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들과 오늘 우리] 재미나고 행복한 만남 오만 데 한글이 다 숨었는 걸 팔십 넘어 알았다. ㄱㄱㄱ 부침개 접시에 ㅇㅇㅇ 달아 놓은 곶감에 ㅎㅎㅎ 제아무리 숨어 봐라. 인자는 다 보인다. - 중촌마을 문해교실 정을순 할머니의 시 ‘숨바꼭질’ 우리 어매 딸 셋 낳아 분하다고 지은 내 이름 분한이 내가 정말 분한 건 글을 못 배운 것이지요 마흔서이에 혼자 되어 쭈그렁 할머니가 되어 공부를 시작했어요. 글자만 보면 어지러워 멀미가 났지만 배울수록 공부가 재미나요 세상에 이렇게 행복한 일이 어디에 있을까요 구십에 글자를 배우니까 분한 마음이 몽땅 사라졌어요 -경북 안동시 찾아가는 한글배달교실 권분한 할머니의 시 ‘내 이름은 분한이’ 예수님의 제자들 ‘예수님의 제자들’ 하면 바로 떠오르는 인물은 열두 제자일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뽑으시어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셨고,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다(마태 10,1-4; 마르 3,13-19; 루카 6,12-16 참조). 예수님께로부터 파견되었다 해서 그들을 사도라 부르기도 한다(그리스어 ‘아포스톨로스’[사도]는 동사 ‘아포스텔로’[파견하다]에서 파생한 명사).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복음을 전하실 때 이들이 동행했음은(루카 8,1 참조) 잘 알려진 바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남자들 말고도 예수님을 따르던 여자 제자들이 더 있었다는 사실이다. 마리아 막달레나 복음서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모두 열세 군데 등장한다. 예수님의 활동 중(루카 8,2-3), 십자가 처형 이야기에서(마태 27,56.61; 마르 15,40; 요한 19,26), 빈 무덤 이야기에서(마태 27,61; 28.1; 마르 15.47; 16,9; 요한 20,1),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현을 처음 목격한 이로서(마르 16,9; 요한 20,16), 그리고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이들)가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대목에서이다(루카 24,10; 요한 20,18). 마리아는 갈릴래아 지방의 서쪽에 자리한 티베리아 근처의 ‘막달라’라는 마을 이름과 함께 불린다. 곧 ‘막달라 출신의 여자 마리아’이다. 그런데 마리아는 성경의 여느 인물들과 달리 거의 늘 ‘이름 + 정관사 + 지역 이름’이라는 형식으로 언급된다. 이를 두고 성경학자 톰슨(M.R. Thompson)은 “마리아 막달레나는 초대 교회에서 꽤 비중 있는 인물이라 그의 이름을 생략할 수 없고 그 이름의 일정한 형식을 바꿀 수도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편 마리아가 출신 지역인 ‘막달라’와 함께 불리는 것은, 그가 고향을 떠나 예수님과 함께 다른 지역을 다녔음을 암시할 수도 있다. 막달라 지역 사람들이 그를 ‘마리아 막달레나’라고 불렀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복음서에서 그는 종증 다른 여자들과 함께 나오는데, 요한 복음서(19,25)를 제외하면 마리아 막달레나가 늘 처음에 언급된다. 이들 가운데 마리아 막달레나를 남자 제자들과 함께 언급하며 예수님의 활동에 참여한 인물로 묘사하는 이는 루카이다. 루카 복음서에는 갈릴래아 활동 기간 내내 예수님과 동행한 제자들 가운데 하나로 나온다.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몇몇 여자도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였다. …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8,2-3). 여기에서도 마리아 막달레나가 가장 먼저 소개되는데, 이 본문에서 두 가지 점이 눈에 띈다. 먼저, 그 당시에 여자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제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이다. 루카는 이들이 자기들 재산으로 예수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고 전한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여자들의 공적 활동은 아주 제한적이었다. 유다 사회에서도 돈과 재산과 음식으로 유다교 라삐와 그 제자들을 지원한 여자들이 있었으나 그들이 라삐와 함께 다니지는 않았다. 위의 본문에 따르면, 여자들이 단순히 예수님 일행을 물질적으로 돕고 음식을 장만해 주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그 공동체의 일에 관여했다고 불 수 있다. 다음으로, 루카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여자라고 묘사한다. 루카와 유사하게 마르코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 주신 여자”(16,9)라고 하였다. 두 복음사가의 증언은 일치한다. 여기에서 ‘일곱 마귀를 쫓아 주셨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마리아의 상태가 매우 심각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마리아의 삶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완전히 바뀌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사로잡고 있던 ‘일곱 마귀’를 쫓아내 주신 뒤, 그동안 힘들고 괴로웠던 삶이 기쁜 삶으로 바뀐 것이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만난 뒤의 세상은 더는 같은 세상이 아니다. 마리아는 갈릴래아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 예수님의 뒤를 따른다. 남자 제자들이 모두 흩어지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오르실 때도 그곳에 함께하였다. 그분의 시신이 무덤에 안치될 때까지 말이다.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던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마리아야!” 하고 부르시고, 제자들에게 가시어 당신께서 이제 하느님께 올라가신다는 소식을 전하라고 이르신다.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주님의 말씀을 전하였다(요한 20,11-18 참조). 이렇듯 마리아 막달레나는 끝까지 예수님과 함께하면서 그분께 파견받아 복음을 전하는 참다운 제자, 사도로서의 몫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재미나고 행복한 만남 어르신 한글 교실에서 글자와 씨름하면서도 소녀처럼 웃으시는 할머니들을 볼 수 있다. 할머니들의 공부에 대한 갈망과 열정이 참으로 감동스럽다. 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글을 깨우치지 못했던 할머니들! 주름진 얼굴과 굽은 허리로 배움의 길에 들어서면서 그분들은 다시 태어나신다. 여든 넘은 정을순 할머니, 아흔 넘은 권분한 할머니, 그분들은 글을 익힌 뒤 그전에 보지 못했던 숨어 있는 것들에 눈을 뜨시고 새로운 것들을 찾아내신다. 문자를 배우고 글을 읽으면서 서럽고 분했던 세월을 떨쳐 내시고, 굽은 허리를 꼿꼿이 펴시며 세상을 읽어 내신다. 예수님을 만나 자신을 괴롭히던 ‘일곱 마귀’에서 벗어난 뒤 새 삶을 살게 된 마리아 막달레나도 권분한 할머니처럼 “세상에 이렇게 행복한 일이 어디에 있을까요! 답답한 마음이 몽땅 사라졌어요.”라고 외치지 않았을까 세상을 다시 살게 된 이들이라면 누구든지 마찬가지일 것이다. 참으로 재미나고 행복한 만남이다! 만학도 할머니들의 용기와 열정에 박수를 보내며 할머니들의 재미난 세상을 열렬히 응원한다. * 강선남 헬레나 -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석사,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성서신학(신약학 전공)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에 출강하고 있으며, 「교황 프란치스코: 새 시대의 응답자」, 「성경의 인물들」, 「교부들의 성경 주해, 탈출기-신명기」 등의 역서를 냈다. [경향잡지, 2020년 4월호, 강선남 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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