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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사도행전을 따라가는 성경의 세계: 유럽에 복음을 전하는 관문이 된 트로아스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1-05-19 조회수3,611 추천수0

[사도행전을 따라가는 성경의 세계] 유럽에 복음을 전하는 관문이 된 트로아스

 

 

– 트로아스의 유적(BiblePlace.com)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바오로가 1차 선교 여행 때 복음을 전한 소아시아(오늘날 터키) 중부 내륙의 도시입니다. 사도행전에는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지 않지만, 바오로는 2차 선교 여행에서도 이 도시에 들렀을 것입니다. 2차 선교 여행의 목적이 1차 선교 여행 때 “주님의 말씀을 전한 모든 고을로 형제들을 찾아가” 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살펴보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사도 15,36).

 

이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서 서쪽으로 계속 가면 소아시아의 서쪽 끝인 아시아 지방이 나오는데 그 수도가 에페소입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으셨으므로” 바오로 일행은 방향을 북쪽과 동쪽으로 틀어 “프리기아와 갈라티아 지방을 가로질러” 갑니다(사도 16,6). 프리기아와 갈라티아는 소아시아의 중부 지역을 양분하는 지방들입니다. 동쪽이 갈라티아라면 서쪽은 프리기아입니다.

 

이렇게 중부 내륙을 다니다가 바오로 일행은 다시 프리기아의 서쪽 지방인 미시아에 이릅니다. 거기에서 북쪽인 비티니아로 가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예수님의 영께서 허락하지 않아 미시아를 지나 트로아스로 내려갑니다(사도 16,7-8).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의 목마’의 도시 트로이가 인근에 있어 트로이와 구별하고자 ‘알렉산드리아 트로아스’라고도 부른 트로아스는 당시 소아시아 서쪽 에게해 연안의 중요한 항구도시로서 유럽 곧 마케도니아와 소아시아를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했습니다. 당연히 상업 중심지였지요.

 

– 트로아스에 있는 포장 도로 유적(BiblePlace.com)

 

 

마케도니아에 관한 환시를 본 도시

 

이곳 트로아스에서 바오로는 어느 날 밤,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자기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는 환시를 봅니다. 그 환시를 보고 난 후 바오로 일행은 곧 마케도니아로 떠날 방도를 찾습니다. 그 환시는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느님께서 부르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사도 16,9-10). 마케도니아는 오늘날 그리스와 알바니아와 북마케도니아 등이 자리한 그리스반도 일대를 가리킵니다.

 

바오로가 트로아스에서 본 환시는 왜 바오로 일행이 아시아로 가는 것을 성령께서 막으셨고 비티니아로 가는 것을 예수님의 영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복음은 아시아(소아시아)를 넘어서 유럽(마케도니아)에 전해져야 하며 하느님께서는 그 일을 바오로에게 맡기시려 한다는 것입니다.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관문인 항구도시 트로아스는 이제 복음을 유럽에 전하는 관문이 됩니다. 그 일을 바오로와 그 일행, 곧 실라스와 티모테오 등이 담당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물음이 생깁니다. 트로아스는 규모로 보아 유다인들도 상당수 사는 큰 도시였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도행전 저자는 바오로가 처음으로 방문한 이 도시에서 말씀을 전했는지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바오로가 본 환시에 관해서만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바오로는 자신의 첫 번째 트로아스 방문에서는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봐야 할까요? 이에 관해서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다만, 트로아스는 바오로가 그 도시에 복음을 전하는 일 자체보다 마케도니아로 복음이 전해지는 관문 또는 길목 역할을 한다는 점이 사도행전 저자에게 훨씬 중요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트로아스의 건축물 유적(위)과 트로아스의 고대 외항 유적(BiblePlace.com)

 

 

성찬례를 거행하고 젊은이를 되살린 도시

 

그렇지만 바오로가 트로아스에서 복음을 전한 것은 분명합니다. 이 사실은 바오로 자신이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에서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러 트로아스에 갔을 때”(2코린 2,12)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도행전 저자 역시 바오로가 3차 선교 여행 때에 트로아스에서 이레 동안 지내면서 성찬례를 나누고 신자들에게 말씀을 전하다가 에우티코스라는 청년을 살린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사도 20,6-12).

 

따라서 트로아스에는 바오로의 2차 선교 여행 또는 적어도 3차 선교 여행 때는 바오로가 전한 말씀을 받아들여 교회 공동체를 이룬 신자들이 있었고 그들에게는 바오로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에우티코스라는 청년이 깊은 잠에 빠져 창문에서 떨어질 정도로 밤늦게까지 바오로가 그곳 신자들에게 이야기를 계속하고 젊은이를 되살린 후에는 날이 샐 때까지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합니다. 또 티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서간에는 감옥에 갇힌 바오로가 티모테오에게 트로아스에 두고 온 외투와 책들을 가져오라고 부탁하는 대목이 나옵니다(2티모 4,13). 이 대목 역시 바오로와 트로아스의 관계를 잘 드러낸다고 하겠습니다.

 

이렇듯이 바오로의 선교 여행에서 의미 있는 도시가 된 트로아스는 베드로 사도의 후임으로 안티오키아의 주교가 된 2세기 순교자이자 사도 교부인 이냐시오 성인이 로마로 압송될 때 머물면서 세 통의 편지를 쓴 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스미르나 주교인 폴리카르포 성인에게, 스미르나 교회에, 그리고 필라델피아 교회에 각각 쓴 편지였습니다.

 

트로아스는 비잔틴 시대에는 주교좌 성당이 있을 정도로 그리스도교가 번성했지만,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융성하면서 상대적으로 쇠락해져 갔습니다. 이후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에 지배를 받으며 점점 더 역사 속에 묻히는 도시로 변했습니다. 트로아스의 건축물들에 사용됐던 대리석을 비롯한 석재들은 17세기 콘스탄티노플에 블루 모스크를 짓는 데 사용됐다고 합니다.

 

고대 트로아스는 우리나라의 여의도 크기에 버금갈 정도로 넓었지만, 오늘날 대부분이 무성한 숲과 잡초로 뒤덮여 있고 일부는 모래 언덕과 밭으로 변했습니다. 일부 발굴이 이뤄진 곳에서는 로마 시대의 성벽, 목욕장과 경기장, 돌로 포장된 도로 등을 부분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유럽 땅에 복음을 전해야겠다고 결심을 굳힌 바오로. 이것은 바오로가 두 번째 선교 여행을 출발했을 때는 물론 트로아스에 와서 환시를 보기 전까지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바오로가 아시아에 가지 못하도록 막고 또 비티니아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막은 성령의 지시를 곧게 따랐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바오로는 성령의 지시에 순응함으로써 트로아스까지 올 수 있었고 마침내 그곳에서 성령의 뜻을 구체적으로 확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통해서 그리고 매 순간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영 곧 성령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제대로 응답한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고 그에 합당하게 처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트로아스는 우리에게 이를 일깨워 주는 성경의 도시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5월호, 이창훈 알퐁소(전 평화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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