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 이야기] (22) 복음이 사마리아에 전파되다(사도 8,4-25)
멸시의 땅, 사마리아에 전해진 복음 - 예루살렘 교회에 불어닥친 박해는 오히려 유다인들이 멸시하던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해지는 계기가 된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받아들이고 구원의 기쁨으로 넘쳐난다. 사진은 사마리아 도시 스켐의 전경. 스켐은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시카르로 추정되는 곳으로 ‘야곱의 우물’이라고 불리는 유적이 있다. 박해를 피해 흩어진 사람들 가운데 필리포스가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고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도 사마리아로 내려옵니다. 그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필리포스의 사마리아 복음 선포(8,4-8) 박해로 흩어진 예루살렘 교회 신자들은 남모르게 몸을 숨긴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다니며 말씀을 전합니다.(8,4) 일곱 봉사자 가운데 한 명인 필리포스는 사마리아의 고을로 내려가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8,5) 군중은 “모두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8,6)고 사도행전 저자는 전합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그의 말이 울림을 주었고 그가 일으키는 표징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군중이 모두 한마음이 되어 어떤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말이 진실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끌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 사람이 일으키는 표징을 보고 그 사람의 말이 믿을 만하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필리포스가 일으킨 표징은 무엇일까요. 사도행전 저자는 “많은 사람에게 붙어 있던 더러운 영들이 큰소리를 지르며 나갔고, 또 많은 중풍 병자와 불구자가 나았다”(8,7)고 기록합니다. 이런 표징들은 전형적으로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들입니다. 그 표징들은 바로 메시아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표징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이 표징들은 또한 사도들 특히 베드로를 통해서 계속됩니다.(5,15-16). 그리고 그 표징들이 이제 일곱 봉사자 가운데 한 사람인 필리포스를 통해서까지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고을에는 큰 기쁨이 넘쳤다”고 사도행전은 전합니다.(8,8) 이 기쁨은 메시아 시대의 기쁨이요, 구원이 왔다는 기쁨이라고 학자들은 풀이합니다. 마술사 시몬의 등장(8,9-13) 그런데 그 고을에는 시몬이라는 마술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마술로 사마리아 사람들을 놀라게 하면서 자기가 큰 인물이라고 떠들어대고 있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마술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사람이야말로 ‘위대한 힘’이라고 하는 하느님의 힘이다” 하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8,9-11) 고대 세계에서는 마술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마술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에서도 마술사 시몬 외에 바르예수라고 하는 마술사가 나옵니다.(13,6-8) 마술을 부리는 마술사 또는 요술사의 존재는 구약 시대에서부터 존재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마술 혹은 마술사라는 단어가 17번이나 나옵니다. 요술 또는 요술사라는 단어를 포함하면 42회나 언급됩니다. 주목할 것은 마술사 시몬이 사는 고을이 사마리아라는 사실입니다. 사마리아는 이스라엘이 솔로몬 임금 사후에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갈라지면서 북 왕국 이스라엘의 수도가 된 도시 이름이자 북이스라엘 왕국 전체를 가리키는 지명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마리아는 아시리아를 시작으로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등 이민족의 침입을 받으면서 이민족들의 문화와 다신 숭배 사상이 유입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순수함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마리아의 이런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볼 때 마술사 시몬의 등장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을 좋지 않게 여겼고, 사마리아인들과 접촉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는 사마리아인들도 마찬가지였지요. 이런 사마리아 고을에 필리포스는 복음을 전했고 그곳 사람들은 구원의 기쁨으로 가득 찹니다. 구원의 기쁨에 넘친 그 고을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한 복음을 전하는 필리포스를 믿게 되면서 세례를 받습니다. 마술사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지요. 그러면서 그는 필리포스 곁을 떠나지 않으면서 여러 표징과 큰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놀라워합니다.(8,12-13) 사도들과 마술사 시몬의 대면(8,14-25)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그곳에 보냈다”고 사도행전은 전합니다.(8,14) 베드로는 사도들 가운데 으뜸이었고, 요한은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하신 제자였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다른 사도들의 협조나 승인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사마리아로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도행전의 저자는 베드로와 요한이 독자적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라 사도들에 의해 파견됐음을 분명히 합니다. 베드로가 사도들의 으뜸이지만 다른 사도들에 의해 파견되는 이 구절은 사도단의 단체적인 성격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내려가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령을 받도록 기도합니다. 그들이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지만, 그들에게는 아직 성령께서 내리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안수하자 그들은 성령을 받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내린 성령이 이제 사도들을 통해 사마리아인들에게도 내리게 된 것입니다.(8,15-17) 그런데 사도들의 안수로 사람들에게 성령이 내리는 것을 본 시몬은 사도들에게 돈을 갖다 바치면서 “저에게도 그런 권한을 주시어 제가 안수하는 사람마다 성령을 받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하고 청합니다.(8,18-19) 말하자면 돈으로 성령을 사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돈으로 성직이나 성물을 사고파는 행위를 ‘시모니아’(simonia, 영어 simony)라고 하는데, 이 단어의 어원이 바로 마술사 시몬이 시도한 행위에서 비롯합니다. 시몬의 요청에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하지요. “그대가 하느님의 선물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니, 그대는 그 돈과 함께 망할 것이오. 하느님 앞에서 그대의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일에 그대가 차지할 몫도 없소. 그러니 그대는 그 악을 버리고 회개하여 주님께 간구하시오. 내가 보기에 그대는 쓴 쓸개즙과 불의의 포승 속에 갇혀 있소.” 그러자 시몬이 그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주님께 간구해 달라고 청하지요.(8,18-24) 베드로와 요한은 사마리아의 고을에서 주님 말씀을 증언하고 전파한 뒤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서 사마리아의 많은 고을에 복음을 전합니다.(8,25) 생각해 봅시다 1. 사마리아 사람들이 필리포스에 의해 복음을 받아들이고 사도들을 통해 성령까지 받습니다. 신앙의 순수성을 잃었다고 유다인들에게서 멸시를 받던 사마리아에 복음이 선포되고 구원의 기쁨이 넘쳐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루살렘을 넘어 땅끝까지 전파되는 첫 자리가 유다인들에게 멸시받던 사마리아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2.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는 그 복음을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술사 시몬이 바로 그런 사람을 대표합니다. 그는 필리포스가 선포하는 말씀을 듣고 또 그가 일으키는 표징들을 보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순수한 믿음이 아니라 자신의 사욕을 채우고자 하는 욕심이 들어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마술사 시몬 이야기는 우리 믿음이 어떠한지를 성찰하게 해줍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6월 30일, 이창훈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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