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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흥미진진 성경읽기: 찬란한 봄날이 찾아왔다, 세리 자캐오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1-10 조회수5,890 추천수0

[양승국 신부의 흥미진진 성경읽기] 찬란한 봄날이 찾아왔다, 세리 자캐오

 

 

예수님께서 기쁨으로 충만한 지상생활을 만끽하셨으며, 탁월한 유머 감각의 소유자이심을 확신하면서 ‘흥미진진 성경읽기’ 코너를 시작합니다. 사실 복음서 어디에도 예수님께서 활짝 웃으셨다거나, ‘아재개그’를 구사하신 대목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서너살배기 귀여운 어린이들을 가까이 부르신 후, 환한 미소와 함께 안아주고 귀여워해주셨을 것입니다. 갈릴래아 호수 위를 의기양양하게 걸어가다가 갑자기 물에 빠져든 수제자, 조금 전까지의 허세는 온데간데없이 ‘살려달라!’고 외치는 그의 우스꽝스런 모습 앞에, 예수님께서는 배를 쥐고 웃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언제나 쉽고 재미있고 흥미진진했습니다. 그래서 가방끈이 짧은 백성들도 잘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성경을 좀 더 편안하고 재미있게 읽고 묵상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하며 이 여정의 문을 엽니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던 어느 늦가을,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 스산한 날이었습니다. 수도원 진입로에 수북이 쌓인 낙엽을 열심히 쓸어 모으고 있는데, 오래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전직 ‘조직원’에다가 ‘큰집’ 출신 노숙인께서 저를 찾아왔습니다. 점심시간 전이었는데, 벌써 술기운이 코를 찔렀습니다. 찾아오신 요지는 “포장마차라도 하게 큰 거 한 장만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큰 거 한 장이 얼마냐? 백이냐?” 물었더니 “백으로 뭐하냐? 천은 돼야지!”라는 겁니다.

 

날씨도 추운데 따뜻한 점심이나 한 끼 사드리고 보내려고 단골식당에 데려갔습니다. 식사가 다 끝나갈 무렵 술이 조금 깼는지,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나이 들다보니 조직도 자신을 외면하고, 날씨는 추워지고, 여기저기 쑤시고 저리고, 이젠 노숙도 힘들어서 못하겠어요. 어디 따뜻한 시설 아는 데 있나요?” 저는 즉시 노숙인 생활시설 책임자로 있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원장님 답변은 너무나 쿨했습니다. “지금 당장 모시고 오세요. 단 오시는 길에 구청에 들러 ‘노숙인 발생 신고서’라는 서류 한 장 떼어 오세요.” 마침 담당자가 자리에 있었습니다. “어떻게 오셨어요?” “노숙인 발생 신고서 떼러 왔습니다.” 연세 지긋한 담당자가 우리 둘을 한참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마침내 하시는 말씀! “두 분 다 입소하실 건가요?” ㅋㅋㅋ 그제야 저는 마당 쓸다 오느라고 그 형제 못지않은 제 복장 상태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세리가 지나가면 집이 무서워 떤다

 

반나절 동안 정체 모를 냄새가 진동하는 형제를 모시고 다니면서 저는 속이 얼마나 거북했는지 모릅니다. 차창을 열어봐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어둠의 세계에 깊이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 여차하면 소리 질러버리고 폭력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삶을 공유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많은 인내와 희생을 요구하는 일인지 모릅니다. 이런 면에서 공생활 기간 내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죄인들과 하류 인생들,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사랑과 자비는 얼마나 뜨겁고 파격적인 것인지, 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루카 복음사가가 전해주는 가장 따뜻한 이야기 가운데 하나인 ‘세관장 자캐오 회개 사건’은 아주 좋은 예입니다. 당시 세리들의 악행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세리가 지나가면 집이 무서워 떤다.’ 얼마나 지독했으면 이런 말까지 나돌았습니다. 그만큼 당시 세리들은 폭력적이었습니다. 제때 이자를 갚지 않으면 인정사정없이 뒤엎어버렸습니다. 땅문서나 집문서, 돈 될 만한 것을 싹 쓸어갔습니다. 자캐오는 세리들의 두목이었으니, 요즘으로 치면 조폭 세계의 큰형님으로 군림하며 예리코 밤세계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자캐오 회개 사건

