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회개 - 사람의 지혜에서 하느님의 지혜로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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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남충희 | 작성일2013-05-14 | 조회수566 | 추천수0 | 신고 |
남을 심판하지 마라 (마태7,1-5)
1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2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3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5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 내친 김에 마지막 부분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이번 가르침의 주제는 '위선(僞善 hypocrite)'입니다. 위선이란 겉은 선한데 속은 악한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서는 말로는 형제를 사랑하는데 속마음으로는 형제를 미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행동은 말이 아닌 속마음을 따르기 마련입니다. 첫째 단락에서, '너희'를 심판하는 존재는 하느님이신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먼젓번에 말씀드렸듯이 하느님께서는 누구도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악인은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자신을 심판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무한합니다. 즉, 하느님의 사랑은 사람과 세상의 존재가치를 완전하게 회복시키는 권능입니다. 그런데 지혜를 자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작은 지혜로 감히 하느님의 지혜를 측량합니다. 이것은 마치 됫박으로 무한한 양을 측정하려는 것처럼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그는 또한 하느님을 측량하는 그 되박으로 사람을 측량합니다. 이렇게 자신을 작은 되박으로 만든 다음 무한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물론 자가당착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됫박을 깨부수어야만 합니다. 즉, 사람의 지혜를 버려야만 합니다. 들보와 티의 이야기는, 지혜롭다는 사람들은 남을 살피는 것은 좋아하면서도 자신을 돌아보는 데에는 게으르다는 것을 말합니다. '들보'는 몸뚱아리를 가리키는 상징어입니다. 온몸을 바쳐 육정을 추구하는 사람일수록 남의 허물을 자세히 관찰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저런 티를 눈에 넣고도 불편한 줄 모르고 살 수 있나?'하며 안타까워합니다. 말로는 남의 눈의 작은 티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들보처럼 크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지배하는 육정 곧 쾌락, 재물, 명예, 권력에 대한 집착이 다른 사람에게 투사(投射)된 것입니다. '들보를 뺌'은 회개를 가리킵니다. 육정을 추종하기를 중지하고 성령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의 허물이 매우 하잘것 없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나의 눈에 있는 들보를 빼어내니 남의 눈에 있는 것이 작은 티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악인이라고 하여 처음부터 그렇게 타고난 것이 아닙니다. 욕망이 허무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의인은 이것을 즉시 인정하고 하느님께 나아가 성령을 받아들임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그런데 악인은 당장의 즐거움을 쫓느라 자신이 죽을 운명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마치 꿀맛에 탐닉하다가 꿀에 빠져죽는 파리와도 같습니다. '회개'에는 대단한 재능이나 학식 또는 행운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단지 의지의 방향을 하느님께 돌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회개를 실천하기 전에는 육정의 집착이 들보처럼 무거워보이지만 막상 회개를 실천하고 나면 그것이 티끌 하나처럼 가볍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신은 회개하지 않고 남의 허물을 고쳐주려는 사람은 위선자입니다. 묵상에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축복을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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