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성경 다시 읽기] 다시 하나된 백성, 시련과 박해 속에 뿌리내린 믿음 “임금의 왕국에 사는 모든 민족들이 그에게 복종하여, 저마다 자기 조상들의 종교를 버리고 그의 명령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하더라도, … 우리가 율법과 규정을 저버리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소.”(1마카 2,19-20 참조) 기타 역사서 ‘신명기계 역사서’(여호수아기∼열왕기)와 ‘역대기계 역사서’(역대기∼느헤미야기) 다음으로 살펴볼 책은 ‘기타 역사서’ 여섯 권(룻기, 토빗기, 유딧기, 에스테르기, 마카베오기 상·하권)입니다. 룻기를 제외한 나머지 책들은 역사서 목록의 제일 마지막에 자리잡고 있지요. ‘역사란 한 시대가 지나고 후대의 누군가가 과거를 돌이켜 기록한 것’이란 점에서, 구약 성경 역사서들 역시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작중연대(作中年代)’와 ‘실제로 책이 기록된 저작연대(著作年代)’, 두 개의 다른 시대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학자들마다 견해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기타 역사서들의 경우 작중연대와 저작연대는 대략 이렇습니다. 보다시피 기타 역사서 여섯 권이 기록된 것은 바빌론 유배시대 이후입니다. 강력한 이방민족들 틈바구니에 끼어 ‘이스라엘만의 세상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임을 깨닫고도 남은 시대였지요. 그래서인지 이 책들은 하나같이 ‘이방민족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참된 신앙을 살아갈 것인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룻기는 이스라엘 중심의 전통적 배타주의를 접어두고 한 이방여인의 믿음과 덕행을 이야기하고, 나머지 다섯 권은 불확실한 현실과 이방민족들의 억압 속에서 신앙을 간직했던 하느님 백성의 삶을 전해줍니다.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사실 이 책들에는 내용상의 오류가 여럿 발견되기도 합니다.(이방 임금들의 이름이나 연대기적 정보 또는 지리 관련 정보의 오류 등) 그렇지만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들로 하느님의 백성을 가르치고 격려하려던 당시 역사가들의 진심과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구원의지를 잘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실제 역사에 상당히 충실한 마카베오기 이외의 책들은 신앙교육을 위한 ‘교훈문학적 역사서’로 오늘날 이해되고 있습니다. 룻기 룻기는 판관 시대(1,1)에 이방인인 모압 여인 룻이 이스라엘백성이 되었던 이야기를 전합니다. 룻기의 내용은 “암몬족과 모압족은 주님의 회중에 들 수 없다.”(신명 23,4)는 전통적 계명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듯 보이지만, 이는 유배 시대 이후 ‘하느님께 의탁하는 이방인의 포용’이나 ‘이민족과의 혼인과 결합’ 등의 보편적 구원 사상이 구약 시대 안에 서서히 등장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된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떠나지 않고,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1,16) 하며 함께 유다 땅 베들레헴으로 향합니다. 나오미의 집안을 구원할 ‘구원자’ 중 한 사람(2,20)이었던 보아즈는 부유하고 율법에도 충실한 사람이었는데, 룻은 그의 들판에서 이삭을 줍다가 호의를 입어 우여곡절 끝에 그와 혼인을 하게 되지요. 그렇게 룻기는 미천한 한 이방인 과부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왕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되는 놀라운(!)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4,17) 룻기에서 하느님의 현존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어머니의 하느님을 자신의 주님으로 받아들이면서 그녀를 봉양하길 원했던 룻, 이방인 과부에게까지도 자비를 베풀며 하느님의 계명(레위 19,9-10; 신명 25,5-10)에 충실했던 보아즈, 진심으로 며느리의 행복을 바랐고(1,8-9) 딸처럼 아꼈던 나오미, 가족 구성원들 모두가 서로에게 베푼 그 신뢰와 선의를 통해 하느님의 자비가 온 집안에 충만하게 내립니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가족들에게 보이는 사랑과 선의를 통해 우리 가정을 축복하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대목이지요. 토빗기 토빗기는 아시리아의 니네베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토빗과 그의 아들 토비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방인들에게 몸 붙여 살면서도 한결같이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자선과 선행을 베풀던 토빗은 아시리아 임금의 박해를 받아 모든 재산이 몰수되고 설상가상으로 실명까지 하게 됩니다. 토빗의 며느리요 토비야의 아내가 될 사라는 악귀에게 신랑을 일곱이나 잃고 스스로 목을 매려 했을 정도로 큰 고통을 받습니다. 이 고통은 평생토록 하느님과 이웃에 성심을 다했던 토빗도, 부모를 사랑하고 염려하는 착한 심성을 지녔던 사라조차 쉽게 감내할 수 없는 지독한 시련이었습니다.(3,6.10) 그러나 극한의 고통 앞에서 그들이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바로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일이었지요.(3장) “부서진 영, 부서지고 꺾인 마음을 업신여기지 않으시는”(시편 51,19) 하느님께서는 토빗과 사라의 기도를 들으시고 즉시 대천사 라파엘(‘하느님께서 치유하신다’는 뜻)을 보내시어 그들을 구하시고, 평생토록 그 가정을 평화와 축복의 삶으로 이끄셨습니다. 토빗의 이야기는 진리와 선행, 자선을 베푸는 삶을 살아온 이는 절대로 멸망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설령 우리가 깊은 절망과 이해할 수 없는 고통 속에 내던져졌다 하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하느님과 그분의 계명에 충실한 삶을 계속해 나간다면 반드시 응답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힘주어 강조하고 있습니다. 