 

자캐오 회개 사건은 아주 짧은 스토리지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흥미진진하게 전개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예리코라는 도시에 들르셨습니다. 수많은 군중이 그분을 뒤따르고 길가에 나와 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천천히 걸어가시던 예수님께서 큰 돌무화과나무 앞에 딱 멈춰 서셨습니다. 숨어 있던 자캐오를 보신 것입니다. 제가 예수님이었다면 어떻게 처신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당시 자캐오는 예리코에서 무시 못할 존재였습니다. 죄인으로 소문난 사람이었지만, 지역 유지였습니다. 그런 자캐오가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가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지만, 그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아마도 모르는 체하고 지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자캐오를 뚫어지게 바라보셨습니다. 예수님도 꽤나 짓궂은 분이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끄럽고 송구스러운 나머지 애써 몸을 숨기고 있었는데,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셨으면 좋으련만, 굳이 멈춰 서서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신 것입니다. 이윽고 예수님의 시선과 자캐오의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쳤습니다. 그 순간 자캐오의 심정이 어떠했을지는 불 보듯 뻔합니다.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긴장감이 밀려와 숨이 멎을 것만 같았을 것입니다. ‘아니, 생면부지 저분이 왜 내 앞에 서시는 거지? 왜 나를 빤히 바라보시는 거지? 저분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는데, 내 어두운 과거를 모두 알고 있을 텐데, 오늘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인 창피를 당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상황은 급반전됩니다. 자캐오의 걱정과 달리 예수님께서는 언성을 높이지 않으십니다. 화를 내지도 야단치지도 않습니다. 세상 다정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그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루카 19,5) 자캐오는 ‘존귀하신 분이 내 집에 머물겠다니, 이게 꿈이냐? 생시냐?’ 생각하며, 다람쥐처럼 조르르 나무 아래로 내려섰습니다. 한없이 따뜻하고 자상하신 예수님의 배려에 자캐오의 눈에서는 쉼 없이 감사와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렸을 것입니다.

 

크신 주님의 자비에 힘입어 어둡고 스산했던 자캐오의 겨울이 지나가고 따사롭고 찬란한 봄날이 시작된 것입니다. 반전은 그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용광로보다 더 뜨거운 주님 사랑 앞에 수전노 자캐오는 자신도 모르게 지갑을 활짝 열어버립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루카 19,8) 그리고 이어지는 마지막 반전, 세상 사람들은 그의 구원 가능성을 0퍼센트로 봤는데, 주님께서는 그에게 100퍼센트를 선포하십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루카 19,9)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시는 주님

 

예리코는 해면 아래 250m에 건설된 지구상 가장 낮은 도시로 유명합니다. 해발 700m에 위치한 서쪽 예루살렘과 무려 1000m 넘는 고도차를 보입니다. 그런데 가장 높으신 예수님께서 가장 낮은 도시의 가장 키 작은 사람, 가장 짙은 어둠 속에 살아가던 자캐오에게 내려오셨습니다. 그의 집에 머무르시며 그의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회개하는 그를 칭찬하시며 바로 그 자리에서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자캐오에게 베풀어진 즉각적인 구원의 선포,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자캐오는 열렬히 예수님을 뵙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가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인간의 구원은 열렬히 바라보고, 간절히 기다리고, 진지하게 들음을 통해 다가옵니다. 혹시라도 지금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 서 계십니까? 너무 슬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음 크게 먹고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머지 않아 기적처럼 그분께서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 옛날 자캐오에게 하신 것과 똑같이 내 이름을 불러주시며, 내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주실 것입니다.

 

양승국 - 살레시오회 소속 수도사제. 저서로 『축복의 달인』 『친절한 기도레슨』 『성모님과 함께라면 실패는 없다』 『성모님을 사랑한 성인들』 등이 있다.

 

[생활성서, 2020년 1월호, 양승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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