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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성서의 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창세 12-21)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03-04 조회수8,340 추천수0

[2019 사목교서 ‘성서의 해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창세 12-21)

 

 

바벨탑 사건 이후에 하느님 구원 역사가 다시 시작됩니다. 그 중심에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이 서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그는 어떠한 삶을 살았기에 믿음의 조상이 되었을까요?

 

하느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창세 12,1-2). 참으로 감격스러운 말입니다. 큰 민족이 되고, 하느님의 복을 받고, 이름을 떨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 일입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성경에는 하느님의 이러한 명령과 약속을 들은 아브람의 반응에 대해서 성경은 침묵합니다. 감격 또는 흥분했는지, 집을 떠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는지, 그 어떤 감정적 반응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아브람은 어떠한 미동도 없이,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창세 12,4)라고만 알려줍니다. 아브람은 하느님의 명령을 그저 묵묵하게 수행합니다.

 

아브람은 그렇게 유랑의 길을 떠납니다. 많은 사건과 사고 속에서 그는 하느님과 함께 하는 여정을 걸어갑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하느님의 약속을 듣게 됩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너는 매우 큰 상을 받을 것이다.”(창세 15,1). 하지만, 처음과는 달리 아브람이 하느님께 저항합니다: “저를 보십시오. 당신께서 자식을 주지 않으셔서, 제 집의 종이 저를 상속하게 되었습니다.”(창세 15,3). 그렇습니다. 아브람은 자신이 충분한 상을 받고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상이 의미 없게 다가오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바로 자신의 상속자가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큰 민족이 되게 할 것이다.”(창세 12,2 참조)라는 약속은 이제 하느님을 믿음에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한번 하느님을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직접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 너의 후손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창세 15,5). 이 말씀을 듣고 다시 아브람은 하느님을 믿습니다. 그 믿음으로 그는 하느님의 선물인 아들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부인 사라이에게서 태어난 아들이 아니라, 사라이의 몸종 하가르에게서 태어난 이스마엘입니다. 아브람은 그것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으십니다. 아브람을 더 큰 인물로 만들 준비를 하십니다. ‘아브람’(높여진 아버지)에서 ‘아브라함’(많은 이들의 아버지)이라고 이름을 바꿔주십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아들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이면 충분하다며 백 살이 된 자신과 아흔 살 사라에게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 부정합니다. 하느님을 온전하게 믿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그는 “이스마엘이나 당신 앞에서 오래 살기를 바랍니다.”(창세 17,18) 하면서 지극히 현실적인 청원을 올립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사라에게서 태어날 아들의 이름까지 직접 ‘이사악’이라고 알려주시면서 약속을 하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이사악이 탄생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그는 성실하게 하느님의 말씀을 따랐고,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길을 걸었으며, 하느님의 의로운 사람으로 살아갔습니다. 하지만, 사라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함은 그의 믿음에 있어서 치명적인 걸림돌이 됩니다. 그 걸림돌 앞에서 그는 온전하게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때를 기다리지 못합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도 하느님의 약속을 자신의 현실 속에서 해석하고 답을 찾으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방식으로 하느님의 때에 맞춰 아브라함에게 선물을 주십니다. 우리의 믿음을 바라보면, 우리는 하느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도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믿음의 걸림돌을 하나 혹은 그 이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걸림돌 앞에서 우리 또한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방식으로 우리의 믿음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때가 아니라 하느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는 우직함입니다. 그 기다림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온전한 믿음이라는 은총으로 우리를 이끌어 줄 것입니다.

 

[2019년 3월 3일 연중 제8주일 인천주보 4면,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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