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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성서의 해: 분열 이후 - 북이스라엘의 멸망까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12-10 조회수7,313 추천수0

[2020 사목교서 ‘성서의 해 II’ 특집] 분열 이후 : 북이스라엘의 멸망까지

 

 

이스라엘의 분열 이후,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는 각자의 길을 걸어갑니다. 남 유다 왕국은 다윗 왕조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나라를 통치하였던 것에 비해서, 북 이스라엘은 예로보암에서 시작되어 오므리 왕조(오므리-아합-아하즈야-요람)와 예후 왕조(예후-여호아하즈-여호아스-예로보암2세-즈카르야)의 변화를 겪게 되면서 정치적으로 안정적이지 않은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이러한 내적인 혼란 속에서 예후 왕조의 예로보암 2세 시대(기원전 787-747)에 이르러 북 이스라엘은 정치적 안정과 더불어 경제적 번영을 누리게 됩니다. 북 이스라엘의 이러한 안정기는 그림자를 낳게 되는데, 상업의 번창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도 있고, 이러한 부자들은 자신들의 재산으로 권력을 얻었고, 가난한 사람을 억누르게 됩니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에게 익숙한 예언자인 아모스와 호세아가 북 이스라엘에서 활약합니다(1열왕 17-19장; 21,17-29; 2열왕 1,3-8,15; 9,1-3; 13,14-21). 이들 예언자는 북 이스라엘에 만연한 사회 불의에 대해서 고발하고, 야훼 하느님이 아닌 이방신을 섬기는 것에 대하여 강하게 경고합니다.

 

북 이스라엘은 예로보암 2세가 죽은 이후에 다시 정치적 격변기에 놓이게 됩니다. 예로보암의 뒤를 이은 즈카르야가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지만(기원전 747), 여섯 달 만에 암살되고(2열왕 15,8-10), 즈카르야를 암살한 살룸(기원전 747)도 즉위한 지 한 달 만에 므나헴에게 암살됩니다. 뒤이어 왕권을 잡은 므나헴(기원전 747-738 재위)은 당시 고대 근동의 패권 국가였던 아시리아의 침입을 받으면서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내정(內政)이 안정적이지 않은 상황 속에서 므나헴은 강대국의 침입을 받고 조공을 바쳐야 하는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러는 가운데 므나헴의 뒤를 이은 므나헴의 아들 프카흐야(기원전 737-736 재위)는 페카에게 암살당하고, 페카(기원전 735-733? 732?)가 정권을 잡게 됩니다.

 

페카의 통치시기에 주목할 만한 사건이 있습니다. 그는 임금이 되고 기원전 734년경에 아람 임금 르친과 함께 반아시리아 동맹 결성을 시도 합니다. 강대국인 아시리아의 횡포에 맞서고자 한 것입니다. 이 동맹의 성패는 강대국 이집트와의 긴밀한 협력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남 유다의 도움이 절실했는데, 남 유다는 이 동맹에 가담하지 않으려 하자 페카는 시리아-에프라임 전쟁을 일으켜서 당시 남 유다의 임금 아하즈를 압박하게 됩니다. 이러한 위협을 받은 남 유다의 아하즈 임금은 아시리아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아시리아 군대는 기원전 734년 북 이스라엘에 침입하여 많은 이들을 아시리아로 끌고 갑니다. 그러한 혼란 속에서 북 이스라엘의 임금은 다시 한 번 바뀌게 됩니다. 호세아(예언자 호세아와는 다른 인물입니다)가 페카를 죽이고 이스라엘의 임금이 됩니다(기원전 732-722). 그렇게 임금이 된 호세아 또한 아시리아의 혼란기를 틈타서 아시리아에 맞서서 반란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좋지 못했습니다. 그의 반란으로 아시리아는 북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파괴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유배시키게 됩니다(2열왕 17,1-6). 이것이 기원전 722년에 벌어진 사건입니다. 그렇게 북 이스라엘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맙니다.

 

신명기계 역사서는 북 이스라엘의 멸망의 원인을 단순하게 바라봅니다. 바로 북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충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만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이방 민족의 다른 신들을 섬기기 위해 산당을 짓고, 향을 피우면서 다른 민족의 풍습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북 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예언자들은 이러한 부조리한 상황을 날카롭게 비판하였지만, 백성들은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멸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는 결론을 역사서는 내려줍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을 통해서 열왕기는 독자들에게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역사의 진정한 주인은 아시리아와 같은 강대국이 아니라, 바로 야훼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국가의 안위를 위해서 여러모로 동맹을 맺고자 했던 북 이스라엘 임금들의 노력이 오늘날의 눈으로는 잘못된 것이라고 보기에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열왕기는 그러한 그들의 노력이 야훼 하느님을 배제한 자신들만의 노력이었다는 사실을 비판하고,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하느님을 의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질책하고 있는 것입니다.

 

[2019년 12월 8일 대림 제2주일(인권 주일, 사회 교리 주간) 인천주보 3면,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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