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세례의 의미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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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5-08-28 | 조회수1,328 | 추천수0 | 신고 |
(십자성호를 그으며) 주님의 세례 축일 (나해) 이사야 42,1-4.6-7 마르코 1,7-11 2012. 1. 9. (월). 등촌3동 제목 : 세례의 의미 오늘은 예수님의 세례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더불어 우리가 받은 세례성사의 의미도 한 번 더 생각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세례축일이 해마다 한 번씩 돌아오지만, 일반적으로 우리는 내가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난, 세례 받은 날짜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축일을 기억할 것입니다.
세례성사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시작입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 안에 뿌려진 신앙의 시작인 이 씨앗을 죽이거나 죽게 내버려두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복음서의 다른 부분에 나오는 씨 뿌리는 비유를 예로 들면, 세례라는 씨앗을 받아들인 내 마음의 자리가 단단한 길이거나 돌밭이거나 가시덤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바꿀 생각을 하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살거나 저렇게 살거나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고 말하기 쉽습니다. 정말 다른 사람은 내가 어떻게 사는지 모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 자신과 하느님을 속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은 만고(萬古)의 진리입니다.
세례는 땅에 두고 가야 할 몸으로 세상에 태어나고 창조된 우리가 하느님의 축복에 함께 하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축복의 문 안쪽으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렇게 원론적인 이야기만 해서는 신선한 느낌도 없고, ‘그런 정도는 나도 안다’는 반발을 듣기가 쉽습니다. 그 이상의 다른 의미로 뭐가 있는지 알아볼 엄두를 내지 않으면서도 말입니다.
세례를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세례라는 문을 통과하기 전에, 우리의 위치는 하느님의 뜻이 실현된 창조물이요, 피조물이라는 것이 최고의 위치이지만, 세례를 통해서 ‘아들과 딸’이라는 자녀로 그 위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얼굴이나 겉모습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세례를 통해서 하느님에게서 오는 축복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권리를 얻기 위해서는 해야 할 당연한 일도 있을 것입니다.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축복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 실천해야 할 일은 이사야예언자의 선포에 나오는 말씀대로입니다. 드러나는 모습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위의 불꽃을 끄지 말고, 목소리를 높이지 말고, 공정을 펼치는 것이며, 보지 못하는 이를 보게 하고, 갇힌 이들을 풀어주는 일’입니다. 이런 일들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선택할 수 있다면, 이런 의무를 부과(?)하는 세례를 거부하고 싶고, 취소하거나 뒤로 물리고 싶다고 말할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선택으로 가능한 일이 있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들도 우리들 삶에는 있는 법입니다. 나는 신앙의 길을 시작한 사람으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피고, 나와 함께 사는 가족들도 그렇게 살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야 할 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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