유딧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외적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울 때, 한 영웅이 홀로 적진에 들어가 적장의 목을 베어 돌아온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유딧기에서 그 주인공은 한 유다인 과부입니다. 철저히 남성 중심이었던 구약의 이스라엘 풍토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지요. 아시리아의 포위 공격에 갈증으로 쓰러져가던 배툴리아의 주민들에게 성읍의 수장들은 닷새를 더 기다려보고 그래도 하느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항복하겠다고 약속을 합니다.(7,30-31) 이는 ‘닷새 말미를 드릴 테니, 그 안에 도와주지 않으면 우리도 믿음을 포기하겠습니다.’라고 하느님께 통보하는 것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마치 내기라도 걸듯, 자신이 정한 기준을 하느님께 제시하고서 그분을 자신의 판단과 계획에 묶어두는 이런 오만함은 오늘날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서 발견됩니다. 유딧은 이런 교만을 꾸짖으며 오직 하느님께만 의탁할 것을 항변하고서 (8,11-27), 홀로 적진에 들어가 하느님을 모독하던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베어 돌아옴으로써 절망적이던 전쟁을 승리로 이끕니다. 불안하고 흔들리던 우리 마음에 유딧의 힘찬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원하시는 때에 우리를 보호하실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계십니다. 주 우리 하느님의 뜻을 담보로 잡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달리 협박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시고, 인간과 달리 부추길 수 있는 대상이 아니십니다. 그러니 하느님에게서 구원이 오기를 고대하면서, 우리를 도와주십사고 그분께 간청합시다.”(8,15-17 참조) 에스테르기 에스테르기는 페르시아의 왕비가 된 유다인 여인 에스테르가 굳은 믿음과 애국심으로 동족들을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구해낸 이야기입니다. 페르시아 황제의 총애를 받던 부개 사람 하만은 에스테르의 양아버지인 모르도카이와 유다 백성에게 앙심을 품고 그들 모두를 몰살시키려 합니다. 이를 간파한 모르도카이는 왕비 에스테르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에스테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임금에게 나아가 간청하여 결국 유다 백성을 죽을 운명에서 구합니다. “누가 알겠소? 지금과 같은 때를 위해 그대가 왕비 자리에까지 이르렀는지.”(4,14) 하며 자신들이 받은 축복 안에 담긴 하느님의 섭리를 읽을 줄 알았던 아버지 모르도카이, 그리고 “모든 유다인들을 모아 저를 위해 함께 단식해 주십시오. 법을 거스르는 것이긴 하지만, 임금님께 나아가렵니다. 그러다 죽게 되면 기꺼이 죽겠습니다.”(4,16) 하며 목숨을 던져 하느님의 백성을 구하고자 했던 딸 에스테르의 용기가 만나 큰 기적이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하만이 주사위(히브리어로 “푸르”)를 던져 정한 유다인 절멸의 날은 외려 해방과 구원의 날이 되었고, 이것이 유다인들의 ‘푸림절’의 기원이 되었습니다.(9.20-32) 에스테르기를 읽을 때마다 답답하고 절망스런 현실 속에도 하느님의 섭리는 언제나 존재하며 그것을 찾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만 있다면 반드시 구원의 길로 향하게 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리게 됩니다. 마카베오기 마카베오기 상·하권은 기원전 176~134년 사이에 유다 민족이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 치하에서 희랍 문명과 종교 박해에 대적했던 투쟁의 역사를 다룹니다. 비교적 관용적인 자세를 취했던 페르시아나 이집트와는 달리 시리아의 안티오코스 4세는 유다인들에게 대대적인 종교 박해를 가했습니다. 강요된 이교 제사를 묵과할 수 없었던 사제 마타티아스는 다섯 아들들과 함께 군사 항쟁을 일으켰고(1마카 1-2장), 결국 기원전 142년 둘째 아들 시몬이 정치, 종교적 독립을 쟁취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하스몬 왕조(기원전 142-63년)의 시작입니다. 마카베오기 상권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독립(전쟁)에, 하권은 성전 정화와 종교 전통의 보존에 주요 관심을 둡니다. 신앙을 간직하기가 결코 쉽지만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기에, 여러분께 특별히 율법학자 엘아자르의 순교(2마카 6,18-31), 그리고 한 어머니와 일곱 아들의 순교(2마카 7장) 이야기를 다시 한번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또한 구약 시대 끝자락에 드디어 ‘죽은 이들의 부활 사상’을 언급하고 있는 2마카 7장 외에도, 개신교와는 달리 가톨릭 교회가 항구하게 가르쳐 온 ‘연옥과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 교리의 근거가 되는 2마카 12,38-45의 말씀들도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기타 역사서들은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과 함께 살아가야 했던 구약 시대 유다인들의 삶을 그 대로 전해줍니다. 때로는 이방인과 불신자들을 보듬어 안아 신앙 공동체에 받아들였고, 때로는 그들의 극심한 박해와 억압을 오직 믿음으로 극복해 나가야만 했던 우리 신앙의 선조들의 삶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아니 하느님을 알고 싶지도 않은 이들 사이에 휩쓸려 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살기 쉬운 우리 시대입니다. 부디 우리 모두가 룻의 가정처럼 가족들 서로를 사랑과 신뢰로 대하고, 토빗처럼 한결같이 진리와 선행의 삶에 정진하며, 유딧과 에스테르 같은 믿음과 용기를 지니고, 마카베오 형제들처럼 용맹하고 의로운 모습으로 살아, 함께 구원의 길로 나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월간빛, 2018년 12월호, 강수원 베드로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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