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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그때 그들과 오늘 우리: 슬기로운 공동생활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10-30 조회수4,837 추천수1

[그때 그들과 오늘 우리] 슬기로운 공동생활

 

 

1인 가구 전성시대

 

한국 사회의 1인 가구 비율이 점차 높아간다. 통계청의 ‘2019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30% 정도가 1인 가구다. 연령별로는 20대 1인 가구가 가파르게 증가하지만(18.2%) 70대 이상이 18.4%로 가장 많다.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저마다 하나의 섬으로 살아가게 되었는가?

 

 

사목 서간

 

사목 서간은 신약성경의 티모테오 1·2서와 티토서를 가리킨다. 초대 그리스도교 시기 복음 전파자에 대한 신약성경의 상징적 표현이 ‘어부’라면, 그들로부터 복음을 전해 들은 이들을 지도하고 보호하는 사람들에 대한 상징적 표현은 ‘목자’다. 바오로의 이름으로 쓰인 사목 서간은 교회의 지도자(사목자) 자리에 있는 개인들에게 보낸 편지로, 티모테오는 에페소, 티토는 크레타섬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지도자이다. 편지 내용은 사적이라기보다는 지역 교회를 잘 지도하기 위한 가르침을 전하는 공식적인 문서 형태이다.

 

사도 시대 이후 재림이 지연되면서 종말이 곧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를 수정하게 되었다. 관심은 이제 ‘어떻게, 언제 종말을 맞이할까’에서 ‘종말이 오기까지 세상에서 어떻게 적응해 가며 살아야 할까’로 바뀌었다.

 

교회가 세상에 뿌리내리려면 체계적인 기구와 조직을 갖추어야 했는데, 그 필요성은 교회를 위협하는 두 가지 요인으로 더욱 절실해졌다. 하나는 ‘거짓 가르침’이라는 교회 내부의 위협이었고, 다른 하나는 ‘박해’라는 교회 외부의 위협이었다. 교회가 안정을 찾기 위해서는 안으로 교회를 제도화하고 밖으로 세상에 제대로 적응하는 길을 모색해야 했다. 곧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사도들에서 전해 반은 신앙에 머무르며 거짓 가르침에서 신앙을 지키고 교회 제도를 확립하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세계의 시민으로서 모범적으로 생활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사목 서간의 집필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과부들에 관한 지침

 

바오로는 티모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과부들에 관한 가르침을 전하는데, 이로써 과부들이 공동체의 특별 보호 대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도는 자녀나 손자가 없는 과부들을 교회가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무의탁 과부들을 존대하십시오. … 무의탁 과부 곧 의지할 데 없이 홀로 된 여자는 하느님께 희망을 걸고 밤낮으로 끊임없이 간구와 기도를 드립니다”(1티모 5,3-5). “어떤 여신자의 집안에 과부들이 있으면, 그 여자가 그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교회가 무의탁 과부들을 도울 수 있도록 교회에는 짐을 지우지 말아야 합니다”(16절).

 

유다교에서 과부는 사회적 약자로 공동체의 돌봄 대상이었고, 사도행전을 통해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또한 과부들을 돌보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무렵 제자들이 점점 늘어나자,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히브리계 유다인들에게 불평을 터뜨리게 되었다. 그들의 과부들이 매일 배급을 받을 때에 홀대를 받았기 때문이다”(사도 6,1).

 

눈에 띄는 또 다른 점은 티모테오가 보살핀 에페소 교회에 ‘과부 명단’이 있었고, 이 명단에 오르려면 일정한 자격 요건을 갖추어야 했다는 것이다.

 

“예순 살 이상으로 한 남편의 충실한 아내였고, 선행으로 좋은 평판을 받는 여자여야 합니다. 자녀들을 잘 길러 내고 나그네를 후대하고 성도들의 발을 씻어 주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도와주고 온갖 선행에 몸을 바친 사람이어야 합니다”(1티모 5,9-10).

