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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사도행전을 따라가는 성경의 세계: 예루살렘 (2) 성령강림과 사도들의 활동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03 조회수6,810 추천수0

[사도행전을 따라가는 성경의 세계] 예루살렘 (2) 성령강림과 사도들의 활동

 

 

– 예수 시대 예루살렘 도성 축소 모형, 오른쪽이 예루살렘 성전.

 

 

첫 성령강림

 

사도행전 2장은 오순절에 일어난 첫 성령강림 사건을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합니다. 이 사건은 대략 네 부분으로 구성할 수 있습니다.

 

1) 제자들 위에 성령이 내리다: 오순절이 됐습니다. 이날 제자들은 예루살렘 성 안 한 집에 모여 있었습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있던 온 집 안을 가득 채웁니다. 그리고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합니다(사도 2,1-4).

 

2) 몰려온 사람들이 놀라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그때 예루살렘에는 예루살렘 주민들뿐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에서 온 독실한 유다인들이”(사도 2,5) 있었습니다. 그들은 깜짝 놀랍니다. 갈릴래아 출신인 사도들이 하는 말이 듣는 사람들에게 저마다 자기네 고장 언어로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지만, 더러는 “새 포도주에 취했군” 하고 빈정거립니다(사도 2,5-13).

 

– 첫 성령강림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이층 방.

 

 

3) 베드로가 설교하다: 그때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 말합니다. 상당히 길게 이야기합니다만,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 모습이 하느님께서 마지막 날에 모든 사람에게 당신의 영을 부어주시리라고 한 요엘 예언자의 예언이 성취됐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께서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님을 다시 살리셔서 주님이자 메시아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사도 2,14-46)

 

4) 사람들이 회심하다: 베드로의 말에 유다인들은 가슴이 뜨끔해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베드로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죄를 용서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베드로는 이 약속이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이에게 해당’한다고 덧붙입니다. 베드로의 말을 듣고 이날 세례를 받은 이의 숫자가 삼천 명가량 됐다고 사도행전은 전합니다(사도 2,37-41)

 

이 첫 성령강림 사건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좀 더 깊이 생각하도록 해줍니다. 몇 가지만 살펴보면 첫째, 성령을 받을 준비입니다. 사도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나에게서 들은 대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기다려라”(사도1,5) 하신 예수님의 분부를 지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성령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함께 모여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며”(사도1,14)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황금돔(위)과 <불구자를 고치는 성 베드로> 이탈리아 화가 마솔리노(1383-1447).

 

 

둘째, 하느님의 영인 성령은 하느님의 집인 성전에 거처하십니다. 그러나 성령강림 사건은 성령께서 또한 주님의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곳에 내리신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이미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마태 18,20)고 말씀하셨지요.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 곧 주님의 성령이 머무시는 곳입니다.

 

셋째,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죄를 용서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우리는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 성령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선물을 계속 받아 누리려면 늘 새롭게 회개하는 삶이 요청됩니다.

 

 

사도들의 활동

 

성령강림이 가져다준 또 한 가지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사도들의 변화와 활동입니다. 성령강림 전까지 사도들은 움츠러들어 지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도 유다인들이 무서워 문을 모두 잠가놓고 지냈을(요한 20,19) 정도로 두려움에 차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예루살렘 성안 위층 방에서 기도하며 지낸 것도 어쩌면 사람들 앞에 나서기가 두려웠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랬던 그들이 성령을 받은 후에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일으키시어 주님이요 메시아로 삼으셨다’고 담대하게 선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활동은 성령강림이 있었던 오순절 첫날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3장과 4장은 베드로와 요한으로 대표되는 사도들의 이런 변화와 활동을 잘 보여줍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루살렘 성전 아름다운 문 곁에서 구걸하던 태생 불구자를 “나자렛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하면서 손을 잡아 일으켜 고쳐줍니다. 그리고 성전 솔로몬 주랑에서 담대하게 나자렛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선포합니다. 사도들의 말을 듣고 믿게 된 이가 장정만도 오천 명가량 됐을 정도로 사도들의 복음 선포는 많은 사람을 감화시킵니다.

 

그뿐 아닙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이로 인해 감옥에 갇히고 다음 날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원로들과 백성의 지도자들 앞에 서게 됩니다. 이들은 스승 예수님을 십자가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들입니다. 하지만 그들 앞에서도 두 사도는 조금도 거리끼지 않고 담대하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증언하며 말씀을 전합니다. 최고 의회는 예수의 이름으로는 절대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지시했지만, 두 사도는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며 용기 있게 맞섭니다.

 

–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열심한 유다인들(좌)과 예루살렘 성전 서쪽 벽 일부인 통곡의 벽(우).

 

 

하느님의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 이스라엘 백성이 찬미와 속죄와 희생의 제사를 바치던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로 인류 구원이라는 가장 위대한 사건이 일어난 역사의 중심이 됩니다. 그리고 성령강림과 함께 예루살렘은 인류 역사에서 또 다른 출발점이 됩니다. 사도들의 선포 활동으로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주님이요, 그리스도 곧 메시아로 고백하는 그리스도교의 출발지가 된 것입니다.

 

2000년 전 성령강림이 일어난 그 구체적인 장소는 어디일까요? 학자에 따라 의견이 다릅니다만, 전승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최후 만찬을 하신 예루살렘 도성 안 이층 방을 성령강림 사건이 일어난 장소로 봅니다. 그렇다면 시온산에 있는 이층 방은 또한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장소이자 제자들이 성령을 기다리며 기도하던 집이며 성령이 제자들에게 내리신 집이기도 하지요. 이 이층 방에서 제자들에게 성령이 내리시는 장면을 연상하고 밖으로 나와서는 몰려든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베드로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은 ‘통곡의 벽’이라고도 하는 서쪽 벽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따라서 베드로와 요한이 태생 불구자를 고쳐준 아름다운 문도, 불구자가 치유됐다는 놀라운 소식을 듣고 달려온 이스라엘 백성에서 말씀을 선포한 솔로몬 주랑도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다만 모형이나 그림만 볼 수 있을 따름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통곡의 벽을 둘러볼 기회가 있다면 그 앞에서 기도하는 유다인들을 구경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아름다운 문과 솔로몬 주랑을 떠올리면서 사도들의 첫 선포 활동을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2월호, 이창훈 알퐁소(전 평화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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