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 이야기] (15) 사도들이 박해를 받다(사도 5,17-42)
매질과 모욕도 성령의 힘으로 이겨낸 사도들 - 베드로와 사도들은 최고의회 앞에서 예수님을 증언하다 매를 맞고 풀려나지만, 오히려 기뻐한다. 그림은 이탈리아 화가 마솔리노(1383~1447?)의 ‘베드로의 설교’, 브란카치 소성당 벽화, 이탈리아 피렌체,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 세 번째로 소개되는 초기교회 모습에서는 사도들 특히 베드로를 통해서 일어나는 표징과 이적들, 곧 병자들과 더러운 영에게 시달리는 이들의 치유가 두드러집니다.(5,12-16) 이는 백성에게는 믿음의 계기가 되지만 대사제를 비롯해 그의 동조자들에게는 사도들을 박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그 박해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살펴봅시다. 사도들을 최고의회에 세우다(5,17-26) 대사제가 자기 동조자인 사두가이들과 함께 나섭니다. 그들은 “시기심에 가득 차”(5,17) 사도들을 붙잡아 감옥에 가둡니다. 하지만 주님의 천사가 밤중에 감옥 문을 열고 사도들을 데리고 나와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모두 백성에게 전하여라”(5,20) 하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이른 아침에 성전에 들어가 가르칩니다. 한편 대사제와 동조자들은 최고의회를 소집하고 사도들을 데려오게 합니다. 경비병들이 감옥에 가서 보니 감옥 문이 잠겨 있고 문마다 간수가 서 있었는데 사도들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런 보고를 들은 성전 경비대장과 수석 사제들은 당혹스러워하고 있는데, 사도들이 성전에서 가르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와 사도들을 붙잡아오게 합니다.(5,17-26) 이 단락에서 두 가지만 유의해서 살펴봅니다. 첫째, 대사제와 그의 동조자들이 사도들을 붙잡아 감옥에 넣은 이유가 ‘시기심’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최고의회는 이미 베드로와 요한에게 예수님 이름으로는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지시한 적이 있습니다.(4,18) 이런 지시의 이면에는 사도들이 백성을 선동해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표면적 이유 외에 백성이 자신들을 따르지 않고 사도들을 따르는 데 대한 시기심도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주님의 천사가 사도들을 풀어주면서 “성전에서 이 생명의 말씀을 모두 백성에게 전하라”고 한 말을 사도들이 바로 실행했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으로 대표되는 사도들은 이미 최고의회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입 밖에도 내지 말라는 엄한 지시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이에 굴하지 않다가 다시 붙잡힌 것입니다. 최고의회는 바로 예수님을 죽음에 넘긴 그 당사자들입니다. 그렇다면 공영 감옥에 갇힌 사도들은 자기들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충분히 예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도들은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풀려나지만 다시 성전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천사의 말을 듣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정말 따르기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테지만 사도들은 지체없이 그대로 실행합니다. 그래서 다시 붙잡히게 된 것입니다. 대사제의 신문과 사도들의 증언(5,27-32) 최고의회에서 대사제가 신문합니다. 신문 내용은 예수님의 이름으로는 가르치지 말라고 했는데 가르침을 퍼뜨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가르침을 퍼뜨리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럼으로써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다”(5,27-28)는 것입니다. 마태오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의 재판 때에 빌라도가 “나는 이 사람들의 피에 책임이 없소. 이것은 여러분의 일이오” 하고 말하자, 온 백성이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질 것이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온 백성’이란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 다시 말해서 최고의회 의원들이 선동한 군중들을 가리킵니다.(마태 27,20-25 참조) 말하자면 최고의회 의원들은 예수님을 죽이라고 백성을 선동한 배후 세력인 셈입니다. 그런데도 대사제는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다”고 발뺌합니다. 그러자 베드로와 사도들이 다시 증언합니다. 증언 내용은 이렇습니다. ①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하다. ②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다. 곧 다시 살리셨다. ③ 그뿐 아니라 그분을 영도자와 구원자로 삼으시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다. ④ 우리는 이 일의 증인이다. ⑤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시다.(5,29-32) 사도들은 이 증언으로서 대사제를 비롯한 최고의회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증언의 기조는 최고의회 의원에 대한 비판이나 단죄가 아니라 회개하여 용서받으라는 권고입니다. 가말리엘의 개입(5,33-39ㄴ) 사도들의 이 말에 최고의회 사람들은 격분해서 사도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때에 가말리엘이라는 율법 교사가 나섭니다.(5,33-35) 가말리엘은 바오로로 이름을 바꾼 타르수스 출신 사울의 스승입니다.(22,3 참조) 가말리엘이 이야기하는 핵심은 사도들의 일에 관여하지 말고 내버려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도들의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없어질 것이고,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면 그들을 없애지 못할 뿐 아니라 자칫하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5,38-39) 가말리엘은 이런 주장을 펴는 근거로 테우다스라는 사람과 갈릴래아 사람 유다 두 사람을 예로 듭니다.(5,36-37) 테우다스는 기원후 44~46년에 예언자로 자처하면서 추종자들을 모았습니다만, 가말리엘의 말처럼 당시 유다 총독에게 사형을 당했고 추종자들은 죽거나 흩어져 버렸습니다. 갈릴래아 사람 유다는 역사적으로는 테우다스보다 1세대 이상 앞선 인물로 추종자들을 모아 로마에 반기를 들다가 죽었습니다. 이 유다로부터 열혈당 운동이 시작됐다고 하지요. 풀려난 사도들(5,39ㄷ-42) 최고의회 사람들은 가말리엘의 말에 수긍하고는 “사도들을 불러들여 매질한 다음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다시 지시하고서는”(5,40) 풀어줍니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매질을 당하는 이야기가 이제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욕을 받았음을 기뻐합니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사도들은 날마다 성전에서 또 이집저집에서 끊임없이 가르치면서 예수님은 메시아라고 선포하였다”(5,42)고 기록합니다. 생각해봅시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출발한 초기 교회 공동체는 사도들의 복음 선포와 가르침 그리고 사도들을 통한 표징과 이적으로 성장합니다. 스승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던 사도들이 예수님 부활의 증인으로서 백성에게 복음을 선포할 뿐 아니라 최고의회 앞에서도 용감하게 증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사도들에 대한 박해는 점점 더 강도가 세집니다. 사도들은 처음에는 감옥에 갇히고(4,3), 그다음에는 일반 감옥보다 더욱 감시가 심한 공영 감옥에 갇힙니다.(5,18) 또 처음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는 협박만 받지만, 이제는 매질까지 당합니다. 그러면서도 사도들은 오히려 예수님의 이름으로 매질을 당할 수 있어서 기뻐합니다. 역시 성령의 능력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은 성령이 아무에게나 내리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순종하는 이에게 성령을 주십니다.(5,32) 우리는 하느님께 순종하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사람들의 말을 따르는 사람인가요?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4월 28일, 이창훈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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