 

이 과부 명단에 오른 과부들의 역할이 기도와 성도들을 섬기고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는 것으로 묘사되어, 봉사자와 그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들은 공동체에서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였으나 봉사자나 원로, 감독 같은 일종의 직무를 구성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훌륭한 아내였고 어머니였던 이들이 남편을 잃고 난 뒤에, 남은 삶을 주님께 대한 믿음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면서 공동체의 모범이 되었던 것 같다.

 

한편 바오로 사도는 예순 살이 넘은 과부와 달리 젊은 과부들에게는 재혼하여 자녀를 낳고 집안을 꾸리라고 권고한다(5,14). 편지에는 젊은 과부들이 자기 욕심대로 살 때 공동체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염려가 나타난다(5,6.14-15 참조).

 

이 우려는 젊은 여성들이 교회를 위협하는 ‘거짓 가르침’(깨달음을 얻은 여자들의 독립적인 삶을 강조하는 영지주의 초기 사상)에 빠질 위험에 대한 경고일 수도 있으나, 대내외적으로 모범적인 공동체를 추구하는 사목 서간의 주제에 비추어 본다면, 단순히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걱정일 수도 있겠다. 당대 사회의 기존 관념을 고려하는 이러한 방향성은 1티모 2,15에서도 엿보인다. “여자가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을 지니고 정숙하게 살아가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노인정 : 어르신들의 사랑방

 

고모부를 여의시고 자식들도 다 출가시킨 고모는 혼자 살고 계신다. 그래도 늘 씩씩하고 명랑하시다. 혼자서 쓸쓸하지 않으시냐고 물으면, 아침에 일어나 간단히 요기하고 노인정에 나가 다른 할머니들과 점심을 드시고, 방문 건강관리사에게 건강관리를 받거나 노래 교실에서 노래하고 저녁에 들어오신다며, 외롭지 않다고 하신다. 하루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다 보니 할머니들 사이에 때로 갈등도 있으나, 노인정에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노년의 우정을 쌓아가며 공동체 생활을 하시는 것이다.

 

이렇듯 노인정은 고모를 비롯한 우리 할머니들의 정신과 육체 건강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한다. 코로나19로 노인정이 한시적이지만 부분적 폐쇄와 개방을 반복하여, 고모도 예전보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코로나 블루’를 겪으신다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어르신들의 놀이터요, 쉼터인 한국의 노인정은 우리만의 훌륭한 노인복지 문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공동체 생활을 통해 외로울 수 있는 노년을 슬기롭게 극복하며 고립보다는 연대와 나눔을 실천하는 장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슬기로운 공동생활을 기다리며

 

노인정에서 함께 생활하며 서로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할머니들 모습에서 에페소 교회의 과부들이 떠오른다. 에페소의 과부들이 같은 신앙 안에서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고 살았다면, 우리 할머니들은 특정 종교는 아니지만, 서로에 대한 애정과 함께하는 삶의 즐거움이라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신다.

 

그때 그분들이나 오늘 우리 어르신들 모두에게서 노년의 지혜로운 삶의 철학을 읽을 수 있다. 어르신들의 이러한 공동생활은 증가하는 청·장년층의 1인 가구에도 하나의 본보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현재 일부 지역에서는 노인정 문화를 발전시켜 1·3세대가 함께 어울리는 개방형 공동체 활동도 도입하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19로 말미암아 어르신들의 슬기로운 공동생활이 불가능해진 현실이 못내 아쉽다. 물리적인 공동생활이 제한된 ‘집콕’ 생활 기간을 지혜롭게 이겨내고 하루빨리 비어 있는 노인정에서 어르신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날이 오기를 기도한다.

 

* 강선남 헬레나 -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석사,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성서신학(신약학 전공)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에 출강하고 있으며, 「교황 프란치스코: 새 시대의 응답자」, 「성경의 인물들」, 「교부들의 성경 주해, 탈출기-신명기」 등의 역서를 냈다.

 

[경향잡지, 2020년 10월호, 강선남 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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