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도신경과 로마신경에 관하여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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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정제 | 작성일2012-06-22 | 조회수2,024 | 추천수1 | 신고 |
제 이름이 게시판에 자주 보여지는 것은 저도 마뜩한 일이 아니라 생각하지만 어차피 논의되었기에 사도신경의 원천만 보고자 합니다. 교회사를 보면 맹목적인 호교론자들은 사도신경이 교회 초기부터 오늘날의 형태로 완성되어 (즉 12사도들이 12개의 신조로 구성하여 만든 것이 사도신경이며... 하며 사도신경은 교회초기부터 오늘날의 형태로 이루어진 교회안에서 가장 오래된 신경이라 주장한다나요?) 왔다며 온갖 현란한 표현을 하고 다녔습니다만 저런 주장은 거짓말이거나 과장된 것이라 여겨집니다. 사도신경의 전신(원천)이 되는 신경이 있었으니 그것이 로마신경이며 이 로마신경 형태로 350여년 전후까지 로마교회(가톨릭)에서 세력을 떨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교리들이 로마신경에 첨가되면서 오늘날 고백하는 12개 신조로 된 사도신경이 확립되었고 시기는 7세기경으로 추정합니다. 그후 사도신경은 로마교회 전지역에서 고백하게 되구요... 그리고 교황 인노첸트 3세(1216년)로 부터 서방교회의 신경으로 인정을 받았다고 하성호 신부님께서 밝혀 주십니다. 초대교회부터 로마신경이 어떻게 형성되어 발전하였는지 <곽승룡 대전가톨릭대학 신부님>의 가르침을 보겠습니다. 교부학개론(곽승룡 대전가톨릭대학교수신부) I. 서론 1. 교부학과 교부 신학 ........ 1.2. 사도신경 왜 교부학 교과서 서두에 사도 신경의 역사를 공부하는가? 우리는 이미 교부들이 특별하게 신앙의 권위 있는 증인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이 그들도 역시 살았으며, 우리에게 전해 주었던 이 신앙을 받았다. 확실하게 들은 그 신앙을 전하면서 깊이 있게 하였다. 1) 신경의 의미 교황 비오 5세의 허락과 성 까를로 보로메오의 책임 하에 1566년에 간행된 트리엔트 공의회의 교리서는 우리에게 신경에 대한 정의를 제공하고 있다. 16세기에 신경은 다음과 같이 이해되었다. ≪사도들이 표현했던 신앙과 그리스도교 희망에 대한 고백은 그들 각자의 신경(symbol)에 의해 불려졌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 모두가 취하였던 다양한 진리의 공유로 그것을 만들었기 때문이며, 그들이 암호와 표징으로서 봉사하였기 때문인데, 그 암호와 표징은 교회 안에서 복음을 추락시키기 위해, 여기 저기에서 날뛰는 거짓 형제들과 도망자들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참 군인들인 그들을 손쉽게 구별하게 하였다≫(Ⅰ,1,2). 200년 경에 테르툴리아누스는 이미 이 신경 용어들로 말하곤 하였다. ≪여기 로마 교회가 배웠던 그것, 교회가 가르쳤고, 아프리카 교회들과 함께 증거로서 교환하였던 것≫(De Praescriptione haereticorum, 36). 하여간 사도들의 신경은 그리스도인을 인식하는 징표?. 그것은 장엄하게 ≪traditio symboli≫ 순간에 그들에게 제공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고스란히 신경을 전해 받았던 것과 똑같이 하느님께 신경을 고백하고 형제들에게 그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것이 ≪redditio symboli≫이다. 세례식에 대한 매우 중요한 예식에 대한 것이다. 옛 신앙의 규범(regula fidei)에서 낳고 신경의 역사를 다시 찾아내는 것은 정말로 마치 우리가 보겠지만 로마 세례 전례의 편집에 대한 연표를 만드는 것을 뜻한다. 이제 신경(symbol) 용어, 그리고 그 의미가 매우 유사한 두 표현, 신앙의 규범(regula fidei)과 신앙 고백(professione fidei) 등 사이의 차이를 말해야 할 것이다. - 신앙의 규범(regula fidei, regula veritatis)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종합하는 간결한 옛 형식이다. - 보통으로 표현하는 신경(symbolo)은 역시 간결하고 세례 전례 안에서 소개된 신앙의 규범이다. - 신앙 고백(professione fidei)은 세례 전례와 독립적이며 더욱 길고 더욱 상세한 신경(symbolo)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모든 형식들의 차이는 현실적으로 항상 마지막 두가지 용어인 신경(symbolo)와 신앙고백(professione fidei) 사이에 어떤 혼동이 늘 남는다. 2) 로마 세례 신경의 