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묻고답하기

제목 Re: 카테고리 | 천주교
작성자김영훈 쪽지 캡슐 작성일2012-07-26 조회수1,757 추천수0 신고

일단은 인용하신 어떤 주장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말씀보존학회는 대한예수교총회로부터 이단판정을 받은 단체이지요.
개신교가 사용하는 개역성경을 기피하고 이송오씨가 직접 번역한 킹제임스 성경만을 정경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용된 성경구절과 글들은 사실 무시하는게 좋을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하지만 굳이 이야기를 늘어 놓자면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성경의 히브리서 2장 4절은 이렇습니다.

1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들은 것을 더욱더 명심하여, 빗나가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2  천사들을 통하여 선포된 말씀이 유효하고, 그것을 어기거나 따르지 않는 자들은 모두 정당한 벌을 받았는데, 
3  하물며 우리가 이렇듯 고귀한 구원을 소홀히 하면 어떻게 벌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이 구원은 처음에 주님께서 선포하신 것으로, 그것을 들은 이들이 우리에게 확증해 주었습니다. 
4  하느님께서도 당신의 뜻에 따라, 표징과 이적과 갖가지 기적을 통하여, 또 성령의 선물을 나누어 주시어 당신의 증언을 보태어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2장 1절부터 4절의 제목은 "고귀한 구원"입니다. 표징과 이적과 기적은 그것 자체로서보다도
하느님의 구원을 증거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표징이나 이적이나 기적을 드러내는 것,
또한 우리가 그것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초대받았음을 드러내는 것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지요.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만 주어졌느냐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코린토 전서 13장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8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예언도 없어지고 신령한 언어도 그치고 지식도 없어집니다.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10  그러나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것은 없어집니다. 

이 구절들은 성령의 은사가 부분적이거나 제한적이라는 말을 뜻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다른 의미가 있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코린토 전서 13장의 키워드는 아시다시피 "사랑"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 "사랑"이라는 것은 인간적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하느님으로 사는 것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모습은 사랑으로 사는 것이라는 이야기로 봐야 합니다.
사람들은 드러나는 이적이나 예언, 방언 등을 보면서 그것이 하느님과 함께 하는 것이라고 믿고 그것만 갈구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것들은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을 향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그것들에 머물지 않고 완전한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외의 글들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김효성 목사의 "옛신앙"에서 발췌하신 글과 또 다른 방언에 대한 글들은 개신교의 상황에는 부합되는지 모르겠으나, 가톨릭의 상황과는 무관해 보입니다. 제가 성령세미나를 받았을 때에, 들었던 것은, 방언, 즉 심령언어는 현재까지 이 지구상에 있었거나 현재도 있는 모든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심령언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당최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지만, 일단 그 방면의 신부님들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성경이 완성된 후에 성령의 은사가 사라졌다고 주장을 하는데, 성령의 은사가 사라지게 된 이유에 대한 정설은 잘 모릅니다만, 적어도 성경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는 타당성이 희박해 보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성경의 완성이라는 것을 아마도 정전목록의 완성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개신교가 분리되면서 가톨릭과의 사이에서 정전의 권수에 대해 차이가 생깁니다. 만일 정전목록이 완성된 것을 하나의 기점으로 본다면, 정전목록의 견해차이가 생기는 것도 하나의 기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으셨지요. 오히려 다른 이유를 봐야 할 것으로 봅니다. 사도들의 서간을 보시면, 신자들의 기도는, 성령을 통한 기도 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심령기도와 찬송가와 영가가 보통 나오고 있지요. 하지만 신약성서가 씌여졌던 시대 이후로는 묵주기도나 가톨릭 기도서에 나오는 정해진 틀을 가진 기도나 수도원으로부터 시작된 묵상, 관상기도가 주된 기도 방법이 되었습니다. 현재도 보면 심령기도와 묵관상 기도를 병행하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물론 대게는 묵주기도와 같은 정해진 틀이 있는 기도방법을 택하지만, 그 외에는 묵관상 기도가 많이 있습니다. 같은 성령이지만, 움직임이 많이 달라 보입니다. 이것은 시대의 조류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어쨌든 신자들의 기도방법이 달라지면서 성령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은사위주의 신앙형태로부터 달라지게 되었다고 저는 그렇게 봅니다. 하여간 적어도 성경의 완성이라는 이유는 그다지 신빙성이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매스컴을 통해서 기적들이 알려지지 않는 이유는, 일체 관계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단지 그런게 있다고 알리는 것은 광고하는 역할이지요. 동조하는게 될 수도 있습니다.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지요. 하지만 검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는 이단이나 사이비 단체라면 검증하려할 수도 있지만, 기성교단에서의 행위들을 낱낱히 밝혀내는 과정은 잘못하면 미디어 집단의 존폐 위기에 걸릴 수도 있지요. 게다가 너무 많구요. 그렇기 때문에 일일이 거론을 하지 않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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