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사목교서 ‘성서의 해Ⅱ’ 특집] 바오로의 옥중 서간 I - 에페소서, 콜로새서 바오로 서간 가운데 에페소서, 필리피서, 콜로새서, 필레몬서, 이렇게 네 서간을 ‘옥중 서간’이라고 부릅니다. 이 서간들의 집필 배경으로 바오로 사도 본인이 감옥에 갇혀 있음을 암시하는 표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참조: 에페 3,1; 4,1; 6,20; 필리 1,7.12-18; 콜로 4,3.10.18; 필레 9.10.13). 이 서간들 가운데 오늘 우리가 살펴볼 에페소서와 콜로새서는 어휘나 문체, 신학적 주제들, 심지어 서간의 전체적인 구조에서 서로 매우 비슷합니다. 왜 이런 유사점이 있는지 그에 대한 다양한 가설들이 제기되어 왔지만, 아직까지도 만족할 만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논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만 두 서간의 선후 관계에 있어, 먼저 쓰인 콜로새서의 내용을 에페소서가 좀 더 보완하고 발전시켰다는 생각에는 대다수가 동의합니다. 이 서간들이 바오로 사도의 친서냐 아니냐에 대한 학자들의 논쟁도 매우 뜨거운데요, 친서가 아닐 것이라는 견해가 좀 더 우세합니다. 그런데 바오로의 친서가 아니라고 해서, 그 중요성이 덜 하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합니다. 바오로의 제자들 또는 그의 추종자들이 존경의 마음으로 사도의 이름을 빌려 적었을 이 서간들은 그의 신학 사상을 충실하게 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동체 상황에 알맞게 적용하고 발전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페소서는 다른 바오로 서간들에 나오는 주요 신학 사상을 대부분 담고 있기 때문에 ‘바오로 신학의 요약판’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믿음/은총을 통한 구원(2,5.8-9);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속량(1,7); 성령의 작용(2,18.22; 4,3); 다양한 은총의 선물(4,7.11)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1,23; 4,1-16); 유다인과 이방인의 관계(2,11-22); 바오로의 사도직(3,1-8). 이렇게 다양한 신학적 주제들을 종합하는 에페소서의 중심 주제를 뽑으라면, 그것은 “신비”(1,9)라고 칭할 수 있는 하느님의 인류 구원 계획일 것입니다. 우리가 전례 안에서 자주 들어서 알고 있는 에페 1,3-14의 찬가는 하느님의 구원, 즉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1,3) 우리에게 내리기 위한 계획을 단계적으로 잘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 계획은 놀랍게도 세상 창조 이전으로 한참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1,4-5). 이렇게 창조 이전부터 계획되었던 하느님의 구원 의지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온전히 충만하게 실현되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음으로써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하느님의 구원 행위는 이제 교회를 통하여 지속되는데, 하느님과 화해를 이룬 신앙인들은 서로 일치하여 사랑으로 성장해 나아가게 됩니다(4,1-16). 이렇게 에페소서는 창조 이전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구원 과정을 체계적으로 그리며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증언하는 데 주력합니다. 콜로새서는 콜로새 공동체에서 잘못된 가르침을 퍼뜨리고 다니는 이들 때문에 생겨난 문제를 해결하고자 기록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럴듯한 말”(2,4), “사람을 속이는 헛된 철학”(2,8) 등으로 표현되는 그들의 가르침은 헬레니즘적 사고에서 기인하는 이단적인 요소(참조: 2,8-10.18.20)는 물론이고 유다교의 전통과 관습을 고수해야 한다는 주장(참조: 2,16.21)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매우 넓었던 것 같은데, 어쨌거나 이들은 구원에 다다르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다른 무언가를 더 행하거나 극기를 실천해야 한다고 가르쳤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콜로새 신자들이 처음에 들었던 진리의 말씀, 즉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에 대한 믿음으로 모든 것이 충분하다고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충만함”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콜로 1,15-20의 ‘그리스도 찬가’는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노래합니다: “그분께서는 만물에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1,17-19). 어쩌면 우리도 신앙생활 안에서 그리스도 외의 것들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그것들을 더 중요시 여기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로 모든 것이 충분하다는 믿음, 그리고 그에게 온전히 의탁하며 살아갈 때만이 우리의 영적인 삶이 비로소 충만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2020년 9월 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인천주보 5면, 정천 사도 요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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