위로와 평안, 기쁨이 되는 말씀 예수님께서 이들과 대화를 이어 가십니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여기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다시금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서 당신에 관해 언급되는 기록들을 통해서 하나하나 풀어서 설명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상 돌아가심은 단순히 보이는 것처럼 비참하고 참혹한 죽음이 아니며, 당신 스스로 수난 예고를 통해서도 밝히셨듯이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속죄의 길을 걸어가셔야 했음을, 바로 이 길을 통해 그리스도는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셨음을 말입니다. 사실 이 설명과 말씀이 공생활 가운데 예수님의 가르침과 크게 다른 부분이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그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힘이 될 때야 비로소 이 말씀은 더 이상 그냥 지나쳐 버렸던 외침이나 아무 의미 없는 소리가 아닌, 나에게 위로와 힘을 주는 말씀이자 마음을 타오르게 하고 생명의 힘을 주는 말씀이 됨을 깨닫게 됩니다. 사실 우리는 이 두 제자의 체험을 미사를 통해서, 특별히 말씀 전례를 통해서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감동의 말씀으로 만나게 됩니다. 당신의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 안에서 선포되어 내 안에 살아 움직이게 되는 것이지요. 어둠이 깊을수록 작은 빛도 훨씬 더 크게 빛나는 것처럼, 상실감과 절망감이 컸기 때문에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은 이들에게 한 줄기 빛을 넘어서 살아 있는 말씀으로, 생명의 말씀으로 다가갔습니다. 우리에게 주님의 말씀은 바로 생명의 말씀이며, 내적인 평화와 충만함을 채워줄 말씀이겠지요. 오늘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위로와 평안, 기쁨이 되는 말씀으로 다가오시며 우리와 함께하심을 새겨봅니다. 주님과 함께 가는 길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24,29).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시금 타오른 마음을 지닌 이들은 예수님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던 이들이 이제 예수님을 초대합니다. 우리와 함께 머무르시기를 간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제자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시어 식탁 공동체를 이루십니다. 일반적으로는 예수님이 이들의 손님이시지요. 따라서 손님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것은 마땅히 예수님을 초대한 제자들의 몫입니다. 하지만 이 식탁 공동체의 주인은 제자들이 아닌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에서처럼 다시 제자들에게 ‘빵을 떼어’ 나누어 주십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바로 그들의 눈이 열린 것입니다. 눈이 열린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게 됩니다. 이들은 바로 앞에 함께하시는 분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따랐던 그분이심을, 바로 부활하신 주님이심을 알아봅니다. 그 순간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십니다. 예수님께서 왜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은 예수님과 온전하게 일치를 이루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빵을 떼어 나누어 주시던 모습은 지금도 성체성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신 우리 안에 오시어 우리 자신을 거룩한 성전으로 변화시키시고 당신과 일치시켜 주십니다. 당신과 일치를 이루는 신비가 그때의 제자들과 지금의 우리에게 일어나는 순간입니다. 다시 타오르는 마음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24,32) 놀라운 체험을 겪은 두 제자는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예루살렘에서도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도 나타나셨다는 증언이 이어집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 두 제자는 엠마오로 발길을 옮길 때의 그 제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이 체험한 사건들을 통해 가리어진 눈을 뜨고 다시금 불타오르는 마음으로 줄곧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냅니다(24,52-53 참조).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는 말씀과 성사가 우리 안에서, 믿는 이들의 공동체에서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잘 설명해 줍니다. 그들은 말씀 안에서 희망을 찾고 자신을 찾았으며, 우리와 함께하시고 공동체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체험했습니다. 빵을 떼어 나누는 가운데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고 다시금 당신의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말씀과 성사 안에 이들의 절망은 희망으로, 분열은 화합으로 변화되었고, 예수님과의 동행으로 이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미사 전례 안에서, 또 우리의 삶 가운데 함께하시며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주님과 함께 가는 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제자들의 모습이 바로 오늘 우리 신앙인의 모습이 되기를 청해 봅니다. * 최광희 마태오 - 서울대교구 신부. 가톨릭 청년성서모임을 담당하고 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 대학원에서 성서신학을 전공하였다. [경향잡지, 2018년 11월호, 최광희 마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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