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성경 다시 읽기] 바늘로 찌르듯 따끔한 구원의 책, 잠언(箴言) “잠언은 지혜와 교훈을 터득하고 예지의 말씀을 이해하며, 현철한 교훈과 정의와 공정과 정직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잠언 1,2-3) 잠언(箴言), ‘바늘로 찌르듯 따끔한 말씀’ 잠언은 구약 성경에서 ‘지혜서’로 분류되는 다섯 권(‘지혜문학 오경’) 중 욥기에 이어 둘째 책입니다. ‘잠언(箴言)’이란 명칭은 글자 그대로는 ‘바늘 말씀’이란 뜻인데, 히브리 성경(‘므샬림’)과 그리스어 칠십인역 성경(‘파로이미아이’)과 라틴어 불가타 성경(‘Proverbia’) 같은 고대 성경들부터 여러 현대어 성경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하나같이 ‘격언들, 속담들’이란 의미로 이 책을 부른다는 점을 고려할 때 ‘바늘 말씀’이란 우리의 성경 책 제목은 참 특이합니다. ‘잠언’이란 명칭은 예전에 우리말 성경 번역에 큰 영향을 미친 중국어 성경에서 따온 것인데요, 길 잃은 양들을 ‘바늘로 콕콕 찌르듯 자극하여 구원으로 인도하는 말씀 모음집’이란 의미로 이해할 수 있겠네요. 문득 “박차를 가하다. ”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말을 탈 때에 구두 뒤축에 달려 있는 톱니바퀴 모양의 쇠붙이로 말의 배를 차서 빨리 달리게 한다는 그 박차 말이지요. 하느님에게서 멀어진 줄도 모른 채 아무런 성찰이나 결심 없이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이가 잠언을 읽으면서 구원의 길에 ‘박차’를 가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따끔하고 쓰라린 ‘바늘 말씀’이라 해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잠언, 지혜의 임금 솔로몬과 함께 걷는 일상 잠언은 “이스라엘 임금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잠언”(1,1) 이란 표제로 시작됩니다. 유다 전승은 이미 구약 시대부터 잠언의 저자가 지혜의 임금 솔로몬이라 믿어왔는데, 이는 솔로몬이 삼천 개의 잠언을 지었다는 성경의 증언(1열왕 5,12)과도 일치합니다. 또 잠언에 수록된 “솔로몬의 첫째 잠언집”(10,1-22,16)과 “솔로몬의 둘째 잠언집”(25-29장)의 표제들(“솔로몬의 잠언”, 10,1; 25,1) 또한 솔로몬을 저자로 분명히 언급하고 있지요. 25,1은 “솔로몬의 둘째 잠언집”이 남유다의 성왕 히즈키야 시대(기원전 716-687년 재위)에 그의 신하들이 솔로몬의 잠언들을 수집한 책이라고 명시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현대 대다수의 학자들은 솔로몬을 잠언 전체의 저자라고 무리하게 주장하지 않습니다. 잠언은 오랜 세월동안 지혜의 가르침들을 습득하고 몸소 살아온 수많은 이스라엘의 현자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집성되어 편찬된 공동의 결실이라는 것이지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잠언의 상당 부분이 솔로몬과 직접 연관된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도 않습니다. 어쨌든 성경이 성령의 감도하심에 의해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임을 믿는 우리로서는 어느 구절이 진짜 솔로몬의 것이고, 어느 구절은 아닌가에 목맬 필요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모든 임금들, 현자들, 이방의 현인들보다 지혜로웠던 솔로몬이 우리에게 남겼다 하는 ‘삶의 실제적인 지혜와 구원의 길이 담긴 책’ 잠언을 읽고, 우리의 일상을 비추어 보며 구원의 길을 지혜롭게 찾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니까요. 잠언, 유다인들의 지나간 과거 속 지혜? 잠언은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도덕-윤리관과 실천적 지혜들을 집성한 지혜의 책입니다. 그러나 잠언은 흘러 가버린 과거 속의 특정 민족만을 위한 독점적 지혜가 아니라 모든 시대를 통틀어 그 누구에게도 실제적인 도움을 주어 성공적인 삶으로 이끌어주는 실천적 금언들을 담고 있습니다. 신앙의 깊은 가르침은 물론이거니와 가정 내 부부와 자녀 관계, 사회-경제 활동과 관련된 일들(농사, 목축, 상거래 등), 정의와 법적 문제, 기도와 전례 등 삶의 다양한 구체적인 상황에 곧바로 적용될 수 있는 수많은 가르침과 격언들을 들려주면서, 잠언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일상 속에서 지혜롭고 올바른 삶,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지 그 길을 보여주는 ‘길잡이’ 역할을 합니다. 잠언의 저자는 인간의 잔머리나 조잡한 궁리가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선물인 ‘지혜’만이 인간의 삶을 성공과 구원으로 이끌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힘주어 강조하고 있습니다. 