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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성경 속의 여인들: 야엘, 그리고 유딧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1-08-09 조회수4,065 추천수0

[성경 속의 여인들] 야엘, 그리고 유딧

 

 

무서운 이야기다(판관 4-5장). 전쟁이야기며 그 이야기 안에 가나안의 장수인 시스라가 관자놀이에 못이 박혀 죽어간 이야기다. 판관기를 읽다 보면 죄다 죽이고 죽는 이야기들 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하여 다른 민족들에게 짓밟히고 그 후 반성하고 하느님께 돌아서서 간청하니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도와 다른 민족들을 무찌르고 도와주신다는 이야기들이 판관기 안에 수도 없이 반복된다. 읽기에 버겁고 무겁고 그래서 불편하다.

 

판관기 4장과 5장에 펼쳐지는 이야기 역시 그러하다. 끔찍한 살인이야기며 그 주인공은 카인족 헤베르의 아내 야엘이었다. 가나안 임금 야빈의 손에서 고통받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하느님은 드디어 움직이신다. 여예언자 드보라에게 명령하시어 바락이 가나안의 장수 시스라 군대를 무찌르게 하신다. 바락의 군대에게 패한 시스라는 카인족 헤베르의 아내 야엘의 천막으로 도망치는데, 거기서 시스라는 야엘의 손에 죽는다. 야엘이 시스라의 관자놀이에 말뚝을 박아 죽였다는 이야기를 담담히 소개하는 성경의 태연함이 놀랍다. 아무런 이유 없이, 뭐가 그리 원한이 깊었기에 이렇게 잔인하게 죽인단 말인가! 더욱이 하초르 임금 야빈과 카인족 헤베르는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다고 이야기는 전하고 있는데 말이다(판관 4,17). 놀라운 건, 이런 여인들의 무서운 사건을 판관기는 드보라와 바락의 찬미가로 종결짓고 있다는 것이다. “카인족 헤베르의 아내 야엘은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어라. 천막에 사는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어라.”(판관 5,24)

 

굳이 드보라, 야엘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톺아보자면, 20여년 동안 고통당하던 이스라엘의 호소에 하느님은 여지없이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시고 그 권능 아래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평온해진다는 의미를 건져 올릴 수 있을테다. 그런데…, 굳이 전쟁과 살인의 이야기로 묘사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것도 전쟁의 장수였던 바락이나 시스라가 아닌 천막 안에 조용히 머물던 야엘의 손을 통해 전쟁이 종결되는 이야기의 흐름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 아마도 판관기의 저자는 힘없는 여인을 통해 하느님의 가장 강한 권능을 드러내신다는, 그래서 가장 힘없는 존재 안에서도 하느님은 당신의 구원을 이끌어내실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일테다. 이러한 논리는 유딧기를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적군의 장수의 머리를 끊어낸 여인, 유딧은 아시리아의 대장군 홀로페르네스의 의기양양함을 여인의 갸날픈 두 손으로 꺾어 누른다. 힘없는 여인의 승리를 유딧기는 이렇게 묘사한다. “전능하신 주님께서는 그들을 여자의 손으로 물리치셨다. 그들의 영웅이 젊은이들 손에 쓰러진 것도 아니고 장사들이 그를 쳐 죽인 것도 아니며 키 큰 거인들이 그에게 달려든 것도 아니다. 므라리의 딸 유딧이 미모로 그를 꼼짝 못하게 만든 것이다.”(유딧 16,5-6).

 

인간의 전쟁 역사는 참혹하다. 대개의 전쟁은 남자들의 패악질로 시작되고 끝맺는다. 어느 장군이 어떤 전쟁에서 이겼다는 둥, 그래서 그 민족의, 그 나라의 영웅이라는 둥…. 다들 남자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전쟁은 참혹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전쟁의 뒤켠에서 묵묵히 자신의 가정과 자녀를 돌보고 지켜낸 여인들의 숭고한 용맹은 거의 잊혀진다. 전쟁은 철없는 남자들의 패악질일 뿐이다.

 

성경 속 여인의 용맹함은 이러한 철부지 남자들을 짓밟고 승리하신 하느님의 용맹함으로 묘사된다. 하느님은 힘없는 여인을 통해 세상을 호령하시는 것이 아니라, 힘없다는 여인들 안에서 전쟁의 참혹함을 끊어내고 계신다.

 

[2021년 8월 8일 연중 제19주일 대구주보 3면, 박병규 요한보스코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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