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자료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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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 | 작성일2013-01-25 | 조회수432 | 추천수0 | 신고 | |||||||||||||||||||||||||
로마서 13,8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하셨는데 언제 완성 하셨을까? 요한19,30 십자가 위에서 세상 모든죄를 뒤집어 쓰시고 숨을 거두시며 "다 이루어 졌다" 하십니다. 이게 율법과 예언서의 완성(마태5,17)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마태7,12절에서 "남이 너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해 줘라"라는 의미는 인간적인 것이 분명 아닙니다. 뭘까요? 전 그게 궁금한 겁니다. 2013. 01. 28 옮긴글들임. [펌글들] 황금률 [黃金律, Golden Rule]은 기독교에서 처음 사용된 용어로 〈신약성서〉 〈마태오의 복음서〉 7장 12절에 나오는 교훈입니다. 예수가 산상 수훈(山上垂訓) 중에 보인 기독교의 기본적 윤리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가르침을 이릅니다.
이 행위 규범은 그리스도교도가 이웃에게 해야 할 도리를 요약한 것으로, 기본적인 윤리 원칙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황금률이 2세기 문서인 〈디다케 Didachē〉·〈아리스티데스의 변명 Apology of Aristides〉에는 "다른 사람이 너희에게 하지 않기를 원하는 것을 너희도 다른 이에게 행하지 말라"라는 금지 형태로 나오는데, 이것들은 초기 교리문답서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황금률은 〈구약성서〉 〈신명기〉에 나오는 '나그네를 사랑하라'는 교훈을 상기시킵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스도교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금지 명령의 형식으로 된 이 교훈은 외경 〈토비트〉 4장 15절, 위대한 유대인 학자 힐렐(BC 1세기)과 알렉산드리아의 필론(BC 1세기~AD 1세기)의 저서, 공자(BC 6~5세기)의 〈논어〉에서도 각각 볼 수 있습니다. 그외에도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소크라테스·세네카 등의 저서에서도 이와 비슷한 형식으로 나옵니다.
[또펌글] 황금률(토0514) 어제 밤에는 유집사한테 괜히 신경질을 내었고, 나한테 일방적으로 당하여 나한테 억울한 점이 엄청 많을 거라 생각하며, 내 자신을 반성하다가 황금률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왜 황금률로 했느냐 하면 며칠전에 한 교우님께 내가 했던 말이 있어 다시 한번 반복한다는 의미에서 여러분께 간략하게나마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들은 항상 우리의 신앙을 마음속에 품고 실천하고자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구체적인 실천방법이 무엇이라 생각하고 계십니까? 주님의 새 계명인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의 그 구체적인 실천의 말씀이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우리 인간 구원의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자유의지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하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선택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라 여겨집니다. 즉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능력과 권리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짐승이나 돌이나 나무와 다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유의지를 말하면서도, 이와 모순되는 모든 것이 절대적으로 예정이 되어 있다고 주장을 합니다. 예정 즉 그 목적지가 미리 정해져 있다는 것은 자유의지와는 정반대 되는 내용입니다. 모든 것이 예정이 되어 있다면 우리는 회개를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선택의 권리를 남용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선택의 그 결과는 필연적으로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좌우지간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는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각자 자기가 생각한대로 많은 말과 생각이 있을 것이지만 일반적으로 먼저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말하자면 상대방의 이익을 존중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부정적인 말로 한다면 남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일상 생활에서 실천할 때, 그 어떤 결정이 정말 상대방을 사랑해서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지 아닌지를 분별하고 판단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큰 잘못 없이 판단할 수 있는 원칙은 "그 결정이 나에게 이익이 큰가, 아니면 상대에게 이익이 큰가" 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나의 이익보다 상대방에게 이익이 크게 된 결정이면 황금률에 크게 빗나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의지, 그것은 바로 인간 구원의 기본 요소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으로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황금률의 실천은 바로 이 자유의지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말씀인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의 실천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율법과 예언서의 본 뜻" 즉 주님말씀의 본뜻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하루 하루를 우리는 지혜롭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지혜롭다는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하는 데 있지 않고 참인지 아닌지 깨닫는데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요점은 주는 것이 먼저이고 받는 것은 그 다음입니다. 우리 예수인들은 주고 받는 행동을 해야지, 받고 주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리더쉽에 관심을 가지고 탐구한다. 현대를 리더쉽의 위기라고도 한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우리 사회에서 어느 훌륭한 지도자가 나온들 순리가 흐르고 공의가 제대로 서겠는가? 나는 리더쉽이란 계몽주의시대의 산물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기독교적 리더쉽 - 섬김의 리더쉽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만인의 만인에 의한 투쟁의 시대, 정글의 법칙이 난무하는 현 우리 사회에서 이런 리더가 설 공간은 있는가? 먼저 구성원의 공동체정신부터 확립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공동체정신을 주장한다. 케네디가 말한대로,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라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는 것이다.
성경의 황금율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이다. 이는 예수가 말하기 전에 구약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내용이다. 선지자들은 언제나 '과부와 고아를 돌아보고, 나그네를 대접하라.'고 외친다. 언제나 히브리 예언자들은 백성들에게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널리 인간을 사랑으로 끌어안아 공감적 포용을 확장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공동체정신은 바로 이웃(약자)을 돌아보는 것이다. 그 때에만 공동체가 지속성장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공감의식은 요단강에서 인더스강 계곡과 양자강 유역에 이르기까지 예외없이 나타났다.
공자는 영적 충만한 생활을 누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군자가 되는 것이며, 삶의 진정한 목적은 도를 깨우치는 것이라고 믿었다. 도는 개인을 초월하는 것이며, 에고를 버리고 다른 사람과 깊은 동정적 관계를 시작할 때 찾아지는 것이다. 그는 "내가 서고자 하면 남을 세워야 한다(己欲立而立人)“라고 말했다. 그리고 제자 중 하나가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단 한 가지 가르침을 알려달라고 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己所不慾 勿施於人)" 이스라엘에서 7,000킬로미터도 더 떨어진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똑같은 황금율을 말한 것이다.
붓다 이전에 인도의 수행법인 요가의 방법은 고행이었다. 고행을 통해서 인간의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붓다는 이런 수행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참선 수행은 네 단계로 진행한다고 말했다. 첫 단계, 모든 인간에게 마음을 열고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인간의 정체성은 늘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의 총합이라고 생각했다. -제러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를 중심으로 여기서 내가 깨달은 '부자로 사는 법'도 일맥상통하고 있다.
부자로 사는 법
이 나이가 되어서야 좀 쉽게 사는 법을 터득했다
사랑이 아픈 것은 탐하기 때문일거야 삶이 허무한 것은 잡지 못함일거야
喜怒愛樂貪嗔恥가 다 貪에서 오는 것을 탐하는 사랑에서 나누는 사랑으로 탐이란 끈을 놓으면 자유롭다
잡지말고 바라보자 다가가 나누자
나눔은 넉넉함이요 넉넉함은 부요함이다
나만의 편견일지 몰라도 나는 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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