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 이야기] (27) 사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다(사도 9,26-31)
협력자들 도움으로 어려움 딛고 복음 선포하다 - 다마스쿠스를 빠져나온 사울은 예루살렘으로 가서 사도들을 만나고 복음 선포 활동을 한다. 사진은 예루살렘 구시가지. 제자들의 도움으로 다마스쿠스 성을 빠져나온 사울의 다음 행적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함께 살펴봅니다. 예루살렘에서 만난 바르나바 다마스쿠스를 빠져나온 사울은 이제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예루살렘에 온 사울은 제자들, 곧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신자들과 어울리려고 했으나 모두 사울을 두려워합니다. 그 이유를 사울이 “제자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라고 사도행전 저자는 전합니다.(9,26) 그런데 다마스쿠스에 사울에게 도움을 준 하나니아스가 있었듯이 예루살렘에는 바르나바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울을 받아들여 사도들에게 데려가서 어떻게 사울이 길에서 주님을 뵙고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해 주셨는지, 또 어떻게 그가 다마스쿠스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설교했는지” 이야기해 줍니다. 그래서 “사울은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드나들며 주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설교”합니다.(9.27-28) 바르나바는 키프로스 태생의 레위인으로, 원래 이름은 요셉이었지만 예루살렘의 사도들에게서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인 바르나바라는 별명을 얻은 인물입니다. 그는 자기 소유의 밭을 팔아 예루살렘의 초대 교회 공동체에 바쳤지요.(4,36-37) 그는 예루살렘 사도들에게 신망이 두터운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키프로스 태생인 바르나바는 말하자면 그리스계 유다인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신자들에 대한 사울의 박해가 히브리계 신자들보다는 성전이나 율법을 상대적으로 경시하는 그리스계 신자들을 우선적인 표적으로 삼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본지 제1520호, 6월 23일자 17면 참조), 그리스계 유다인인 바르나바는 사울을 더욱 주시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고, 사울이 회심했다는 소식과 다마스쿠스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다가 빠져나왔다는 소식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에게 거부를 당하자 바르나바는 ‘위로의 아들’이라는 별명처럼 사울을 사도들에게 데려가 그간의 경위를 설명해 주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르나바가 사울을 사도들에게 데려가 이야기해 주었고 사울이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드나들었다’는 표현은 사울(바오로) 자신이 직접 서술하고 있는 내용과 잘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바오로는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베드로와 보름 동안 함께 지냈으며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 외에는 다른 사도들을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갈라 1,18-20 참조) 유다인들의 위협 어쨌거나 바르나바의 도움으로 사도들, 적어도 베드로 사도와 함께 지내고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와 만난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지내면서 담대히 설교할 뿐 아니라 그리스계 유다인들과 이야기를 하고 토론도 벌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사울을 없애 버리려고 벼르고 있었다”(9,29)고 사도행전 저자는 기록합니다. 사울은 이미 다마스쿠스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그곳 유다인들에게 분노를 샀고 겨우 탈출했습니다.(9,20-25) 이제 예루살렘에 와서도 유다인들에게 미움을 사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이는 사울의 회심 때에 주님께서 하나니아스에게 “나는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그에게 보여 주겠다”고 말씀하셨는데(9,16), 그 말씀이 실현되기 시작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회심한 지 이제 3년 남짓. 사울은 복음 선포 활동의 초기부터 이렇게 죽음의 위협을 받습니다. 위기에 처한 사울을 도운 제자들 사울이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을 알게 된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는 사울을 카이사리아로 데려갔다가 다시 타르수스로 보냅니다.(9,30) 카이사리아는 예루살렘에서 북북서 방향으로 120㎞쯤 떨어진 지중해 연안 도시입니다. 그리고 타르수스는 사울이 태어난 곳으로서 킬리키아의 주도(州都)였지요. 이렇게 하여 사울은 무대의 전면에서 잠시 사라집니다. 사울은 처음에는 유다교의 열렬한 신봉자로서 갓 태어난 그리스도 신자 공동체를 박해하는 데 앞장섬으로써 교회에 시련을 안겨주더니, 회심한 후에는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담대하게 선포함으로써 이제는 유다인들에게 반감을 사서 목숨이 위태로운 처지에 처할 뿐 아니라 교회에 또 다른 어려움을 안겨 줍니다. 그런 사울을 멀리 타르수스로 보냄으로써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팔레스티나의 그리스도 제자 공동체는 평온함을 찾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저자는 “이제 교회는 유다와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온 지방에서 평화를 누리며 굳건히 세워지고 주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면서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고 기록합니다.(9,31) 여기서 유다와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온 지방이란 당시 이스라엘 전 지역을 말합니다. 지리적으로 보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유다에 이어, 그 북쪽 사마리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북쪽의 갈릴래아를 언급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은데, 사도행전 저자는 유다에 이어 갈릴래아를 먼저 말하고 마지막에 사마리아를 언급합니다. 여기에는 저자 루카의 의도가 들어 있다고 학자들은 해석하기도 합니다. 유다와 갈릴래아 지방은 유다인들이 살고 있었지만, 사마리아에는 이민족들의 피가 많이 섞여 있어서 유다인들은 이방인 지역과 마찬가지로 여겼기 때문에 이를 고려한 순서 배치라는 것입니다. 생각해봅시다 사울의 회심과 회심 후의 첫 복음 선포 활동과 관련해서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사울의 회심에서는 하나니아스라는 제자가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모두 가정입니다만, 하나니아스가 환시 중에 들은 주님 말씀에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또 다마스쿠스에서 유다인들이 사울을 없애려고 했을 때 제자들이 그를 밤에 탈출시키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예루살렘에서도 마찬가지로 형제들이 그를 카이사리아로, 그리고 나아가 타르수스로 보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물론 사울의 회심은 근원적으로 이방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고자 하느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회심과 복음 선포 활동에서 주변 사람들 곧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 뜻을 따라 행동하려는 제자들, 또는 형제들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흔히 “계획은 인간이 세우지만 이루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다”라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 인간의 손길을 필요로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자주 하느님의 뜻을 묻고 따르고자 하는 노력이 요구됩니다. 하느님의 뜻을 묻고 따르고자 할 때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8월 11일, 이창훈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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