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그리스도인 이라고 표현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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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4-07-24 | 조회수1,151 | 추천수0 | 신고 |
● 초대 교회의 삶과 영성[송봉모]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 그리스도인
그뒤에 바르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타르수스로 가서, 그를 만나 안티오키아로 데려왔다. 그들은 만 일 년 동안 그곳 교회 신자들을 만나며 수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사도 11,25-26)
바오로의 합류 안티오키아 공동체에서 사목을 수행하던 바르나바는 새 신자들의 숫자가 늘어나자 함께 일할 협력자를 찾게 된다. 그래서 타르수스에 있던 사울 곧 바오로를 초대한다. 그들이 함께 일한 1년 사이에 '수많은 사람을' 가르칠 수 있었고, 그 결과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한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음을 본다. 하느님은 한 사람에게 모든 능력을 주시어 그 사람 혼자 모든 일을 하도록 하지 않으신다. 하느님은 각 사람에게 서로 다른 은사를 주시고 함께 교회를 건설하도록 이끄신다.
바르나바가 받은 주요 은사는 위로와 격려의 은사로써 그는 공동체를 화합시키는 능력이 있다. 그런데 교회가 성장하면서 이러한 은사만으로 교회를 이끌어 갈 수 없다. 한편 바오로는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복음선포와 가르침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이다. 그는 다마스쿠스와 예루살렘에서 믿지 않는 유다인들이 당혹할 만큼 강력하게 복음을 선포한 사람이다.(사도 9,19-22.28-29). 이렇게 서로 다른 은사를 가진 두 지도자가 공동체를 이끌어 감으로써 교회는 더욱 성장한다.
말 한 마리가 끌 수 있는 짐은 대략 3천 키로그램이다. 그렇다면 두 마리 말이 끌 수 있는 짐은 6천 킬로 그램인가? 아니다. 9천 길로그램의 짐을 끈다. 두 마리 말이 함께할 때 각 각 끌 수 있는 짐보다 더 많은 짐을 끈다. 이를 시너지 효과 또는 상승효과라고 한다. 시너지synergy란 그리스말의 'συν(함께)'와 'ερΥω(일하다)'가 합쳐진 'συνερΥεω(함께 일하다)'?에서 생겨난 말이다.
이 단어가 로마서 8장 28절에 나온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함께 일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높은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 간의 협동이 필수적이다. 예컨대 아무리 개인기가 뛰어난 운동선수라 할지라도 팀의 동료들과 호흡이 맞지 않으면 제 기량을 충분히 발휘하기가 어렵다. 합동이란 함께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 목적과 뜻이 같을 때 이루어진다. 또 마음의 일치가 있을 때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달리 표현하면 서로 존중하고 아끼고 사랑할 때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바르나바가 바오로와 함께 공동사목을 한 것은 단순히 일손이 필요해서 그랬던 것만은 아니다. 위해서 언급했듯이 바르나바가 받은 탈렌트와 바오로가 받은 탈렌트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도 공동체 발전을 위하여 함께 일할 수 있는 훌륭한 협력자들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꾸준히 후계자를 키우는 안목이 필요하다.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함께 수고하는 어떤 사람이 나와 성격이 맞지 않아 힘들 수 있겠지만 그 사람을 배격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서 각자의 은자를 인정하고 서로 키워주며 협력해야 한다.
안티오키아 신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 불림 약 44년경 그러니까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초대교회가 태동한 지 14년이 흐른 다음이다. 안티오키아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신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된다. 이 호칭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서 생겨났다. 그들이 안티오키아 신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던 것은, 안티오키아 신자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강하게 증언하면서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전교하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을 끈질기게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측을 가능케 하는 사건이 사도행전 안에 있다. 바오로가 카이사리아 감옥에 갇혀 있을 때 헤로데 아그리파스 2세 앞에서 심문을 받게 된다. 그 심문에서 바오로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증언하자, 아그리파스 가 다음처럼 외친다. "당신은 조금 있으면 나를 설득하여 그리스도인으로 행세하게 만들겠군."(사도 26,28)
'그리스도인'이란 단어가 갖는 의미는 참으로 깊다. 그 의미는 '그리스도께 혹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리 스도인이란 말 그대로 그리스도께 속한 자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언행, 삶의 목표, 가치관을 발견하는 사람이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그리스도를 첫째로 모시고 살아 가는 사람이다.
우리가 꼭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안티오키아 신자들이 어떻게 해서 그리스도인으로 불리게 되었나 하는 점이다. 그것은 바르나바와 바오로가 그들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면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들은 만 일 년 동안 그곳 교회 신자들을 만나며 수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사도 11,26)
이미 세례받은 신자들을 향한 교육, 곧 신자 재교육은 이렇게 강력한 것이다. 세례를 받았다고 자동적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새 신자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만들려면 신앙생활의 기본기를 기초부 터 차근차근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들이 고백한 믿음이 무엇인지,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섬김 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공동체 생활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세상 안에서 빛과 소금이 된다 는 것은 무엇인지 등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성사생활에 대해서도 가르침을 주어야 한다. 성체성사, 고해성사, 병자성사 등의 중요성과 그 내용을 알려 주어야 한다. 또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해서 그리고 종말론과 같은 신학적인 내용 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이러한 가르침들이 세례를 준비하면서 받았던 교리공부 시간에 모두 제대로 전달 될 리는 없다. 설령 전달되었다 해도 머리로 알아들은 것이니, 몸은 따라오지 못한다. 마치 수영을 처음 배울 때 아무리 이론적인 설명을 들어도 몸이 따라 하지 못하듯이, 어떤 것이든 몸과 마음으로 습득하려면 계속적인 재교육이 필요하다.
앞에서 그리스도인이란 신자가 아닌 이들이 신자들을 일컫기 위해 사용한 단어라 했다.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인이란 단어는 세 차례밖에 나오지 않는다(사도 11,26; 26,28; 1베드 4,16). 그렇다면 오늘날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인이란 용어가 널리 퍼지게 된 것은 누구의 영향일까?
바로 교부 이냐시오 덕분이다. 2세기 안티오키아의 주교였던 이냐시오는 유다교와 구분하기 위해 그리 스도교란 용어를 사용했다. 주목할 점은 안티오키아 신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란 칭호로 불렸는데, 그리스도인이란 용여를 널리 사용케 한 사람도 안티오키아 주교였던 이야시오란 점이다.
우리나나 개신교 신자들이 사용하는 용어 '기독교'는 그리스도교를 표현한 것이다. 그럼 기독교는 본시 누가 만들어 낸 말인가?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벌이던 예수회 선교사들이 처음 만들어 낸 용어다. 그리스 도교를 중국어 발음으로 만드니 '기리사독교基理斯督敎'가 되었다. 후에 이 말이 줄어 기독교가 되었다.
그런데 예수회원들이 기리스독이란 단어를 만들 때 발음만 생각하고 만든 것은 아니었다. 그 의미도 생각 하면서 만들었다. 다시 말하면 '기'자만 해도 한자어로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기基를 택한 것은 기본이 된다는 의미에서였다. 그리고 이 기본은 다음에 선택된 단어 리理와 함께 해서 기본이 되는 이치란 의미 이다. 아무튼 처음 예수회원들에 의해서 중국에서 사용된 기독교란 용어가 지금은 한국에서 개신교를 가리키는 용어처럼 되었다. 그렇지만 기독교란 용어는 그리드로를 믿는 모든 종교 곧 가톨릭과 개신교를 다 일컫는 용어다. ●
송봉모/ 예수회 신부. 성강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 자료출처: 2014년 6월호 야곱의 우물 / 바오로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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