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길잡이 : 오늘은 하느님 사랑의 커다란 표징인 성체와 성혈을 흠숭하는 대축일이다. 자신을 낮추시고 사랑과 봉사로 자신을 완전히 나누어주신 주님의 생애가 성체성사 안에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가 또 하나의 성체가 되어 남을 위한 제물이 되고 밥이 될 때, 주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1. 교회사와 성체성사
한국교회는 1989년 제44차 세계성체대화를 치르면서 교회전체가 성체성사의 풍부한 신비를 좀더 깊이 배울 수가 있었다. 교회는 16세기 종교 분열 이후 프로테스탄 측에서 성체 안의 그리스도의 현존을 부인하게 되자, 이에 맞서 호교론(護敎論)적인 입장에서, 축성한 빵과 포도주가 바로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는 정통교리를 거듭거듭 천명하기에 바빴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관계로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 때 성체성사를 세우셨고, 사제가 미사 때 빵과 도주를 축성하면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된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성체성사 교리는 그것으로 다 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성체를 받아 모시면 예수님이 우리 안에 오신다는 것을 믿는 것, 이것이 성체 신비의 전부인양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성체의 신비는 더욱 깊고 풍부한 것이며 우리 신앙의 중심이며 우리 생활의 바탕임을 알아야 하겠다.
2. 성체성사는 교회의 근원이다
우리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비체'' 또는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한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빵은 하나이고 우리 모두가 그 한 덩어리의 빵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이니 비록 우리가 여럿이지만 모두 한 몸인 것입니다."(1고린10,17)라고 하신다. 이처럼 성찬의 식탁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어 먹음으로 하나가 된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의 신비체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성찬의 식탁에 모여 온 이 백성이 바로 교회를 이루는 하느님의 백성인 것이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하느님의 백성은 바로 성체 성사에 근원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체성사가 바로 교회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같은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신 신자 공동체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체를 받아 모시는 신자 한사람 한 사람이 또 하나의 성체요,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3. 성체성사 안에 교회의 모든 교리가 포함되어 있다.
우리 교회의 교리를 크게 세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즉 믿을 교리, 지킬 계명, 은총을 얻는 방법 이 그것이다. 그런데 성체성사에 대한 교리를 깊이 알면 우리 교리의 이 세 범주를 다 아는 것이 된다.
신자들이 ''믿을 교리''의 핵심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것도 당신 사랑의 표현이며, 당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도 당신 사랑의 표현이며, 예수님의 기적도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며, 그분의 수난과 죽음도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다. 성령을 보내 주심도, 교회를 세우심도,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하느님의 우리 인간에 대한 사랑이 가장 극적으로, 온전히 표현되는 것이 바로 성체성사이다.
신앙인으로 ''지켜야 할 계명''의 핵심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인지를 성체성사 성사를 통해서 가장 잘 드러난다. 예수님은 당신의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 바치셨고,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먹으라고 내 주신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하는 고통과 기쁨을 함께 하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오시는 것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나도 그 사람 안에 있고, 그 사람도 내 안에 있게 될 것이다."하신다. 사랑은 함께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밥이 되어주신다. 이것보다 더 크고 완전한 사랑은 없다. 그러므로 성체 성사 안에 사랑의 계명을 사는 완전한 모범을 보게된다.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살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은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면 ''은총을 얻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을 얻는 길은 기도와 성사에 있다. 그런데 성체 성사를 이루고 받게 해주는 미사 성제야말로 기도 중에 가장 큰 기도이다. 그리고 성체 성사야말로 가장 큰 성사이다. 그래서 교회는 아무런 주저 없이 ''성체성사는 모든 은총의 샘이다''고 말한다.
성체를 모시고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께 나를 봉헌하고, 매 순간을 나 혼자 사는 삶이 아니라, 성체성사로 내 안에 오신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주님 이렇게 하면 됩니까?'' ''주님,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 도와주십시오.'' ''주님 감사합니다.'' 하며 우리는 매 순간을 성체성사로 우리에게 오신 주님과 의논하며 살아야 한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우리와 함께 하시고자 우리에게 오시는 것이다. 이것이 천주교 신자생활의 진수(眞髓)이다. 여기에 주님과 하나되는 길이 있다. 여기에 우리의 모든 약점과 익을 이기는 길이 있다. "나를 먹는 사람도 내 힘으로 살 것이다."하신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성체성사는 믿을 교리와 지킬 계명과 은총을 얻는 방법이 다 있는 모든 교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성체 교리를 다 알고 산다면 모든 신앙생활이 완성되는 것이다. 우리도 매일 서로에게 밥이 되어주는 삶을 살도록 하자.
유영봉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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