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사목교서 ‘성서의 해 II’ 특집] 잠언 지혜문학의 첫 번째 작품으로 잠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성경의 목차와 지혜문학의 순서에는 차이가 있음을 이미 언급하였습니다. 성경의 목차에 따르면, ‘시서와 지혜서’는 ‘욥기-(시편)-잠언-코헬렛-(아가)-지혜서-집회서’의 순서를 갖습니다(참고로 ‘시편’과 ‘아가서’는 시서로 분류됩니다). 하지만, 지혜문학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지혜문학의 작품을 살펴본다면, ‘잠언-코헬렛-지혜서-집회서’로 접근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되기에 이 순서를 따라서 지혜문학의 작품들을 살펴보려 합니다. 그 첫 번째 작품은 ‘잠언(箴言)’입니다. 잠언은 “이스라엘 임금,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잠언”(잠언 1,1)이라는 구절로 시작됩니다. 잠언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한 단어일 수 있지만, ‘바늘 잠(箴)’과 ‘말씀 언(言)’이 합쳐진 표현으로, 잠언은 격언 혹은 가르침의 말씀을 바늘로 엮은 것과 같이 말씀을 묶어 놓은 책이라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첫 구절에서 알려주는 바와 같이, 잠언의 저자는 솔로몬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잠언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격언들의 모음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잠언에는 솔로몬의 잠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솔로몬의 잠언(1-9장; 10,1-22,16) 외에도, 현인들의 첫째 잠언집(22,17-24,22), 현인들의 둘째 잠언집(24,23-34), 히즈키야의 신하들이 수집한 솔로몬의 잠언집(25,1-29,27), 아구르의 잠언(30,1-14), 숫자로 나타난 수잠언(數箴言), 르무엘 임금의 잠언(31,1-9), 훌륭한 아내에 대한 찬양(31,10-31)등이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왜 솔로몬의 작품이라고 이야기 되었을까요? 솔로몬이 누구였습니까? 바로 다윗의 아들이었으며, 다윗 왕조의 임금들 가운데에서 가장 지혜로운 임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잠언에서는 솔로몬이 저자라는 권위를 부여하여, 그것을 읽는 독자들이 정독하여 잘 읽고, 읽은 바를 가슴 깊이 새기라는 가르침을 주고자 하는 효과를 노린 것입니다. 이처럼 솔로몬의 작품이라고 전해지는 것은 잠언 외에도 코헬렛이 있습니다(이에 대해서는 코헬렛에서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잠언에 관해서 재미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잠언 1장 1절을 살펴봅니다. “이스라엘 임금,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잠언”. 여기에 세 명의 이름이 나오지요. 이스라엘, 다윗, 솔로몬입니다. 히브리어는 알파벳 한 글자마다 숫자를 표현하는데, 여기 언급된 세 이름을 수(數)로 표현하면 이스라엘은 541, 다윗은 14, 솔로몬은 375라는 숫자가 됩니다. 이 수를 모두 합하면, 930이 됩니다. 잠언을 구성하는 전체 절(節)의 수는 모두 935개입니다. 그 가운데 표제어의 역할을 하는 세 개의 절(1,1; 25,1; 31,1)을 제외하면 932개의 절이 됩니다. 물론, 930과 932가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지만, 대체로 일치한다고 볼 수 있지요. 따라서 잠언의 시작을 알리는 첫 구절에 사용한 이름을 통해서 잠언 전체를 암시하는 이러한 구조는, 잠언이 굉장히 조직적으로 구성된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잠언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 많이 읽히는 처세술을 알려주는 책과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잠언이 그러한 서적들과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모든 것을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풀어간다는 사실입니다. 잠언이 전해주는 가장 큰 주제는 ‘지혜’로, 참된 지혜란 자신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28,25-26). 또한 그 지혜는 인간 자신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에(16,9 참조) 하느님을 경외해야 함도 강조합니다(29,25). 잠언을 이해하기 위한 또 다른 관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통신학이라고 하는 ‘인과응보’, ‘상선벌악’의 가르침입니다. 선을 행하면 상을 받고, 악을 행하면 벌을 받는다는 전통의 가르침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가 신명기계 역사서를 통해서 만났던 그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잠언은 전통신학을 전제로 하느님의 가르침에 따르는 삶이 바로 지혜로운 삶이고 성공의 길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하지만, 그 범위가 어디까지나 현세라는 시간과 공간에 한정을 두고 있습니다. 잠언이 기록되고 편집되던 시기에는 아직 내세(來世)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이번 한 주 잠언의 가르침을 다시금 읽어보며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지혜로의 여정을 살아보면 어떨까요? [2020년 3월 15일 사순 제3주일 인천주보 3면,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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