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침특강 - 행동하는 평신도] 악마가 된 고발자 사탄 2020년 외침특강은 참된 깨달음은 행동을 변화시킨다는 믿음으로 성서, 교의, 영성, 실천신학 등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 만남으로 평신도들이 교회와 세상 안에서 더욱 기쁘게 행동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8월에는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송혜경 비아를 만나봅니다. 그녀와 함께 우리의 삶이 하느님의 뜻과 멀어지도록 유혹하는 사탄에 대해 성서적 고찰을 해봅니다. 악은 결코 선을 이기지 못하며 사랑이신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에게 사탄을 밀어낼 힘을 주심을 되새겨 봅니다. 고통과 악에 대한 성찰
* 하느님 뜻을 따라 살기를 소망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사탄 또는 악마라는 존재는 정말 달갑지 않은 존재입니다. 사탄 또는 악마가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 어떻게 자리 잡게 되었을까요? 악마는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너무도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지요. 매 순간 우리를 유혹하기에, 선의 손을 잡을 것인가 악의 손을 잡을 것인가? 늘 경계하고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막연히 두려워서 피하고 경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1요한 4,18)라는 말씀처럼 하느님을 믿고 나가면 좋겠어요. 하느님이 커다란 바다라면 나는 하나의 물방울과 같잖아요. 물방울이 어디로 헤엄쳐 가도 결국은 하느님이라는 커다란 바다 안에 있게 되는 것이죠. 구약성경에는 사탄이나 악마개념이 발달할 여지가 거의 없었죠. 왜냐하면 유일신 신앙이 구약성경에서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에요. 사탄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면 이 유일신 신앙과 충돌을 일으키기에 발달하지 않았지요. 유다왕국이 멸망하고 바빌론 유배를 겪으면서 이스라엘 민족은 직접 체험한 고통과 악에 대한 근원적인 답을 찾게 됩니다. ‘하느님은 인간과 세상을 좋게 창조하셨는데 왜 사람들은 악한 선택을 하고 나쁜 일들은 일어나는 걸까?’, ‘어린아이와 같은 무죄한 이들이 왜 고통받을까?’ 단순히 상선벌악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고통과 악의 문제에 대해 정면으로 맞서면서 사탄 개념이 태동하게 되었어요. 구약성경에서는 엄마 뱃속의 배아처럼 웅크리고 있었죠. 기원전 200여 년 경부터 구약 외경과 쿰란 문헌에서 사탄은 현실적 실체로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신약성경에서 사탄은 완전히 성숙하여 예수님의 광야유혹에서부터 바로 등장하지요. 묵시록에서는 결코 악이 선을 이길 수 없음을 미카엘 천사와 용의 싸움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 사탄 또는 악마의 개념이 이렇게 발전하게 되었군요. 그럼 하느님 말씀의 시작인 구약성경에서부터 사탄 개념이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히브리어 성경에는 악마라는 단어도 등장하지 않아요. 지혜서 2장 24절에 언급되기는 하지만 신약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그리스어로 기록되었지요. ‘사탄’은 고발자 · 적대자 · 방해자 등을 뜻하는 보통명사로, 유배 이후부터 천상의 존재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지요. 구약성경에서 사탄이 천상의 존재를 가리키는 곳은 네 곳이에요(민수 22장, 즈카 3장, 1역대 21장, 욥기 1-2 참조). 이 중에서도 구약성경의 사탄 하면 욥기의 사탄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바로 고발자 역할을 맡은 천사죠. 사탄은 하느님 앞에서 욥에 대해 ‘딴지’를 겁니다. “정말로 욥이 그렇게 의로울까요? 욥은 세상의 복이란 복은 다 누리는데 그래서 선한 의로움을 유지하는 것 아닐까요?”하고 도발하죠(욥 1-2장 참조). 그래서 욥은 가족과 재산을 다 잃고 온몸에 고약한 부스럼까지 생기며 믿음의 시련을 받습니다. 인간으로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벌을 받은 거죠. 사탄은 욥이 어떤 상황에서도 신앙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인지 ‘시험’하고 ‘도발’하는 존재였던 셈이죠. 두 번째로 중요한 사탄의 모습은 1역대기 21장에 드러납니다. 이곳에서 사탄은 진짜 고유명사로 나타나며 다윗을 부추겨서 인구조사를 하게 합니다. 인구조사를 한다는 것은 하느님을 믿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내 능력이 어느 정도 되나? 국가의 능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느님이 해주시기보다는 내 능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바로 악이요 어리석음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러했던 사탄 개념은 『에녹1서』 라는 구약 외경에서 구체적 실체로 탄생하고 성장하게 됩니다. * 사탄이 드디어 구약 외경에서 악의 기원으로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그 활약상이 전개되는군요 우리가 성서를 읽다 보면 구약과 신약 사이에 큰 도약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사실 그 도약을 설명해 주는 것이 바로 구약 외경이라고 할 수 있어요. 