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들의 서간]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코린토 1, 2서 (2)
염철호
지난 호에 이어 코린토 1, 2서 이야기를 좀 더 나누고자 합니다. 코린토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시대 우리네 이야기와 무척 많이 닮았기 때문입니다.
코린토의 우상숭배와 불륜들
코린토는 교통의 요충지요 항구도시다보니,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코린토에는 지중해의 모든 문화적, 종교적 요소들이 혼합되어 있었습니다. 별의별 종교가 다 있었는데요. 지금까지 발굴된 신전, 동전, 동상들 모습을 살펴보면 이곳에서 섬겼던 잡신들의 수는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다양한 종교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성도덕이 많이 문란해졌는데요. 대표적인 예로 아프로디테 신전에는 1,000여 명의 신전창녀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나름의 종교예식으로 신전창녀와 관계를 맺는다고는 하지만, 그 종교의례 자체가 가져다주는 퇴폐적인 사회풍토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코린토를 빗댄 그리스 단어가 생겨나기도 했는데요. ‘코린티아게인’, 곧 ‘코린토인처럼 살다.’라는 말은 ‘간통하다.’ 또는 ‘음탕한 생활을 하다.’를 뜻했고, ‘코린토 여인’은 ‘창녀, 매춘부’를 뜻하기도 했습니다. 플라톤 역시 창녀에 대해 언급하면서, ‘코린토 여인’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교회다 보니, 아무래도 여러 종류의 우상숭배와 불륜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교우들이 계속해서 우상숭배와 불륜과 같은 문제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 때문에 바오로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거룩함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깨끗함과 거룩함
바오로의 생각을 이해하려면 먼저 유다인들의 생각부터 알아야 합니다. 유다인들에게 성전은 하느님이 자신들과 함께한다는 하나의 상징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은 성전이 하느님 이름을 위한 집이고 또 하느님은 성전의 제단과 밀접하게 연결되어서, 그곳에서 올리는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생각했습니다(1열왕 8장).
그래서 유다인들은 성전의 거룩함을 유지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곧, 성전 제사와 관련된 다양한 율법규정을 정해두고 이를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레위 1-10장). 이를 지키지 않는다면, 성전의 거룩함이 훼손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하느님은 당신 성전을 떠나실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하스모니아 왕조가 대사제직을 박탈하자, 많은 사제들이 하느님은 더 이상 예루살렘 성전에 머무시지 않는다고 하여, 성전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이루어, 공동체가 바로 하느님의 성전이라고 여기며, 거룩한 공동체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는데요. 여기서 에세네파가 생겨난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이스라엘에서 발굴된 쿰란에 살던 공동체도 그들 가운데 일파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쿰란 공동체의 문헌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유다인들은 거룩함을 대개 깨끗함과 연결했습니다. 성전의 깨끗함을 더럽히는 것은 바로 거룩함을 훼손하는 것이고, 성전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거룩함을 보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다양한 종류의 정결례법들을 두었는데요(레위 11-15장). 정결례는 더러워진 것을 깨끗하게 만드는 예식입니다. 더러운 상태로 성전과 제단에 나아감으로써 성전과 제단도 더럽히게 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죠.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깨끗함은 단순히 성전에서만 요구되는 덕목이 아니라, 일상생활 전체에서 요구되는 덕목으로 확장됩니다. 그리고 유다인들은 자신들의 삶 속에서도 율법규정에 따라 깨끗함을 잘 유지하려고 노력했는데요. 왜냐하면 깨끗함을 잘 유지하지 않으면, 곧 거룩함을 유지하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떠나실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역시 이러한 유다인들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바오로는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성전이므로, 항상 깨끗함과 거룩함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바오로가 이야기하는 깨끗함과 거룩함
바오로는 먼저 공동체를 깨뜨리는 모든 행위가 공동체의 깨끗함, 거룩함을 깨뜨리는 것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러면서 그처럼 공동체에 분열을 일으켜 하느님의 집인 성전을 파괴하는 이는 “하느님께서도 그자를 파멸시키실 것”(1코린 3,17)이라고 말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바오로는 우상숭배와 불륜, 탐욕을 부리는 것, 중상모략을 하거나 술주정을 하는 것, 강도짓을 하는 것 모두 공동체의 거룩함을 깨뜨리는 행동으로 봅니다. 그러면서 바오로는 교우들 가운데 이런 짓을 저지르는 이들과는 상종도 하지 말라고 권하며, 그 악인을 공동체 안에서 제거해 버리라고까지 말합니다(1코린 5,9-13).
사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자신의 의로움으로 스스로를 구할 수는 없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은총과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곧, 하느님 없이는 그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아무리 죄를 많이 지어도 하느님께서 알아서 구원해 주시겠지.’ 하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바오로는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지체”(1코린 6,15)임을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거룩함의 의미
‘거룩하다’라는 말은 본래 ‘분리되다’, ‘떼어놓다’라는 뜻입니다. 곧, 하느님 것으로 떼어놓은 것이란 말입니다. 세상 것이 아니라, 하느님 것으로 떼어놓은 것. 그것이 바로 거룩한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거룩하게 살라고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교회 공동체, 그리고 바로 그 구성원인 나 자신이 하느님의 거룩한 성전이요, 그리스도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바오로 사도가 지적하듯이 우리 모두 세상과 완전히 동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1코린 5,9-10). 그러려면 우리 모두 세상을 떠나야 할 것입니다. 바오로에게 거룩하게 산다는 것은 세상을 떠나 살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면서도 각자가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 속한 것임을 자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곧, 각자의 자리에서, 주님께서 정해주신 모습에 따라 하느님의 성전, 그리스도의 지체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1코린 7,17-24 참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바오로의 가르침은 큰 의미를 지닙니다. 바오로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을 묵상하면서, 나 자신부터 세상 한가운데 살아가면서도 거룩함과 깨끗함을 지켜나가겠다고 다짐해야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성전으로 살아갈 때, 비로소 교회는 하느님께서 세상과 함께 계심을 드러내주는 하나의 표징이 될 것입니다.
염철호 사도 요한 - 부산교구 신부. 로마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부산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신약성경을 가르치고 있으며, 역서로 「최고의 성지 안내자 신약성경」(바오로딸, 2012년)이 있다.
[경향잡지, 2013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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