잠언의 구조 잠언은 언뜻 보면 서로 연결점을 찾기 힘든 여러 속담들이 무작위로 나열한 듯 보이나, 실은 잘 짜인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크게 보면 중심에는 일곱 개의 소(小)잠언집이 있고, 시작과 끝에는 지혜를 ‘여인’으로 의인화하여 들려주는 가르침들이 자리하고 있지요. 구약 성경의 지혜서들 모두가 하나 같이 내세우는 공통주제가 있습니다. 바로 ‘모든 지혜의 시작은 주님을 경외함에 있다.’는 가르침이지요. 잠언의 저자는 책 전체의 시작과 끝(1,7; 31,30)에 이 ‘주님을 경외함’의 주제를 위치시키는 수미상관의 기교를 통해, 그 어떤 탁월한 지혜라 해도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면 소용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는 광장에서 소리 높여 지혜를 선포하는 ‘현명한 여인’의 초대를 받아 들이라고(1,20-33; 9,1-18), 부디 그녀를 ‘훌륭한 아내’로 맞아들여 성공적인 삶과 구원의 길로 향하라고 권고합니다.(31,10-31) 이 ‘여인’은 여느 여성이 아니라 바로 잠언이 전하는 ‘하느님의 지혜’ 자체를 가리킵니다.(‘지혜’를 뜻하는 히브리어 ‘호크마’와 그리스어 ‘소피아’ 모두가 여성형 명사이기도 하지요) 도입부(1,1-7) 도입부에서 저자는 이 책을 기록한 목적을 소개합니다. “이 잠언은 지혜와 교훈을 터득하고 예지의 말씀을 이해하며 현철한 교훈과 정의와 공정과 정직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1,2-6 참조) 이 말이 곱씹을수록 참 대단한 것이, 우리가 완덕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덕목들이 여기 다 들어 있습니다. 잠언을 읽으며 그 말씀들을 삶의 실천적 지표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은 ‘지혜와 정의로움을 갖춘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일종의 약속이기도 한 게지요. 지혜에 대한 교훈과 연설(1,8-9,18) 도입부 이후 7장까지는 아버지가 아들을 가르치는 형식으로, 8-9장은 지혜가 부모 역할을 맡아 직접 가르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버지는 부모의 교훈이 자녀에게는 “우아한 화관이며 목걸이”(1,9)라고 말하면서, 악인을 멀리하고(1,10-19) 낯선 여자(2,16; 5,3.20)와 간음녀(7,6-27)로 표현되는 ‘세속적인 방식의 삶’을 좇지 말며, 부디 지혜를 추구하라고 권고합니다. :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말고 악에서 발길을 돌려라.”(4,27) 이어서 지혜롭고 너그러운 여인으로 의인화된 지혜(9,1-6)가 직접 가르치는데, 지혜가 주는 축복과 보상을 알려주면서 지각없고 어리석은 이를 계속 타이르며 지혜의 길로 초대합니다. 지혜는 ‘세상이 창조되기 전 하느님께서 가장 먼저 창조하신 존재로서 창조의 협조자’였다고 스스로를 소개하는데(8,22-31), 이러한 놀라운 신학적 발전은 이후 창조 신학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솔로몬의 첫째 잠언집(10,1-22,16) 여기에는 375개의 잠언이 수록되어 있는데, 375는 솔로몬의 이름에 사용된 히브리어 알파벳들을 숫자로 환산한 것과 일치합니다. 그만큼 저자가 이 잠언집을 치밀하게 구성했다는 의미이지요. 솔로몬이 지은 잠언이라 소개되는 이 가르침들은 이제 지혜를 받아들이라는 초대를 넘어 구체적인 격언과 도덕-신앙적 교훈들을 행동으로 실천할 것을 요구합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각 절이 두 행씩 대구(對句)를 이룬 형태를 띠는데, 10-15장은 주로 반의적 대구법을(“재물은 진노의 날에 소용이 없지만, 의로움은 죽음에서 구해준다.”: 11,4), 16-22장은 주로 동의적 대구법(“말씀에 유의하는 이는 좋은 것을 얻고, 주님을 신뢰하는 이는 행복해진다.”: 16,20)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둘째 잠언집 (25,1-29,27) 저자는 이 잠언집이 남왕국 유다의 성왕 히즈키야의 신하들이 수집한 것이라 소개하는데, 학자들은 이것을 잠언 전체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전반부(25-27장)는 주로 명령(“네 원수가 목말라하거든 물을 주어라.”: 25,16)과 금령(“내일 일을 자랑하지 마라.”: 27,1)이나 비유(“알맞게 표현된 말은 은 쟁반에 담긴 황금 사과와 같다.”: 25,11) 등의 형식을 통해, 후반부(28-29장)는 주로 반의적 대구법 형식(“사람을 무서워하면 그것이 올가미가 되지만, 주님을 신뢰하면 안전해진다.”: 29,25)을 통해 지혜의 가르침들을 전합니다. 전반부는 좀 일반적인 속담 같은 느낌이 있다면, 후반부는 “주님”, “율법”이나 “예언”을 언급하면서 보다 신앙적인 색채를 보여 좀 더 친근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전반부에도 구약의 신앙의 조상들의 재치와 지혜가 엿보이는 구절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둔한 자에게 그 어리석음에 맞추어 대답하지 마라. 너도 그와 비슷해진다. 우둔한 자에게 그 어리석음에 맞추어 대답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자기가 지혜로운 줄 안다.”