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앗, 십자가에서 사라진 예수그리스도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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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병민 | 작성일2014-04-10 | 조회수2,871 | 추천수5 | 신고 |
(십자성호를 그으며)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크리스찬 십자가 형태가 다르다. 기톨릭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받힌 모양의 십자가를 사용하고 있고 개신교는 예수그리스도가 없는 십자가를 사용하고 있다. 개신교신자에게 물어 보면 어떤분은 하느님이 세상에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하여 예수상을 십자가에서 없앴다고 한다. 예수님이 하느님이신데 이것은 무슨 말인지, 물론 개신교는 수천의 교파가 있어서 서로 얘기하는 것이 다르므로 이것이 전체 개신교를 대표한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대다수 교파는 십자가에 예수님이 빠진 이유가 부활 하셨기 때문이라고 한다. 얼마전 가톨릭 지인중에 한분이 산행 중에 신앙이 깊은 개신교 신자분을 만나 사귀게 되었다. 그 개신교 신자분이 왜 가톨릭은 예수님이 부활 하셨는데 예수님이 비참하게 돌아가신 못박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사용하는냐고 질문 헀다고 한다. 즉 고통에 찌들린 십자가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억해야한다는 논리로 못박힌 예수님이 있는 가톨릭 십자가를 비판했다는 것이다.참으로 이런 질문을 듣고 같은 그리스도를 믿지만, 갈라진 형제인 개신교 신자의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하였다.
십자가 처형은 당시 로마 황제 체제에 반란을 획책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가장 잔인한 형벌로 주로 낮은 천민 계층인 하류층 이나 노예등에게 내리는 형벌로 사용하였다. 십자가형은 처형 당하는 자를 벌거벗겨 눈에 띄는 장소, 높은 언덕등에 공개적으로 처형하여, 형벌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최대의 수치를 받게 하였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가 처형 당하시기 전에는 이 십자가를 통해서 현재의 눈으로 보면 억울한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포함되었겠지만, 당시에는 많은 악행을 저질른 사람들이 죽어간 곳이 십자가 인 것이다. 그 십자가가 성스러운 곳이 된것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처형 당하셨기 때문인 것이다
십자가상에서의 예수님의 죽음은 하느님의 신비에 깊이 침잠하게 해준다. 성자 예수그리스도는 당신을 바치심으로써, 성부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을 죽도록 넘겨 주면서 성부와 성자는 함께 하신다. 성부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부성을 즉 당신 자신을 상실하시면서까지 성자 예수님을 버리고 넘겨 주신다. 따라서 십자가 수난에서 볼 수 있는 은총이란 무엇보다도 당신 자신을 인간에게 넘겨주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의 고통은 바로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느님의 구원 의지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이런 예수의 죽음을 통해서, 하느님 존재 그 자체가 사랑이라는 것이 십자가에서 드러났다. 십자가는 성자 뿐 아니라 성부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말하고 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전능을 숨기시고 당신 자신을 위해 사용치 않으시고 오직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세상의 악과 싸우신 것이다. 예수님은 기적과 권력으로, 힘으로 세상을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로 세상을 구원 하셨다. 이 십자가는 자기의 희생을 통한 사랑의 기적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이 십자가상의 예수님은 그리스도라는 칭호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말해주고 있다.
메시아의 비밀은 바로 고통의 신비에 있는 것이다. 이 고통의 신비를 통해서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조건이 완성된 것이다. 십자가 수난은 인간을 향한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의 극치인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어느 것도 우리의 임의대로 취사선택할 수 없다. 고통과 박해의 그리스도를 우리의 삶 안에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오로지 영광의 그리스도만 맞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리스도는 나누어질 수 없는 오직 하나의 실체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고통 없이 승리가 없고 가시관 없이는 왕좌가 없으며, 쓰라림 없는 영광이 없고 십자가 없이는 영광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예수가 부활 하셨으니 십자가에서 예수상을 없앤다는 것은 참으로 같은 기독교인 (그리스도교의 한자말)으로서 이해하기 곤란하다. 물론 그분이 다니는 일부교회의 의견일 수도 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끊어졌던 관계를 십자가로 이어 놓으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인간과 인간, 인간과 하느님 사이에 통교가 이루어졌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 예수님 안 계신 십자가는 존재할 수 없다. 그리스도 신자로서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십자가가 전제되어 있어야한다. <1코린2,2>에서 말씀하신 "나는 여러분 가운데 있으면서 예수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 했습니다"라는 바오로 말씀을 되새긴다.
부활과 십자가 수난은 서로 깊게 연결되어 있다. 십자가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이고, 부활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의 부활인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이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이시다. 다시한번 새삼스럽게 예수그리스도가 계신 십자가를 만져본다.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십자가상 예수를 느끼고 만질수 있는 가톨릭 신자임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찬미 예수님 다시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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