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종의 노래. 이사야서 후편, 즉 제2이사야서의 “주님의 종”의 인품과 성격을 노래한 네 편의 신탁의 말씀(이사 42, 1~4; 49, 1~6; 50, 4~9; 52, 13~53, 12). 많은 해석자들은 이 네 편의 노래를 더 확장한다. 그래서 첫째 노래는 이사야서 42장 1~9절까지로, 제2의 노래를 49장 1~13절까지로 늘려 본다. 네 노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 노래(이사 42, 1~9): 주님은 당신 종을 “내가 선택한 종, 내 마음에 드는 종”이라고 부른다. 주님은 그에게 당신의 영을 내려 주신다. 이렇게 영을 받은 사람은 모세(민수 11, 17~25), 여호수아(민수 27, 18), 다윗(1사무 16, 13), 특히 당신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한 예언자들(즈카 7, 12; 느헤 9, 30; 이사 48, 16)이다. 이들은 주님의 영을 받고 카리스마의 힘을 발휘해 세계만방에 정의(=하느님의 뜻과 말씀)를 선포했다(1~4절).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유지하시는 주님은 생명을 주시고 보존하시는 분이라고 종에게 말씀하신다. 여기까지의 말씀은 독자로 하여금 주님 야훼가 종을 통해 완수하실 창조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깨닫게 하려는 준비의 서론이다.
6절에서는 종을 통하여 주님이 세상에 당신 정의를 이룩하고 질서를 올바르게 잡을 것이라는 의지를 표명한다. 그래서 하느님은 종을 “백성과의 성약”으로 내세우셨다는 것을 알린다. 여기서 백성이라고 한 것은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것인데 이스라엘은 온 인류를 가리키는 대명사이다. 종을 “성약”으로 세우셨다는 뜻은 종이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하나로 일치시켜 성약의 영원한 보증이 된다는 뜻이다. 종은 “만인의 빛”이라고 했는데 그는 소경을 눈뜨게 하고(42, 16·18), 옥에 갇힌 죄인들을 해방시킬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6~7절은 유다인들을 유폐 생활에서 해방시켜 준 페르시아 왕 Cyrus를 가리킨다고 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전장 41장은 Cyrus에 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8~9절은 다시 야훼에 관한 것인데 야훼는 이 위대한 일을 하신 주인이라는 것을 일깨우고 있다. 이 절들은 5절로 시작하는 부분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두 번째 노래(49, 1~13): 여기에서는 종이 말한다. 그는 모든 백성에게 자기가 모태에서부터 주님의 부름을 받았음을 알린다(cf. 예레 1, 5). 주님은 자기를 보호하고 준비시켜 당신 영광을 드러내는 힘 있는 무기로 삼으셨다(1~3절). 종의 사명은 아직은 성공하지 못했으나(4절), 그의 노력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일을 넘어서 뭇 민족에게 빛을 비추어 주고, 땅 끝까지 주님의 구원을 가져다줄 것이다(5~6절). 이제 짓밟힌 이스라엘이 제 모습을 회복할 것이며(7절), 주님은 회복된 이스라엘을 복된 땅으로 만들어 주실 것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신다(8~12절). 13절은 이렇게 자비를 베풀어주신 주님께 찬미와 감사를 올리는 짧은 노래로 마감한다.
셋째 노래(50, 4~9): 여기서 종은 주님이 베풀어 주신 도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주님은 종에게 잘 훈련된 혀를 주시어 지쳐 있는 자들을 일으키게 하시고 날이면 날마다 영감을 불어넣어 주신다. 어려운 지경에 빠져도 종은 야훼 주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다(4~6절). 적군을 대하고 있어도 주님의 도움이 있어 자기를 의롭게 해주시리라는 신념을 종은 잃지 않는다(7~9절). 10~11절은 백성이 만일 종이 비추어 주는 빛을 따라 걷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는 경고로 이 부분을 마친다.
넷째 노래(52, 13~53, 12): 이 부분의 노래는 종의 노래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노래이다. 이 노래는 제2이사야서에서는 볼 수 없는 용어들을 쓰고 있고 문체의 형식도 감사의 찬미가인지 장송곡인지 전례시(典禮詩)인지 규정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이 세 가지 요소들을 다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첫 줄에서 주님은 치욕을 겪는 당신 종을 드높이신다. 모든 민족이 종을 통해 주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보고 놀라 마지않는다(52, 13~15). 이 기이한 일을 많은 민족이 자신의 입으로 말한다. 하느님이 내세운 당신 종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자이며 마치 문둥이처럼 사람들이 그를 피한다. 그러니 그의 고통이 어떻겠는가(1~3절).
노래는 계속해서 그 종의 고통을 말하고 그 종은 이 고통을 많은 사람들을 위해 참아 받는다. 그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희생양처럼 도살자에게 끌려가 삶의 땅에서 제거된다(7~8절; 예레 11, 19 참조). 이 대목은 종의 죽음을 표현하는 것이 틀림없지만 간청의 시편에서 표현된 것처럼 은유적으로 죽음에 임박한 단말마의 고통을 뜻할 수도 있다. 양단간에 종이 다른 사람을 위해 죽으려는 의지가 뚜렷한 것은 확실하다. 여기서 종은 무죄하다. 그는 자기 죄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고 남들의 죄를 짊어지고 희생양으로 죽으려는 것이다(9~10절). 주님은 그를 생명과 행복과 자손과 번영, 그리고 영광으로 보상하실 것이다(10~12절).
