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묻고답하기

제목 주원준 박사님의 답변입니다 카테고리 | 성경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3-12-30 조회수1,251 추천수5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응답

욥기 39,5에 등장하는 짐승은 두 마리입니다.
첫째 사용된 낱말은 ‘페레-‘(???)인데, 우리말 성경은 들나귀로 옮겼습니다.
두번째로 사용된 낱말은 ‘아로-드’(????)인데 이는 ‘돌나귀’로 옮겼습니다.

‘페레-‘는 본디 히브리어가 아닙니다. 아카드어 ‘파루-‘(parû)에서 온 낱말인데, 후대에 가나안 지역에서 외래어로 자리잡았고, 훗날 히브리어로 수용되었습니다. 우리말에 중국말에서 온 외래어, 일본어나 영어에서 온 외래어가 섞여 있듯이 고대 히브리어에도 상당한 외래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페레는 본디 이스라엘 근처에서 볼 수 있던 짐승이 아니고, 아마도 이스라엘의 동쪽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흔하던 짐승인데 훗날 이스라엘에 흘러 들어온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아시아산 야생나귀를 뜻하는 듯 합니다. 학명은 Equus hemionus인데, 중동, 인도, 티벳, 몽고 지역에 자생하던 야생 나귀를 지칭하는 개념 같습니다.
이 짐승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onager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File:Kulaani_Korkeasaari.jpg

두번째 ‘아로-드’는 조금 복잡합니다. 이 말도 외래어인데, 본디 아람어에서 온 말인듯 합니다. 아람은 히브리인들이 살던 이스라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입니다. 곧, 이 말은 이스라엘 근처에 자생하던 나귀일 듯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로-드는 성경에 거의 등장하지 않고, 관련 문헌에도 많이 나오지 않아서 정확히 어떤 짐승을 뜻하는지 확실치 않습니다(아래에서 보시듯, 나귀가 아닌 다른 뜻으로 옮기기도 합니다).
지금은 멸종해 버린 ‘시리아 야생 나귀’를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추측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진은 1872년에 마지막으로 촬영된 시리아 야생 나귀입니다.
http://en.wikipedia.org/wiki/File:SyrianWildAss-London_Zoo.jpg

자, 이제 이 두 낱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셨을 것입니다. 페레-는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지만, 아로-드는 확실하지 않은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낱말을 어떻게 옮겨야 할까요?

사실 성서 번역에서 이런 문제는 참 힘듭니다.
국내외의 내노라하는 성경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영어권의 성서 번역을 살펴볼까요? RSV는 페레-를 wild ass, 곧 야생나귀로, ‘아로-드’는 swift ass, 곧 날쌘 나귀로 옮겼습니다. swift ass가 본디 영어에서 어떤 의미를 지닌 낱말인지 궁금하군요. NRSV, ASV 등도 이렇게 옮겼습니다. NASB는 wild donkey와 swift donkey로 옮겼네요. ass를 donkey로 바꿨네요.

개신교계에 오래되고 권위있는 KJV는 wild ass와 wild ass로 옮겼군요. 둘을 똑같이 옮겼네요. 하지만 그 개정판 NKJV는 wild donkey와 onager로 옮겼습니다(이 낱말은 위에서 보셨죠? ‘페레-’를 뜻하는 말입니다!)

독일어 성경을 볼까요? 루터 번역은 Wildesel, 곧 야생 나귀와 Flüchtigen, 도망치는 자로 옮겼네요. 아로-드의 어근을 완전히 다르게 이해하신 듯 합니다.
독일 가톨릭 교회에서 사용하는 EÜ은 Maultier 노새와 Wildesel 야생 나귀로 옮겼네요. 노새와 나귀는 다른데 말이죠.
Elberfelder는 Eildesel 야생나귀와 Wildling 들짐승으로 옮겼어요.

