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내일의 강론]
<연중 제28주일>(2014. 10. 12.)(마태 22,1-14)
<혼인
잔치의 비유>
'혼인
잔치의 비유'(마태 22,1-14)에서
처음의
초대는 구약시대를 가리키고,
길거리에서의
초대는 신약시대를 가리키고,
혼인
예복에 관한 내용은 최후의 심판을 뜻합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구원 역사의 과거, 현재, 미래입니다.
지금은
신약시대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은 모두 길거리에서 초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사도들을
비롯해서 초기 교회의 신자들이었던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신앙인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혼인 예복을 제대로 입고 있는가? 입니다.
초대할
때 조건은 하나입니다.
혼인
예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잔치'는
하느님 나라, 구원, 생명을 뜻하고,
'혼인
예복'은 그것을 얻기 위한 충실한 신앙생활을 뜻합니다.
처음에
초대 받았지만 참석하기를 거절한 사람들은
혼인
예복을 입기를 거절한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초대 받은 사람들 가운데 예복을 안 입고 있다가 쫓겨난 사람은
예복이
없어서 못 입은 사람이 아니라, 있는데도 입기를 거절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고 싶어 하면서도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것은 싫어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자기가 길거리에서 갑자기 초대를 받았기 때문에
혼인
예복을 입을 여유가 없었다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마태 22,12)." 라는 말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똑같이 길거리에서 초대를 받았는데도
모두
혼인 예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길거리에서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갑자기 붙잡혀 간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도
정식으로 초대를 받았고, 그 초대에 응답해서 참석했습니다.
'부르심'은(초대는)
강요가(강제 명령이) 아닙니다.
신앙은
어쩔 수 없는 복종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또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권고'이고,
신앙은
각자 개인이 선택하고 결정해서 응답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에 사도들을 만나서 제자로 삼으실 때,
"나를
따라라." 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지만,
그
말씀은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명령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간 것도, 그리고 사도로 뽑힌 것도
그들
자신이 원했던 일이고, 자신들의 자유의지로 받아들인 일입니다.
종들이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초대할 때
아마도
그들은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을 것입니다.
"주인께서
당신들을 잔치에 불러 오라고 하십니다.
당신들은
잔치에 참석하기를 원합니까?"
"원합니다."
"그러면
혼인 예복을 입고 잔칫방으로 오십시오."
(사제
서품식 때의 질문과 응답은 모두 이런 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을
원합니까?" 라고 질문하면 "원합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원한다고
대답하고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은
처음부터
혼인 예복을 준비한 상태에서
초대
받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집으로 달려가서 혼인 예복으로 갈아입은 사람들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제대로 옷을 갖춰 입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짜로 원한 것이 아닌 것이 됩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마태 22,9)."
라고
명령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주인은
모든 사람이 잔치에 참석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들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마태 22,10)"
모두를
잔치에 초대하는데, 이 말을 혼인 예복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악한
사람은 아직 예복이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고,
선한
사람은 아직 예복을 안 입었지만
그래도
예복이 준비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라는 말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이 당신의 나라에 들어오기를 바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선포됩니다.
그러나
악한 상태 그대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우선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또
선한 사람이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고,
먼저
하느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하고, 그리고 그 부르심에 응답해야 합니다.
사도들이(선교사들이)
복음을 선포했을 때,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이 전부 다 악한 사람들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선한
사람들 가운데에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렇습니다.
안
믿는다고 다 악한 것은 아니고, 선하다고 다 믿는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선하게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이상으로 더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실천하는 믿음', 또 '실천하는 사랑'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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