구약 외경을 읽고 나면, 구약과 신약이 하나로 이어진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어요. 신약 외경 또한 신약성경을 더욱 넓은 시야에서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구약 외경은 기원전 200년 무렵부터 저술되었어요. 이스라엘 민족은 유배에서 돌아올 때만 해도 희망에 차 있었지요. 유다 왕국이 망하고 유배라는 큰 고통을 겪은 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고, 이제 계명을 잘 지키고 파괴된 성전을 복구하면 화려한 전성기가 돌아올 줄 알았죠.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다윗 왕조는 복구되지 못했고 성전도 초라했지요. 고통은 끝이 없었기에 악은 도대체 어디에서 생겨나는지 깊이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이 성찰이 『에녹 1서』와 『희년서』에 녹아있습니다. 『에녹 1서』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타락한 천사가 악마가 되는 악마 개념이 나타납니다. 창세기 6장의 거인족 설화를 바탕으로 하죠. 천사들은 자신들의 영역인 하늘을 떠나 지상으로 내려와 땅의 여인들에게 자손을 낳았는데 이들이 악령의 시초가 되었죠. 그 우두머리는 천상의 비밀 지식을 공개하여 인간에게 악을 퍼트렸기에, 다른 천사들에 의해 지하 심연에 갇히게 됩니다. 『희년서』에는 이 타락한 천사의 우두머리가 한 번씩 지하 감옥에서 풀려나 세상사에 개입할 때가 있고, 악령들의 일부도 이 땅에 계속 남아서 인간을 죄짓게 만든다고 하죠. 그런데 사실 죄의 근원은 창세기 3장부터 시작되잖아요.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최초로 하느님의 뜻을 어긴 일이죠. 이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서 천사의 타락 시점이 인간의 창조보다 앞당겨진 『아담과 하와의 생애』,『에녹 2서』가 등장하게 됩니다. * 『아담과 하와의 생애』, 매우 현실적인 제목인데요, 악의 기원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할까요 이 책에는 사탄의 중요한 특성들이 모두 들어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생애』에 따르면 하느님은 아담을 창조하신 후, 하늘의 모든 천사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아담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만들어졌으니 그에게 절하라고 하셨죠. 사탄은 만들어진 순서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자기가 아담보다 위라는 이유에서 절하기를 거부합니다. 사탄과 그에 동조하던 천사들은 천사로서의 모든 영광과 지복을 박탈당한 채 천상에서 추방되지요. 결국 자신의 판단에 따라 하느님의 뜻을 거부한 사탄의 교만과 오만은 그를 악마로 추락시켰고, 그는 모든 탓을 아담에게로 돌립니다. 천상에서 쫓겨난 자기와 달리 하느님 곁에서 행복하게 사는 아담에게 사탄은 질투와 원망, 증오를 느끼며 복수할 기회를 노리게 되죠. 때가 되자 뱀으로 위장하여 하와에게 접근하여 죄를 짓게 하고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납니다. 악마가 된 사탄은 자신이 하느님과 멀어지고 관계가 파괴된 것처럼 인간도 하느님과 멀어지고 관계가 파괴되도록 유혹합니다. 같이 공멸해야 직성이 풀리는 존재로 추락한 것이죠. 『에녹 2서』에서는 창조 둘째 날, 하느님께서 천사들을 만드시고 열병을 세우셨을 때 맨 앞줄에 섰던 천사가 하느님과 똑같아지려는 교만한 마음을 품고 대열에서 벗어납니다. 그를 따르는 무리와 함께 하늘에서 추방되었죠. 추방당한 천사들의 수장이 사탄, 악마이며, 그 무리는 마귀들이라 하죠. 하느님을 이기지 못하는 악마 * 단순히 고발자라는 의미의 사탄 개념이 악마로 발전하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는데요, 신약성경 안에서 결정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은 어디일까요 기원전 1세기경 사탄은 ‘악마 ’라는 대표적 이름으로 정착되고 복음서 곳곳에서 예수님과 긴장 관계를 형성하며 구원 활동을 방해하지요. 예수님과 제자들의 치유와 구마 활동은, 악마와 그 수하 세력인 마귀와 악령을 물리치는 작업으로 묘사됩니다. 악마의 대표적인 전략은 유혹과 시험이죠. 악마는 광야에서 단식하며 기도하시는 예수님에게 나타나 ‘이 세상의 지배자’ 혹은 ‘이 세상의 신’과 같은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결코 예수님을 이기지 못합니다(마태 4,1-11 참조).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도 어떻게 보면 사탄이 하는 일을 가장 잘 보여주었죠. 그는 사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유혹에 빠진 거예요. 사도 베드로도 유다교 지도자들에게 잡혀서 심문받으시는 예수님을 모른다 부인했죠. 