프랑스 가톨릭 교회에서 사용하는 Jerusalem 성경 번역은 âne sauvage, 야생 나귀와 onagre로, Darby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말 번역을 볼까요? 개신교의 표준새번역은 들나귀과 날쌘 나귀로 옮겼습니다. 영어권 번역과 같군요. 개신교의 개역개정, 개역한글도 마찬가지입니다. 들나귀와 빠른 나귀로 옮겼는데, 역시 영어권 번역과 같습니다(개신교 성경 번역은 이런 특징이 있습니다).
한편 공동번역은 ‘들나귀들’로 두 나귀를 그냥 복수로 처리해 버렸네요.

이런 번역을 장황하게 나열한 이유는, 이 두 낱말의 번역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입니다. (특히 두번째 아로-드는) 히브리 성경에도 몇 번 쓰이지 않은 희귀한 낱말인데 우리말에 딱떨어지는 번역어가 있겠습니까?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번역도 마찬가지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자매님처럼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시는 분만 이런 고민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의 나귀가 다른 단어로 쓰였으니, 서로 다른 단어로 옮기는 것은 적절해 보입니다. <성경>에서 사용한 들나귀, 돌나귀는 참신한 번역입니다. 세 글자로 운율도 맞고, ‘들’과 ‘돌’의 말놀이도 되는 것 같군요.

이해에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주원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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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윤식 (big-llight) 쪽지 대댓글

    † 찬미 예수님! 이정임님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성경 번역의 어려움을 깊이 느껴봅니다. 번역에 종사하신 모든 분들을 위해서도 차제에 함께 고맙다는 기도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2013-12-30 추천(1)
  • 소순태 (sunsoh) 쪽지 대댓글

    † 찬미 예수님! 그런데..., 2009년 7월에 드렸던,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한줄답변들과는 달리, 그리스어본 "칠십인역"에서 어떻게 번역되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위의 본문에 전혀 없다는 생각입니다. 왜 없을까요???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직접 인용하는 구약 성경 구절들 중의 상당수가, "새 번역 성경"의 구약 성경의 번역 대본이 아닌, 그리스어본 칠십인역 구약 성경에 있는 구절들인데, 바로 이 점은 그리스도교에 있어 그리스어본 칠십인역의 중요성을 직접적으로 말해주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기원전 3-2세기에 유다교 학자들에 의하여 그리스어로 번역되었다고 알려져 있는, 그리스어본 "칠십인역"에서 어떻게 번역되었는지에 대한 고찰은, 바로 아래의 필자의 글에 주어져 있습니다. 또한 다들 꼭 읽도록 하십시오.

    2013-12-30 추천(0)
    문경준 (nolguitne) 쪽지 2013-12-31 추천(1)

    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는 데에 참고할 내용이나 가치가 없으니 언급하지 않았겠지요. 2009년 상상력을 발휘하실 때처럼, 마소라본이 성경을 왜곡, 훼손했고, 오역으로 점철됐다는 70인역이야말로 성경의 정수라고 주장하시려나 봅니다. 주원준 박사는 현재 서강대에서 구약 강의도 하고 있고 페이스북에서도 활동하고 있으니 접촉을 시도해 보시면 대화가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왕초보에, 성서에 대한 기본 소양도 갖추지못하고, 오직 인터넷이란 쓰레기통에서만 남이 먹다 버린 소시지를 건져 구워내는 요리사를 주 박사가 어떻게 대해 줄지 저도 궁금합니다.

  • 소순태 (sunsoh) 쪽지 대댓글

    그리고,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지난 2009년 7월에 이미 확인한 바에 의하면, 욥기 39,5에서 두 번째 녀석, 즉 "돌나귀"에 대응하는 표현 자체가 그리스어본 "칠십인역(LXX)"에 전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새 대중 라틴말 성경" 욥기 39,5에도 "돌나귀"에 대응하는 표현 자체가 전혀 없습니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글은 다음의 필자의 답글에 있으니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서는 또한 꼭 읽도록 하십시오.

