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 이야기] (36) 헤로데의 죽음, 바르나바와 사울의 사명 완수(12,18-25)
죽음을 부른 헤로데의 오만함 - 헤로데 아그리파 임금은 카이사리아에서 연설을 하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사진은 지중해변 도시 카이사리아 유적지의 일부. 야보고를 사형에 처하고 베드로까지 죽이려고 했던 헤로데 아그리파가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12,18-23) 바르나바와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사명을 수행하고 안티오키아로 돌아갑니다.(12,24-25) 카이사리아로 내려간 헤로데의 죽음(12,18-23) 무교절이 끝나면 베드로를 끌어내 사형에 처함으로써 유다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했던 헤로데 아그리파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베드로가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군사들 사이에는 적지 않은 소동이 일어나고 헤로데는 베드로를 찾지 못하자 파수병들을 문초한 뒤에 사형에 처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고는 지중해변 도시 카이사리아로 내려가 그곳에서 지내지요.(12,18-19) 여기서 사도행전 저자 루카는 헤로데가 티로와 시돈 사람들에게 몹시 화가 나 있었고 그래서 티로와 시돈 사람들이 헤로데에게 가서 화평을 청했다고 전합니다. 헤로데가 왜 티로와 시돈 사람들에게 화가 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지만 두 도시 사람들이 헤로데에게 화평을 청한 이유에 대해서는 “그들의 지방이 임금의 영토에서 양식을 공급받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12,20) 말하자면 헤로데의 화가 계속해서 티로와 시돈 사람들에게 미치면 양식을 공급받지 못할까 봐 화평을 청했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열왕기 상권을 보면, 티로와 시돈 사람들은 솔로몬 임금 때부터 유다 지방에서 식량을 공급받아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1열왕 5,25) 티로와 시돈이 해안 도시들이어서 밀 같은 곡식이 부족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헤로데의 화를 풀어주지 못한다면 양식을 공급받지 못하리라는 것이 뻔하지요. 루카는 이어 “정해진 날에 헤로데는 화려한 임금 복장으로 연단에 앉아 그들에게 연설을 하였다”(12,21)고 전하는데, 이 문장에서 “정해진 날”이 무엇을 가리키는지가 확실하지 않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재위 41~54)가 브리타니카(지금의 영국)를 정복하고 개선한 것을 경축하는 날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브리타니카를 정복하고는 44년 초에 로마로 개선했는데 헤로데 아그리파가 이를 경축하기 위해 정한 날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맥으로는, 티로와 시돈 사람들이 헤로데에게 화평을 청했고 그래서 평화 조약을 체결하기로 정한 날 혹은 체결을 경축하는 날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습니다. 어쩌면 두 날이 겹쳐졌을지도 모르지요. 다시 본문으로 돌아옵니다. 정해진 그 날 헤로데가 연설을 하는데 군중이 “저것은 신의 목소리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다” 하고 외쳤고, 그러자 즉시 주님의 천사가 헤로데를 내리쳐서 그는 벌레들에게 먹혀 죽고 맙니다. 루카는 천사가 그를 내리친 이유로 그가 “영광을 하느님께 돌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전하지요.(12,22-23) 이 대목은 헤로데 아그리파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헤로데 아그리파는 기원후 44년 4월에 죽었다고 합니다. 유다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헤로데는 심한 복통을 일으켜 닷새 동안 앓다가 죽습니다. 학자들은 그의 죽음을 두고 유다인들을 혹독하게 박해한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임금의 죽음과 흡사하다고 봅니다. 이와 관련, 구약성경 마카베오기 하권은 이렇게 전합니다. “하느님께서 보이지 않는 치명타를 그에게 가하셨고… 그는 내장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고 속으로 지독한 고통을 겪게 되었다.… 이 사악한 자의 눈에서는 구더기들이 기어 나오고,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살아 있기는 하지만 살은 썩어 문드러져 갔다.… 매우 비참한 죽음으로 삶을 마쳤다.”(2마카 9,5-28) 그리고 그런 비참한 죽음은 그의 “오만함”과 “초인적인 교만” 때문이라고 마카베오 하권은 전합니다. 헤로데 역시 자기를 칭송하는 군중의 소리에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은 교만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음을 루카는 나타내고자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르나바와 사울이 안티오키아로 돌아가다(12,24-25) 야고보 사도의 순교, 베드로의 기적적인 풀려남, 그리고 헤로데 아그리파의 죽음이라는 세 사건을 소개하고 난 루카는 다시 바르나바와 사울의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두 사람은 안티오키아 교회가 기근으로 어려움을 겪는 유다 지방의 형제들을 위해 모금한 구호 헌금을 전달할 대표로 보낸 사람들입니다.(11,30) 하지만 루카는 이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한 행적을 자세히 설명하기보다는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사명을 수행한 다음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을 데리고 돌아갔다”(12,25)고 짧게 전합니다.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 혹은 요한 마르코는, 지난 호에서 살펴본 것처럼, 베드로가 감옥에서 풀려나서 찾아간 집 주인 마리아의 아들이고(12,12) 베드로가 아들처럼 여기는 이로서 마르코복음의 저자로 전해지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요한 마르코를 다시 언급함으로써 사도행전 저자는 바르나바와 사울 외에 요한 마르코 또한 앞으로 역할을 하게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루카는 이 소식을 전하기에 앞서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면서 널리 퍼져 나갔다”(12,24)고 기술합니다. 말하자면, 야보고의 순교, 베드로의 풀려남, 헤로데의 죽음이라는 외적인 사건들 이면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계속 성장하고 퍼져 나가고 있음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저자의 이런 표현은 하느님 나라에 관한 예수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마르 4,26-29) 생각해봅시다 1. “저것은 신의 목소리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다.” 헤로데의 연설에 군중이 외친 이 말은 황제나 왕을 신격화한 당시 이교 세계에서는 단순한 아첨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찬사를 나타내는 표현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길”(9,2)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런 표현은 하느님께 대한 모독이자 또한 인간의 오만함과 교만함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사도행전 저자는 바로 이런 관점에서 헤로데의 죽음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잠언의 말씀을 되새겨봅니다. “파멸에 앞서 마음의 오만이 있고 영광에 앞서 겸손이 있다.”(잠언 18,12) 2.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면서 널리 퍼져 나갔다.” 사도행전 저자가 짧게 전하는 이 구절은 깊이 생각할 여지를 줍니다. 사람들은 세상일에 파묻혀 지내면서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여기고 살아갑니다. 그러는 사이에 하느님 말씀은 자라면서 널리 퍼져 나갑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살이의 지혜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이 자라고 퍼져 나가는 것을 보고 깨달을 수 있는 마음의 눈과 귀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10월 20일, 이창훈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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