(26,4-5)라는 말은 우리가 진리와 정의를 외면하는 어리석은 이의 장단에 맞추어 놀아나서는 안 되겠지만 때로는 그 수준에 맞게 깨우침을 주어 그가 교만해지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는 신앙인의 미덕을 가르칩니다. 일반적인 속담처럼 보이는 잠언들도 신앙의 눈으로 읽고 가슴에 담으면 하느님께서 내게 주시는 소중한 조언이 됩니다. 부록 잠언들(30,1-31,9) 여기에는 아구르의 잠언(30,1-14)과 수 잠언(30,15-33), 르무엘의 잠언(31,1-9)이 속합니다. 마싸 사람 아구르(30,1)나 마싸 임금 르무엘(31,1) 모두 이방인을 지칭한다는 점에서(마싸는 아랍 부족 일파로 보임) 학자들은 이들의 이름을 딴 두 잠언집이 원래 이방인 현인의 작품이었다가 유다 전승 안에 들어왔다고 봅니다. 아구르의 잠언은 인간의 지혜의 불완전함에 대한 깨우침(30,1-6), 검소함과 진실함을 청하는 기도를(30,7-9), 수 잠언은 “셋”과 “넷”에 맞춘 형상들을 열거하며 전하는 지혜의 말씀들을(30,15-33), 르무엘의 잠언은 어머니가 젊은 군왕에게 금욕과 정의를 가르치는 교훈들을(31,1-9) 담고 있습니다. 특히 이방인의 입에 담긴 기도 형식이긴 하지만 아구르의 기도(30,7-9)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망하고 채워야만 안심하곤 하는 우리의 일상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합니다. 꼭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훌륭한 아내에 관한 시(31,10-31) 잠언의 마지막 대목에서 저자는 시 형식을 통해 ‘훌륭한 아내의 자질과 능력’을 칭송합니다. 이 글은 ‘지혜롭고 신실하며 생활력 있고 기품이 넘치는 아내를 얻는 일’이야말로 성공한 인생이라 가르치고 있지요. 현인이 말하는 이 아내는 ‘탁월한 현모양처’를 지칭하는 동시에 ‘하느님의 지혜’ 자체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덕스럽고 훌륭한 아내를 얻듯 하느님의 지혜와 교훈을 동반하여 매일 구원의 길을 걸어가는 삶이야말로 참으로 하느님 보시기에 ‘성공한 인생’임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지요. 문득 시편집의 첫 구절이 생각나네요. 참 행복의 길은 악을 멀리 하고 하느님의 뜻 안에 머물며 지혜롭고 복된 날들을 이어가는 삶에 있다는 그 말씀 말입니다. “행복하여라! 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들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겨 제때에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시편 1,1-3) 잠언, 여느 인생 길잡이 책? 하느님이 주신 구원의 길잡이! 서점에 가면 ‘인생을 성공하는 OO가지 방법’ 같은 교양 책들이 널려 있습니다. 그 책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의 잠언은 그런 세상의 지혜를 다룬 책들과는 다릅니다. 사실 잠언을 읽다보면, 어느 대목엔가 은연중에 여느 속담집을 대하듯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분명 잠언의 가르침들은 실용적이 고 세속적인 성격을 넘어, 믿음의 선조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생명의 말씀들입니다. “게으르면 깊은 잠에만 빠지고 나태하면 배를 곯는다.”(19,15) 같이 아주 단순하고 당연한 말씀 한 대목조차도, 삶에 지쳐 영적으로 무기력하던 한 사람이 스스로를 성찰하고 나태함에서 벗어나게 하는 결정적인 깨달음이 될 수가 있습니다. 남에게 작은 것도 선뜻 베풀지 못하고 늘 옹색한 마음으로 살던 이가 “가난한 이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주님께 꾸어 드리는 이, 그분께서 그의 선행을 갚아주신다.”(19,17)는 말씀에 완전히 변화되기도 하고 말이지요. 하느님의 말씀은 그런 힘이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제 잘못입니다.’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이 해결될 일을 괜한 자존심이나 어색함 때문에 미루다가 낭패를 본 사람이, 만약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한 마디 속담을 진작 마음에 품었더라면 결과는 크게 달라졌겠지요. ‘뭐, 별일 있겠어? 어떻게 되겠지.’ 하다가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는 말이 떠올라 한 번 확인해 봤다가 큰 화를 면하게 된 사람에게는 그 한마디 속담이 사람 목숨을 살린 셈이지요. 그렇습니다. 한마디 속담조차 그것을 곰곰이 되새기며 자신의 삶을 비춰보는 거울처럼 사용하는 이에게는 결정적인 도움이 되곤 합니다. 하물며 성령의 감도 아래 우리에게 성경 말씀으로 주어진 잠언이 지닌 구원의 능력이야 한낱 속담에 비하겠습니까.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히브 4,12) [월간빛, 2019년 10월호, 강수원 베드로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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