편집 ① 성서 본문 마태 28,19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비평가들은 분명한 첫 장면에서 의심스러운 삼위일체론적 세례 형식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그 형식은 신약 성서에서 발견하는 유일한 형식이 아니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에서 성 바오로는 "여러분 중에도 이런 사람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느님의 성령으로 깨끗이 씻겨지고 거룩하여 졌으며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삼위 일체의 위격들 사이에 구별은 신약 성서 어디에서나 분명하지만 신학 상대적 신학이 발전되는 것은 좀 더 늦게 나타난다. 57년에 성 바오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 주시는 친교를 여러분 모두가 누리시기를 빕니다"(Ⅱ 고린 13, 13)라고 썼다. 예외없이 모든 필사본들은 내용을 침해하지 않고 항상 인용하고 있는 3세기의 그리스도교 작가들처럼 성 유스티노와 성 이레네오와 같은 2세기의 그리스도교 작가들과 마태오의 유명한 본문을 구성한다. 사도 8, 37(그리스도론적 본문) : 필립보가 "당신이 마음을 다하여 믿는다면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하고 말하자 내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② 교부학 본문 1세기 : "살아계신 하느님,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 뽑힌 자들의 믿음과 희망"58, 2 (이 본문은 성 바실리오의 성령에 관한 연구 c. 29에서 인용되었다). 2세기 :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100년경) : Tralliani에게 보낸 편지 9. 디다케 Ⅶ, 1,3. 유스티노(155년경)의 호교론 1권 Ⅰ, 61. 13. 42 : 트리폰과의 대화 63. 85. 132. 이레네오(177년경)의 사도 설교의 해설 6; 이단을 거슬러 Ⅰ, 10, 2. 3세기 : 200년경 히뽈리또와 테르툴리아누스가 그들 방식으로 로마 신경을 전승하였다. 4세기 : 로마 교회와 함께 그의 신앙 공동체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 율리오 교황에게 340년 그의 편지에 루피노가 라틴말로, 앙카라의 주교 마르첼로가 희랍말로 필사하였다. 초기 로마 신경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느님과 우리 주님,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분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에 의해서 나셨으며 본시오 빌라도 치하에서 십자가 지셨고 무덤에 묻히셨으며, 삼일쩨에 죽은 이들로부터 부활하셨으며, 하늘에 오르셨으며,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으셨고,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시기 위해 오실 것이다.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교회, 죄인들의 사함과 육신의 부활을 믿나이다." ...(생략) 위를 살펴보면 대략 350년대 안팎까지는 초기 로마신경이 로마 교회안에서 통용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오늘날의 사도신경으로는 아직 발전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340년대의 로마신경에 "저승에 가시고" "모든 성인들의 통공" 등등을 믿는다는 문귀가 없으므로 당대 교회안에서 모든 성인들의 통공 교리 등이 아직 확립 혹은 선포가 안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겠습니다. 교리가 확립 혹은 선포가 되지않았다라는 말은 그것에 대한 믿음이 교회안에 없었다라는 것과는 다릅니다. 예를 들면 정교회에서는 <성모님 승천 교리>를 선포 하지는 않았으나 전례안에서 성모님의 승천(안식)을 믿고 있습니다. 교황님이 성모승천 교리를 선포하실 때 정교회측에서 강력한 반발이 있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의 교리 선포를 어떻게 로마교회가 정교회를 배제한채 단독으로 하는가...라며~~@@ 정교회측은 성모승천을 교리로 선포하지는 않았지만 전례안에서 믿고 있습니다.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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