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73 성경 통독 길잡이] 창세기 창세기를 읽게 되면 시작부터 몇 가지 의문점을 가지게 됩니다. ‘왜 창조와 관련된 이야기는 두 번 반복되는 것일까? 왜 성경의 첫 시작부터 아담과 하와의 원죄를 비롯해서 카인과 아벨 사이에서 발생한 죄, 노아의 홍수 심판, 바벨탑 사건 등 인간의 죄와 잘못에 관한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이와 같은 질문들은 비단 창세기뿐만 아니라 성경 각 권을 읽을 때마다 다양하게 주어지게 되는데,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각각의 성경이 언제 쓰여졌는지, 즉 어떠한 상황 속에서 전해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인간의 역사와 무관하게 전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이 아니라 당신이 창조하신 인간의 역사에 인격적으로 통교하시며 계시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창조와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어지는 성조(聖祖)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창세기는 언제 쓰여졌을까요? 창세기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여러 저자들, 즉 야훼계, 엘로힘계, 사제계 학자들이 구전전승으로 이어져 오던 것들을 문서화하면서 완성된 책이기 때문에 특정 연대를 정확하게 지칭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최종 편집은 솔로몬 임금 시대부터 시작해서 바빌론 유배를 겪으면서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솔로몬 임금 통치 시대 그리고 바빌론 유배를 겪었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처한 상황을 살펴보면 위에서 언급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다윗 임금의 뒤를 이어 즉위한 솔로몬 통치 시절 이스라엘 민족은 최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솔로몬 임금은 무리한 영토 확장과 주변국과의 정치적 목적을 띈 정략 결혼 과정에서 이교도의 여인들과 그들의 풍습과 종교가 유입되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을 향한 유일신앙이 우상숭배로 더럽혀지게 됩니다. 그 후 이스라엘 왕국은 남과 북으로 갈라지게 되고 아시리아와 바빌론의 침략으로 인해 성전은 파괴되고 이스라엘 백성은 유배를 가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신 땅인 가나안을 떠나 타국에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왜 이러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지를 성찰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윗과 솔로몬의 찬란한 전성기를 보내면서 이집트를 탈출할 때부터 가졌던 ‘하느님만이 참된 하느님이시며, 하느님이 내 삶의 주인이라는 믿음’이 퇴색되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이러한 죄가 왕국의 멸망과 유배라는 결과를 낳게 되었던 것입니다. 창세기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최종 편집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세기는 1장 1절에서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라고 선언하면서 하늘과 땅의 주인은 교만에 빠진 우리가 아니라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앞서 살펴봤듯이 최종 편집 당시에 그들은 이에 대해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이를 분명하게 고백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뒤이어 아담과 하와의 원죄를 전합니다. 원죄는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3,5)라는 뱀의 유혹에 빠져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의 명령을 어긴 죄를 말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라는 구절에 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에 이은 찬란한 전성기를 보내는 동안 더 이상 하느님께 기도하고 의탁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며 자연스럽게 하느님 없이, 내가 마치 하느님인 듯 판단하고 행동했던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를 이를 통해서 창세기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 아벨을 죽이고 하느님께 따져 묻는 카인의 모습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거스른 채 타락을 자행했던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그리고 하늘까지 오르고자 했던 바벨탑을 건설하려던 모습에서도 창세기는 사람들의 교만을 일깨우고, 하느님만이 참된 하느님이시며 우리는 하느님의 피조물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왕국의 분열과 바빌론 유배라는 비참한 역사적 현실 안에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회개와 성찰로 이끄시며 알려주신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 이것이었기 때문에 성경의 첫 시작은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고백과 뒤이어 인간의 죄를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읽다보면 서두에서 제기한 ‘왜 하느님의 창조 기사가 연이어 2번 반복되는가?’라는 질문이 다시 제기됩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창세기가 한 명의 저자가 아닌 여러 저자에 의해서 그리고 다른 시대적 상황 속에서 작성되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장 1절부터 2장 4절ㄱ까지의 창조 이야기는 사제계에 의해서 작성된 창조 이야기로서 바빌론 유배 때 작성되었습니다. 따라서 이교 신앙에 맞서 하느님만이 참된 하느님이심을 분명하게 이야기하기 위해 하느님의 창조에 주안점을 두고 창조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장 4절ㄴ부터 3장 24절까지의 창조 이야기는 야훼계에 의해서 작성된 창조 이야기로서 다윗 왕국 이후 시대에 작성되었습니다. 따라서 찬란한 황금기를 보내는 동안 교만이 싹트고 하느님을 잊어버리기 시작하는 인간의 죄에 초점을 두고 창조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같은 창조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전하는 바가 조금씩 다르고 둘 다 중요한 가르침을 주기 때문에 최종 편집자는 두 창조 이야기 모두를 실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만을 바라본다면 하느님의 사랑을 저버리고 인간이 반복해서 죄를 짓는 비관적인 내용이 전해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창세기는 비관적인 상황만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3-11장에 이르기까지 죄의 크기는 점점 커지지만 동시에 인간들의 죄보다 더 큰 하느님의 자비와 강복의 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은 창세기 12장부터 이어지는 아브라함과 성조들의 역사에서 잘 드러납니다. 12장부터 시작해서 50장에 이르기까지 창세기는 성조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하느님이 성조들과 맺으신 계약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계약은 하느님께서는 성조들에게 땅과 후손을 주시고, 성조들은 하느님만을 믿고 하느님을 섬기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성조들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당신이 사랑하시는 당신의 백성을 부르시고 끝까지 보살피신다는 것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조들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은 “나는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느님이며 이사악의 하느님인 주님이다.”(28,13)와 같이 스스로를 신앙의 선조들과 계약을 맺으신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밝히심으로써 계약의 당사자인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끝까지 계약을 지켜주시는 의로우신 하느님이심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모습은 유배를 겪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커다란 힘과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자신들의 잘못으로 나라를 잃고 하느님의 성전도 파괴되었으며 유배까지 겪고 있지만 우리가 믿는 하느님이시며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믿었던 하느님이 같은 하느님이시기에 그 자비로운 하느님이 우리를 다시 보살펴 주실 것이라는 희망을 간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C4uN79AXf4I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20년 12월호, 노현기 신부(사목국 기획연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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