    2013-12-31 추천(0)
  • 김옥주 (ymrdkim) 쪽지 대댓글

    † 찬미 예수님! 우리모두를 위해 기도드립니다. 저 같이 단순 무식한 사람은 돌나귀던 들나귀던 그런낱말들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 듭니다. 그것이 우리 구원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면 모를까 성경 흐름의 한 부분이라면, 단어 하나하나를 따지고 물고 늘어지고 하는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지요. 물론 궁금한건 풀어야 되겠지만, 저는 그져 우리 하느님이 세상을 빛과 말씀(예수님 과 성령님과 함께)으로 만드시고, 우릴 너무나 사랑하셔서 당신 자신까지 우리에게 내어주셔(십자가상 제물)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그것도 부족하여 성사를(성체 성사 등)을 세워주시여 먼지에 지나지 않는 저희랑 지금 이 순간에도 함께 해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며, 그져 매일 매일을 주님을 닮아 가기를 소망하다, 부르심에 응답 하리라 하는 생각외엔 한적이 없으니 ㅎㅎㅎ 역시 무식하지요?? ㅎㅎㅎ

    2014-01-02 추천(0)
    박윤식 (big-llight) 쪽지 2014-01-02 추천(0)

    찬미 예수님! 솔직히 말씀드려 무식은 제로고요, 마음이 정말 가난한 분이신 것 같군요. 마치 예수님의 산상 설교를 듣는 맘입니다. 그래요 '들'이란 글자에 '점'하나 찍으면 '돌'이 되는 게 세세한 이게 그리 중요할 것 까지는 없지만, 한 점 한 획 그분의 것이니까 그렇다고 중요하지 않다고는 하기가 어렵겠죠. 암튼 님의 조언대로 좀 큰 틀로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는 게 필요하다 여깁니다. 하느님 영광 드러내면서 그분과 그분 사랑하는 이웃을 향해 시선을 두는 삶이 정말 중요할 것 같군요. 따끔한 말씀 주신 김옥주 님 넘 감사합니다. ^^+

  • 이정임 (kr3217) 쪽지 대댓글

    † 찬미 예수님! 큰 틀에서는 김옥주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러한 점도 어느날 깨닫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모두가 하지 않는 몫을 감당할 사람도 필요하다는 것을 ... 모두의 몫이 다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소중하게 봐 주는 것이 중요함을 알게 되었지요. 좋은 말씀 주신 두분 감사합니다.

    2014-01-03 추천(0)
  • 김옥주 (ymrdkim) 쪽지 대댓글

    † 찬미 예수님! 박윤식님과 이정임님을 위해 기도 드립니다. 에구 ㅎㅎㅎ 죄송 합니다. 저는 이정임님의 본문 글을 보면서 참으로 박식하고 열정적이신 분 이시로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들나귀와 돌나귀가 그런뜻 이였구나 하고 받아 드렸을 뿐 이고, 박윤식 형제님 말씀처럼 제가 어떤 이들에게 따끔한 충고를 할 생각도 전혀 없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그져 본문을 읽고 리플 들을 읽다 보니 어느분은 본문내용이 70 역 에서 와 다르다고 하시고, 또 다른 분은 그와 다른 견해를 두고 하시는 말들 같아, 그런 것 들이 무에 그리 중요 하다고 하는걸까 하는 생각에 올린 글 이지, 전혀 누가 옳고 그름을 말한 것이 절대 아님을 말씀 드립니다. 혹여 내가 알고 있는것과 다른 견해가 있으면, 내가 아는 그 견해에 다른이의 견해를 덧 붙여 참고 하면 어쩔까나.. 하는 생각에서 올린 글이니 그 점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014-01-03 추천(0)
    문경준 (nolguitne) 쪽지 2014-01-03 추천(0)

    언급된 사람으로서... 꽤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것에 필요 이상으로 관심을 갖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한편, 지금 편하게 읽으시는 새번역성경이나 공동번역을 번역한 분들은 둘 중에 어느 쪽에 속하는 분들일까도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그분들이 없었으면 님이나 저는 하느님 말씀 한 줄 얻으려고 지금 헬라어나 라틴어, 또는 히브리어 알파벳과 씨름을 하고 있을 겁니다. 아님 귀동냥만 하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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