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곳--사심판과 공심판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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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병민 | 작성일2014-09-24 | 조회수1,951 | 추천수1 | 신고 |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마태오 25,13]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로마 2,6] 하느님께서는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으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심판에 관하여 전통교리는 각 개인이 죽은 다음 곧 사심판을 받고, 세상 마지막 날에 공심판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두번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인가?
위의 마태오 복음 25장 13절은 최후의 심판에 관한 말씀이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로마서 2장 “하느님의 의로운 심판”의 6장에는 엄격하게 공심판과 사심판을 구별하지 않고 있다. 사심판에 관한 확신은 교부시대를 거쳐 서서히 발전된 개념으로 ,죽음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하느님과의 개별적 만남은 육신 없이 영혼만이 받게 되는 사심판이요. 최후심판은 육신과 더불어 영혼이 모든 다른 사람과 함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 받게 되는 공심판으로 구별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라너를 비롯한 현대 신학자들은 인간을 철저하게 영혼과 육신으로 분리할 수 없다는 입장이며, 더욱이 두 번씩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한 개인이 행한 사건에는 크든 작든, 혹은 직간접적으로 가족,친척,친구등 다른 많은 사람들이 연루되어 있다. 즉 공심판과 사심판도 두 가지 분리된 심판이 아니라 한 가지 심판의 두 가지 측면이라고 보아야한다. 그래서 녹케는 인간이 죽은후 한 가지 심판만 있으며 이 심판은 당사자에게는 사심판이 되지만 동시에 공심판이 되기도 한다. 그는 역사와 세상에 속하고 이 역사는 그에게 속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인류는 하나의 긴밀한 연결관계를 형성하고 있고, 각자의 삶은 다른 사람들의 삶과 깊이 연관되어 있으며, 한 인간의 완성은 인류 역사 완성의 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로핑크는 사심판과 공심판 모두 포기해서는 안될 그리스도 신앙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우리가 전통 교리대로 사심판과 공심판을 두 가지 심판으로 인정하는 것은 죽은 다음의 세계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세계라는 것을 간과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우리세계의 저편에도 아직 시간이 존재하는가? 개별심판인 사심판과, 최후의 심판인 공심판을 구별 짓는 사람은 저승에도 시간이 있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시간이란 마치 공간과도 같이 우리 현실세계의 한 기능일 뿐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숨을 거두고 하느님의 세계로 가는 바로 그 순간, 더 이상 시간 속에서가 아니라 현세의 모든 시간 저편에 실존하게 된다는것을 의미한다. 모든 사람이 비록 전혀 다른 시간에 죽었다 하더라도 ‘같은 시간’ 즉 영원한 순간에 하느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죽음을 통하여 모든 시간이 사라져 간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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