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성경] 도입, 시간 “거 뭐 재미있는 거 없냐?” 헛헛하게 내뱉는 찌든 일상의 냄새가 배어 있는 소리다. 이미 뻔히 알고 있는, 오직 나 자신이 해내야 하는 눈 앞에 펼쳐진 그 일에서 누군가가 나를 지금 당장 꺼내주길 바라는 마음도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초콜릿 토핑처럼 얹혀 있다. 톱니바퀴 같이 굴러가는 지친 하루를 떠나 스릴 있고 신선한 재미를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쾨쾨한 냄새나는듯한 처음 질문은 사실 일상을 아주 평화로이 지낸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만약 특별하거나 겪어보지 못한 사건 때문에 두 눈 부릅뜬 채 긴장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그 긴장 이면에는 어서 빨리 안정적이고 평탄한 시간으로의 회귀를 자연스럽게 바라고 있을 테니까. 일상 안에서 일어나는 긴장과 안정, 이 두 양극을 우리는 시간이라는 롤러코스터의 선로 위에서 오르내린다. 지난 지면까지 우리 삶의 중요한 공간인 집안의 일곱 장소를 살펴보았다. 개별 장소는 각각의 고유한 특성이 있으며 이를 성경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시도가 가능한 까닭은 세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의 보편적 가치가 동일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비록 성경의 표현양식들이 지금과 다르더라도, 그것은 시대적이고 지역적인 차이로 인한 것이지 보편적인 가치의 차이 때문인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살펴본 공간과 더불어 성경 세계의 보편적 가치를 들여다볼 수 있는 매개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시간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 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시간을 끊임없이 걸어가 일상을 만들어 낸다. 일상이라는 단어는 무엇을 의미할까? 일상을 뜻하는 라틴어 Quotidianus의 어원은 ‘주어진 날’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이 ‘주어진 날’ 동안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 올리며 잠에서 깨어나고 일자리에 늦지 않기 위해 분주히 출근 가방을 챙겨 집을 떠난다. 지친 몸을 쉴 수 있도록 잠시 멈추기도 하고 떠나왔던 가족의 냄새가 있는 보금자리를 찾아 돌아가기도 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낸다. 어제와 다름없이 뜻이 맞는 사람 혹은 맞지 않는 사람과 인사하고 말과 행위로 대화하며, 주어졌기에 꼭 해야 할 일들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그럭저럭 해결한다. 어깨에 놓인 세상과 가정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때가 있고 집과 차량의 유지 보수 때문에 머리 아파야 하는 때가 있다. 마트나 백화점의 원플러스원 혹은 명품세일 소식에 나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강박증이 생길 때 있으며 주식 차트의 빨간 파란 막대기 때문에 가슴 쓸어내릴 때 있다. 반복되는 일상이다. ‘주어진 날’이라는 ‘일상’은 이렇게 익숙한 습관과도 같은 사건들의 연속이다. 어쩌면 일상은 손에 익은 습관들로 엮인 천과 같은데 이렇게 습관들로 엮인 천 안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어떻게 말하고 생각하고 활동하는지가 담겨 있다. 습관의 영역은 사람들에게 현실이자 삶이며 일상이다. 그렇지만 이 일상은 늘 익숙함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연하고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고 이에 대해 의식적으로 깨어 생각하는 시간이 마련된다. 재미있는 것은 반복되어 익숙한 것이 우연하고 새로운 것처럼 우리 눈에 닥쳐올 때가 있다는 사실이다. 현대인들이 가진 위험성은 일상을 ‘주어진 시간’이라고 보기보다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데에 있다. 모든 시간이 전부 평평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 시간을 테트리스 하듯 쌓아 생산력을 높이려 든다. 이러한 생각은 종교를 가진 우리 안에서도 존재한다. 신앙생활이 원으로 된 여름방학 생활계획표의 한 꼭지에 쓰인 ‘성당 가기’처럼 될 때도 있다. 우리가 우리의 시간 중 한 꼭지에만 관여하시기를 바라는 그분은 사실 우리가 가진 시간을 허락하신 분이다. 우리는 그 시간 안의 일상을 살아간다. [2021년 9월 19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이동 전주주보 숲정이 3면, 이상훈 안토니오 신부(노송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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