베드로와 유다의 차이라면 베드로는 자신을 용서했다면 유다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거예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을 만든 하느님도 용서하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일은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고 화해하게 만들고 하나가 되게 하는데 악마는 이것을 파괴하려고 합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오로도 분열을 일으키고 다른 복음을 퍼트리는 이를 경계하라고 했답니다(갈라 1,6-10 참조). * 그리스도교의 전통이 자리 잡아가던 2-3세기에, 신약 외경과 영지주의* 문학도 성행했죠. 그들의 사탄, 악마 개념은 어떠했을까요 야고보 원복음서는 동방교회에서 성경처럼 읽혔고, 터키 이스탄불의 한 성당에서는 야고보 원복음서의 전체 이야기가 모자이크로 제작된 것을 볼 수 있어요. 베드로 복음서도 시리아 지역에서는 경전처럼 여겨졌죠. 이러한 신약 외경의 작품들은 신약성경과 비슷한 악마 개념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나 영지주의는 아주 다릅니다. 영지주의 작품에서는 사탄이 창조주로 격상합니다. 창조주는 하급신이며 악마와 똑같은 역할을 하고 있고 진짜 하느님은 천상에 계십니다. 그래서 인간이 진정으로 구원받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 벗어나 영으로 돌아가기를 원해야 하죠. 그 유일한 방법이 깨달음 gnosis이라고 합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좋으신 창조주 하느님을 부정하고 이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가는 것도 거부합니다. 그러니 영지주의자들의 가르침은 교회의 가르침과 다릅니다. * 악마의 유혹들이 눈에 드러나는 것이라면 쉽게 피할 수 있을텐데, 보이지도 않는 악마의 유혹을 현대인들은 어떻게 인식하고 극복해 갈 수 있을까요 저는 악의 전문가도 아니고 악을 완전히 이긴 사람도 아니지요.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현대는 선과 악의 경계가 불분명한 시기 같아요. 이러한 시기에서 내가 보이지 않는 유혹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악마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으면 좋겠죠. 천사가 악마가 된 주된 원인은 하느님과 같아지려고 했던 교만, 자기보다 못한 인간에게 절하지 못하겠다는 오만이었어요. 그리고 그 불행의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지 않고 아담 탓으로 돌리며 질투와 적개심에 가득 차서 복수하려 했죠. 결국, 아담을 낙원에서 추방당하게 합니다. 자신과 하느님의 관계가 끊어진 것처럼 우리도 하느님과의 관계가 분리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매 순간, 내가 하는 이 선택이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고 타인과 멀어지게 하는 것인지,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미워하게 하는 것인지 되돌아보면 좋겠어요. 하느님과 나를 이어주고 나와 타인을 사랑하게 하는 일이라면 하느님이 이끄시는 일이라고 볼 수 있어요. 악마가 된 천사 이야기는 우리도 언제든지 악마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죠. 오만, 질투, 증오, 복수심 등은 우리가 매일 경험하고 있는 것들이죠. 이 보이지 않는 싸움에서 성경은 이미 하느님께서 모든 악과 싸워 이기셨음을 보여주시고 우리도 이길 수 있음을 약속하십니다. 악마는 멀리 있지 않지만, 하느님은 더 가까이 계십니다. 누구의 손을 잡을 것인지, 그 선택권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죠. [체크체크] “사탄” 단순히 고발자, 반대자의 의미를 지녔던 히브리어 사탄 은, 이스라엘 민족이 악과 고통의 의미를 더욱 깊이 성찰하게 되면서 의미가 발전되었다. 구약 외경에서는 사탄을 타락한 천사로 표현하고 있고, 그 우두머리는 악마, 그 부하들은 마귀와 악령으로 본다. 예수님은 질병과 악령에 시달리는 이들을 치유해 주심으로 악마 를 이기심을 보여주셨다. 우리도 결코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이 악이 선을 이길 수 없음을 기억하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 영지주의 : 2~5세기까지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융성한 다양한 종교운동을 총칭하며 자신들만이 비밀지식 gnosis 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 송혜경 비아 - 서울대학교 약학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 가톨릭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로마성서대학에서 성서학과 고대 근동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시나이의 아나스타시우스의 작품의 비평 본을 만들고 번역·주석하여 고대 근동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이다. 『영지주의자들의 성서』, 『사탄, 악마가 된 고발자』, 『구약 외경1』 등의 저서와 『필론 입문』 번역서가 있다. [외침, 2020년 8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대담 · 글 도희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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