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추가 : 벳자타 못가에서 병자를 고치시다.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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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복선 | 작성일2013-07-04 | 조회수1,038 | 추천수0 | 신고 | ||||||||||||||||||||||||||||||||||||||||||||||||||||||||||||||||||||||||||||||||||||||
요한 5장 15절에 대한 묵상을 나눈 사람으로서, 뭔가 미진한 느낌이 들어서 좀 더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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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 5,15을 한글, 영어, 라틴어 성경 순으로 찾아 봅니다.
▶ 라틴어 성경에서는 “~때문에(because)” 라는 뜻의 단어인 quia 가 있으나 한글과 영어성경에는 없었습니다. 저는 라틴어 성경 문장중에 quia (because)라는 단어가 있다는 것에 주목을 했습니다. ◎ 위의 라틴어성경 5,15을 본문에 가깝게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 본문에 나와 있는 단어들을 찾아서 나열해 보았습니다.
5,15 Abiit ille homo, et nuntiavit Iudæis quia Iesus esset, qui fecit eum sanum.
출처 : Words by William Whitaker
◎ 단어의 여러가지 뜻중에서 성경 본문에 가장 가까운 한 개씩만 따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 제가 벳자타 못가의 그 상황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유다인들이 안식일날 벳자타 병자에게 합당하지 않은 (not lawful) 일을 시킨 사람이 누구인지 추궁하는 분위기에서, 그 병자는 자기를 건강해주신 분이 들것을 들고 가게 했다고 말합니다.
나중에 누군지 알게된 후에 그 사람이 예수님이었다고 유다인들에게 말하는 과정에서, 인과관계 접속사인 quia (because) 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저는, 그 병자로 하여금 안식일날 들것을 들고 가게 한-합당치 않은 일을 하도록 시킨- 원인 제공을 한 분이 예수님 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인과관계 [因果關係]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1」『법률』어떤 행위와 그 후에 발생한 사실과의 사이에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있는 일. 민법, 형법에서 행위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근거가 된다. ****************************
◎ 참고로, 5,15에 사용되었던 quia가 포함된 다른 성경구절 2개 올립니다.
(한글 / 영어 / 라틴어 성경)
-요한 5,18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분께서 안식일을 어기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18 For this reason the Jews tried all the more to kill him, because he not only broke the sabbath but he also called God his own father, making himself equal to God
18 Propterea ergo magis quaerebant eum Iudaei interficere, quia non solum solvebat sabbatum, sed et Patrem suum dicebat Deum, aequalem se faciens Deo.
-요한 6,2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26 Jesus answered them and said, "Amen, amen, I say to you, you are looking for me not because you saw signs but because you ate the loaves and were filled.
26 Respondit eis Iesus et dixit:"Amen, amen dico vobis: Quaeritis me, non quia vidistis signa, sed quia manducastis ex panibus et saturati est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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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삼용님과 이창의님께서 요한 5장 15절에 대한 주석을 네군데에서 찾아 올려주셨는데 그중에서 ‘일과 놀이에서 펴낸 주석서’ 한군데에서만 긍정적으로 나와 있고, 세군데에서는 부정적인 해석이었습니다.
1. 긍정적인 의미의 해석 ;
* <일과 놀이 출간 큰글자성경/21세기 해설판 펴낸이-최연례; 해설번역-김수복 259-260쪽> “예수님께서는 안식일 규정을 깔보았다고 반발하는 종교지도자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치유받은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사람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게 하시려는 하느님의 뜻을 증거하게 하신다.”
2. 부정적인 의미의 해석 ;
* <분도출판사 출간 200주년 신약성서 “요한복음서” 주석서> “치유된 자의 밀고행위(?)가 언급된 내용이다. 이 행위로 인해 예수와 유대인들의 논쟁(16절 이하)이 야기되었음을 시사한다. 또한 치유된 자의 배은망덕(?)도 시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 <성서와 함께 출간 최안나 엮음의 요한 복음 해설서>
“치유받은 이의 행동은 도무지 이해할 길이 없다. 자기를 건강하게 고쳐주신 분이 예수라고 유대인들에게 알려주는 동기가 도대체 무엇인가 ? 사회의 주도권을 쥔 유대인들에게 따돌림 당하지 않으려고, 눈치 보는 것은 아닌가 ? 하지만 38년간이나 앓고 있던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준 일은 새로운 삶을 주신게 아닌가 ? 모를 일이다. 악의 끈질김과 비열함의 한 단면을 본다.“
* < 송봉모 신부, 비참과 자비의 만남, 바오로딸, 93-97.99쪽 >
예수님께 치유를 받은 이 사람은 자기가 받은 은혜에 보답하지 않았다. 이 점은 위 본문(5,14-15)에서 암시적으로 드러난다. 예수님은 그에게 새롭게 변화된 삶을 살도록 살아가도록 경고하지만(“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그는 이에 대해 적극적인 응답을 하지 않는다. “알겠습니다.”라든지 “고맙습니다.”라든지 또는 “주님, 제가 앞으로 죄를 짓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하는 대답말이다. 나아가 그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따라갔다.” 는 말도 없다. 오히려 예수님의 경고 말씀을 듣는 즉시 바리사이들에게 가서 자기 병을 고쳐주신 분이 예수님이라고 말한다. 38년된 병자의 고발 행위는 라자로의 소생 기적을 보고 바리사이들에게 몰려가 고발한 유다인들의 밀고행위와 같다. 그는 예수님께 치유의 은총을 받았으면서도 그 은총에 보답하지 않았던 것이다.
