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때 뽑아 보는 성경 속 명장면] 원죄의 심리적 의미 처음 성경을 접하는 이들이 갖는 흔한 의문과, 혼란을 일으키는 장면 중 하나가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이 금한 지혜의 열매를 따 먹는 부분입니다. 교리 배우는 어린이의 마음으로 돌아가, 아이들이나 할 법한 어찌 보면 유치한 질문들을 요약해 볼까요. 우선 하느님은 미래도 보실 수 있는데, 인간이 뻔히 거짓말할 것임을 아시면서 왜 선악을 알아볼 수 있는 나무의 열매를 따지 말라는 명령을 하셨을까요? 하느님은 우리가 죄짓는 것이 재미있으셨을까요? 또 지구라는 낙원에서 그대로 영원히 살도록 하시지, 왜 인간이 추방될 수 있는 일종의 장치를 만드셨을까요? 게다가 그 존재가 이롭지 않고 해로운 것만 있는 사탄을 만드셔서 뱀으로 하여금 인간을 유혹해 거짓말을 하게 하셨을까요? 그렇다면 하느님 모습대로 인간을 만들었다는 말씀이 진실하지 않다는 뜻일까요? 또 우리는 왜 아담과 하와가 지은 원죄까지 떠안고 불행하게 살아야 할까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잊을만하면 생각나지만 제 힘으로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입니다. 큰 수수께끼이지만, 사실 딱히 시원한 대답을 들은 기억도 없습니다. 어차피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니 그냥 유보하고 살아야지, 할 때가 많았지요. 하지만, 알 수 없는 성경 속의 가르침들을 나름 깊이 생각하면서, 내 질문은 과연 올바른지, 또 성경의 말씀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는지 물어보는 작업은 죽을 때까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거짓말 장면에는 인간이 윤리성을 키워나가는 데 꼭 필요한 “금기”의 체험과 관련된 “도덕성 발달”에 대한 주제가 담겨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성장이나 성숙의 핵심 과제 중 하나가,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는 것이지요. 한데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내면화해서 받아들이는 도덕성을 갖추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만약 인간이 태어난 이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한다면, 사람이든 짐승이든 사회도 개인도 생존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창세기 속의 금지 명령은 인간이 사회화되는 첫 번째 관문인, “안 돼!”를 배우고 익히는 단계 같아 보입니다. 순진한 아이건, 계산할 줄 모르는 짐승이건, 일단은 힘이 없어 복종을 하지만, 잠깐 한눈을 팔면 금방 어른이나 사람의 눈을 속이지요. 거짓말의 단계입니다. 그렇다면, 아담과 하와의 심리적 단계는 돌이 막 지난 어린아이의 행동과 감정 같은 아주 초기 인간의 성장단계가 아닐까요. 성경의 시작은 그렇게 아장아장 걸음을 떼는 인간에 대한 은유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도덕성 발달 이론에 따라 아담과 하와의 행동과 운명을 바라보는 작업은 다음 편에 더 자세히 해 보겠습니다. 정신과 의사라는 그릇을 벗어나지 못한 까닭에 졸렬한 방식으로 감히 해석해 보았습니다. [2021년 3월 7일 사순 제3주일 수원주보 4면, 이나미 리드비나(서울대학교 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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