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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사도행전을 따라가는 성경의 세계: 소아시아 땅의 첫 선교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12-08 조회수6,166 추천수0

[사도행전을 따라가는 성경의 세계] 소아시아 땅의 첫 선교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 피시디아 안티오키아에 있는 바오로 기념 교회 터(BiblePlace.com).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키프로스 선교(사도 13,4-12)는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결실이 없지 않았습니다. 파포스에서 세르기우스 바오로 총독이 개종한 것입니다. 두 사람의 선교 활동으로 이방인이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인 첫 번째 사례였습니다. 두 사람은 파포스에서 배를 타고 지중해 건너편 소아시아 땅으로 건너갑니다.

 

사도행전은 바오로 일행이 도착한 곳이 팜필리아의 페르게라고 전합니다(13,13). 팜필리아는 지중해 연안의 소아시아(오늘날 터키) 남부 지방이고, 페르게는 지중해에서 10km가량 내륙으로 들어간 곳에 있습니다. 내륙이지만 지중해로 흐르는 체르투스 강을 끼고 항구가 있어서 페르게까지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페르게 남쪽 마기도스라고 하는 곳에 내려서 페르게까지 올라갔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마기도스는 터키 남중부의 큰 항구도시 안탈리아(성경의 지명은 아탈리아) 오른쪽에 있는 작은 항구입니다.

 

- 비아 세바스테(BiblePlace.com).

 

 

이 페르게에서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조수로 함께 지냈던 요한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두 사람은 내륙으로 올라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도착합니다. 페르게에서 북쪽으로 200km가량 떨어져 있는 이 도시는 로마인들이 식민지로 만든 군사도시이자 소아시아 내륙의 상업과 교통의 중심지였습니다. 유다인들도 많이 살았습니다. 또 페르게에서 시작하는 로마 시대의 고속도로 ‘비아 세바스테’(Via Sebaste, 황제의 길)가 이곳을 거쳐 동쪽 이코니온과 리스트라로 이어집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페르게에서 곧바로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로 올라온 것은 이 도시가 지닌 이런 여러 특징을 고려했을 것입니다. 두 사람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개종한 파포스의 세르기우스 바오로 총독의 가문이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출신이어서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총독의 귀띔을 받고 이곳을 목적지로 삼았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바오로를 박해하는 유다인들과 기뻐하는 이방인들

 

두 사람은 안식일이 되자 회당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안식일 전례에 따라 율법과 예언서 봉독이 끝나자 회당장들이 바오로 일행에게 사람을 보내어 격려할 말씀이 있으면 해달라고 청합니다(사도 13,15) “회당장들”이라고 복수를 사용하고 또 사람을 보내어 말씀을 청했다는 것을 보면 회당 규모가 상당히 컸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 바오로 기념 교회터.

 

 

바오로가 일어나 사람들을 조용히 시킨 다음에 “이스라엘인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하고 말하기 시작합니다(사도 13,16). 바오로의 이 말은 회당에는 유다인뿐 아니라 유다교의 하느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도 있었음을 알게 해줍니다.

 

바오로는 먼저 이스라엘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예수님이 하느님께서 약속한 구세주로서 세상에 오셨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런 다음 예루살렘 주민들과 지도자들이 구세주를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단죄하고 죽였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다시 살리심으로써 다윗과 그 후손에게 약속하신 예언을 이루셨다고 밝힙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죄의 용서가 선포되며,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지만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 안에서 모든 죄를 벗어나 의롭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회중에게 예수님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합니다(13,17-41).바오로의 설교에서 주목할 대목은 “모세의 율법으로는 여러분이 죄를 벗어나 의롭게 될 수 없었지만,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 안에서 모든 죄를 벗어나 의롭게 됩니다”(13,38ㄷ-39)라는 부분입니다. 유다인들은 율법을 충실히 지키면 구원을 받는다고 여겼지만, 바오로 사도는 이를 부정하면서 믿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오로의 이 말은 바오로 자신의 체험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누구보다 충실히 율법을 지켰던 열렬한 바리사이파로서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라고 자부했습니다(필리 3,5-6 참조). 하지만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과 깊은 회심을 통해 율법을 지킴으로써가 아니라 주님을 믿음으로써 의롭게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유적지에 있는 고대 간선도로(좌), 고대 페르게의 유적(우)(BiblePlace.com).

 

 

율법을 지킴으로써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바오로 말은 하느님을 믿으면서도 유다인처럼 엄격히 율법을 준수하지 못하는 경건한 이방인들에게 큰 위로와 희망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가 회당을 나올 때 사람들은 다음에도 이런 말씀을 해 달라고 청했고 그다음 안식일에는 도시 사람들이 거의 다 모여들었습니다(사도 13,42-44).

 

그렇지 않아도 율법을 지킴으로써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바오로의 말에 감정이 상했을 유다인들은 사람들이 바오로에게 모여드는 것을 보고 시기심에 가득 차 모독하는 말을 하며 바오로를 반박합니다. 그러자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여러분에게 전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것을 배척하고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스스로 합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니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섭니다.…”(사도 13,45-47)

 

다른 민족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는 기뻐하며 주님 말씀을 찬양합니다. 또 주님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집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사람들을 선동해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박해하게 하고 그들을 쫓아냅니다. 바오로 일행은 발의 먼지를 털어 버리고 나서 이코니온으로 가고, 말씀을 받아들여 제자가 된 이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찹니다(사도 13,48-52).

 

- 피시디아 안티오키아 유적지 입구에 있는 바오로 기념 교회 설명문.

 

 

바오로가 안식일에 설교한 회당 터 위에 지어졌다는 ‘바오로의 교회’

 

사도행전은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소아시아 내륙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서 펼친 선교 활동을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은 소아시아 내륙에서 1차 선교 활동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다시 들릅니다. 자신들이 선포한 말씀을 믿고 받아들인 제자들을 격려하기 위해서였습니다(14,21-22). 또 사도행전에 명시적으로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바오로는 2차와 3차 선교 여행 때도 이곳을 들릅니다. 바오로는 프리기아와 갈라티아 지방을 거쳐 가면서 제자들의 힘을 북돋아 주었는데,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가 바로 갈라티아 지방에 속해 있었습니다(사도 16,6; 18,23 참조).

 

이렇게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선교로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형성된 이 도시는 3세기 말 피시디아가 갈라티아에서 분할되어 피시디아주가 되면서 그 수도가 되었습니다. 또 이곳 교회는 이 지방의 관구주교좌 교회가 되어 12세기까지 명맥을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로마 시대와 비잔틴 시대의 유적들이 남아 있는 폐허가 됐고, 인근 얄바치라는 마을이 이 고대 유적을 안내하는 관광 안내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일곱 언덕을 따서 일곱 개의 작은 구릉에 흩어져 있는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유적지에는 비잔틴 시대에 지어진 바오로의 교회 유적이 있습니다. 이 바오로의 교회는 바오로가 안식일에 설교한 회당 터 위에 지어졌다고 합니다. 또 회당으로 향하는 길에는 옛 도시의 간선 도로가 당시 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 있습니다.

 

그 길 위에 서 있으면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설교를 들으러 이 길을 따라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했을 사람들의 모습과 유다인들에게 내쫓겨 발에 먼지를 털어 버리고 떠나는 두 사도의 모습이 겹치며 떠오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12월호, 이창훈 알퐁소(전 평화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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