성경학자 모리스에 따르면, 그는 안식일 법을 어긴 것 때문에 유다 당국의 협박을 받고 있었고 그래서 무서워하고 있었다. 안식일에 그의 병을 고쳐주고 들것을 들고 걸어가라고 말한 사람이 누구인지 입증할 수 없다면 그는 안식일 법을 어긴 중죄인으로 처벌될 것이란 유다 당국의 협박을 받고 있었다. 이 사람이 처벌당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기적을 행한 이가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보고하는 길뿐이었다. 그래서 자기를 낫게 해준 이가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곧바로 유다 당국에 고발한 것이다.
38년 만에 치유를 받은 이 사람은 은혜를 모르는 자요, 언젠가는 죽을 목숨을 위해 영원한 생명을 포기한 어리석은 자다. 그의 행동은 순전히 자기 안위만을 위한 이기적인 것이었으므로 결국은 예수님을 배반하게 된 것이다.
그가 한 말을 보면, 그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늘 남에게 돌리며 자기 위주로 산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이 “온전해지고 싶으냐?”하고 물으셨을 때, 그저 자기의 간절한 바람만 말씀드리면 됐건만 그는 뜬금없이 다른 사람들을 원망했다. 자기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서, 다른 사람들이 자기보다 먼저 못 속에 들어가서 병을 고칠 수 없었다고 한다.(7절) 또 유다 지도자들이 그에게 안식일 법을 어기고 들것을 들고 다니다고 단죄하자(10절), 자기는 안식일 법을 어길 마음이 없었지만 자기 병을 낫게 해준 분이 그렇게 하라고 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 뿐이라고 핑계를 댄다.(11절)
이미 보았듯이 이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것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집념이 강한 사람이었다. 벳자타 못에 가장 먼저 들어갈 수 없는 것이 뻔한데도 물이 출렁일 때마다 매번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무모하리만큼 대단한 집념을 갖고 있던 사람이다. 물론 집념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도리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집념은 마땅히 있어야 하고 건강한 것이다. 하지만 하느님께 시선을 두지않는 집념은 파멸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38년이나 앓던 병을 치유받은 이 사람의 집념은 어떻게해서든 자기만 살면 된다는 식의 이기적인 집념에 불과했다.
예수님이 나중에 일부러 그를 찾아와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경고하신 것도 그의 이러한 모습과 무관하지 않다. 예수님은 그의 병든 몸과 함께 이그러진 내면과 영혼에 대해서도 안쓰럽고 애가 타서 일부러 찾아와 더는 죄를 짓지 말라고 경고하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자기 욕심만 챙기지 말고 진리이신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기를 바랐기에, 예수님은 그에게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믿음의 본질은 설사 어떤 불이익이 온다하더라도 내 안위를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주님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분에게 무한한 신뢰를 두면서, 우리 전 존재를 봉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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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의 묵상은 송봉모 신부님과 가장 가까운 접근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위와 같이, 똑같은 구절에 대한 다른 주석들을 보면서
성경을 볼 때에도 어디를 어떻게 중요하게 보느냐에 따라, 보는 방향도 다른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석하냐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우리는 성경에서 ‘어떤 교훈’을 찾느냐가 더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 저의 경우, 벳자타 병자를 부정적으로 묵상한 것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었냐면,
‘내가 여지껏 살아오면서, 불리하게 될 상황에 처했을 때, 혹시 나도 그 병자처럼, 내가 살기 위해 타인(혹은 주님)에게 책임을 전가한 적은 없었는지 되돌아보고, 앞으로는 절대 그러지 않도록, 그렇게 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십사’하는 화살기도로 묵상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 제가 만약 긍정적인 측면으로 묵상을 했다면, 아마도 이렇게 교훈을 찾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내가 어떤 위협에 처하게 되더라도, 나도 그 병자가 그랬던 것처럼, 「나를 건강하게 고쳐주신 분은 예수님이시다」 라는 것을 힘있게 선포할 수 있도록, 그런 용기를 주십사’하는 화살기도로 묵상을 마무리 했을 것 같습니다.
* 묵상으로 이끌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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