성서 원문 비판가들은 이 네 편의 노래는 각각 독립된 글이었다가 하나로 모아졌다고 주장한다(B. Duhm). Duhm은 이사야서 주석에서 여기와 이사야서에 언급되는 야훼의 종은 이스라엘 국가를 가리킨다는 설을 반대한다. 그에 따르면 이 노래에서 나오는 야훼의 종은 알려져 있지 않은 어떤 개인이고, 이 노래를 쓴 사람은 그의 제자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 밖에 야훼의 종은 역사적 인물을 가리킨다는 설들이 나타났다. 혹은 Zerubabel, 혹은 Jehoiachim, Cyrus 또는 모세, 아니면 예언자를 가리킨다고 한다. 교부 시대부터 내려오는 전통은 이사야가 말하는 야훼의 종은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를 예언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초대교회 복음의 구전(口傳) 선포(Kerygma) 시대에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의 종이라고 설교했다. 베드로는 유다인들에게 예수를 하느님의 종이라 했고(사도 3, 12~18), 로마서는 이사야서를 인용하면서 “의로운 분”이라고 했다(이사 53, 11; 로마 3, 26). 베드로와 요한이 체포되었다가 풀려 나온 후 공동체는 기도하면서 예수를 하느님의 “거룩한 종”이라고 불렀다(사도 4, 27). 네 번째 노예의 노래는 확실히 예수를 가리킨다는 대목은 부제 필립보가 에티오피아 내시와 주고받은 대화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내시는 이사야서 53장 7~8절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이라고 한 것은 누구를 가리키는 말이냐고 물었고, 필립보는 성경 말씀을 자세히 설명한 다음 그 말씀은 예수를 두고 한 말이라고 대답했다(사도 8, 34).
복음서에서 복음사가들은 예수의 생애에서 중요한 시기마다 예수를 종의 노래의 인물로 설명한다. 예수의 세례 때 하늘에서 들려온 말씀 “…나의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마르 1, 9~11; 마태 3, 13~17; 루까 3, 21~22)은 시편 2장 7절을 반영하며 첫째 종의 노래(이사 42, 1)를 굳히는 말씀이다. 요한복음서의 “세상의 죄를 짊어지신 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 29·36)은 영락없이 제4 종의 노래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이사 53, 7)이다. 이사야서 53장 12절에서 그 양은 “많은 사람의 죄를 없앨 양”이라고 했다. 아람 원어 “talya' de 'laha”는 “하느님의 종”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고, “하느님의 양”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주님의 종에게 하느님의 영이 내린다고 한 것은(이사 42, 1) 예수의 세례 때 말 그대로 나타났고, 예수의 거룩한 변용 때에도 나타났다(마태 17, 5). 예수의 세 번에 걸친 수난 예고는(마르 8, 31~33; 9, 29~31; 10, 32~34) 나중에 실제로 이루어졌지만, 이 예고의 말씀은 주님의 종이 겪을 고난의 노래(이사 53, 1~9)를 그대로 반영한다. 최후의 만찬에서의 예수께서 “이는 새 계약을 맺는 내 피,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릴 피다”라고 하신 말씀은(마르 14, 22~25; 1코린 11, 23~27) 넷째 노래의 실현이며, “많은 사람을 위해”, “너희를 위해”, “많은 사람의 죄 사함을 위해”라고 신약성서에서 약간씩 다르게 표현되었지만 결국 남을 위한 희생의 피 흘림을 말하는 주님의 종의 운명이었고, “새로운 성약을 맺는 피”는 주님의 종의 역할이 화해시키는 데 있다고 한 주님의 종의 노래(이사 49, 5; 42, 6; 49, 8)의 반영이다.
루까복음에서 예수의 최후의 만찬 말씀은, 만찬이 끝난 후 주님의 종의 노래 넷째 노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끝난다. “그는 악한 자들 중 한 사람으로 취급되었다.” 요한복음서는 예수의 생과 죽음과 부활, 이 세 단계에서 주님의 종의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본다. 요한복음에서 예수의 생과 전교 활동을 그의 죽음과 부활에 연결시키는 것은(요한 12, 37~41) 주님의 종의 노래 넷째 노래(이사 53, 1)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이사야는 예수의 영광을 미리 보고 있었던 것이다.
신약성서 서간 편에서 예수의 고통과 영광의 신비를 주님의 종에 비추어 이해하는 대목이 여러 곳 있다. 사도 바오로의 그리스도론이 주님의 종에 중심을 두고 있지 않고 새로운 관점에서 취급하지만 그리스도–종이라는 정신만큼은 잘 알고 초대의 종–신학에 이 사상을 물려주었다(1코린 15, 1~3; 로마 4, 25). 필립비인들에게 쓴 편지에서 바오로는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를 “종의 신분을 취하신”(필립 2, 5~11) 분이라고 했고, 베드로 1서의 필자는 노예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엄격한 주인에게도 복종해 그리스도께서 부당한 권력자들에게 순종한 모범을 그들에게 보이라고 권고했다(1베드 2, 18~25).
이 권고의 말을 하면서 베드로 1서는 이사야서 53장 9절을 인용하고 53장 4~6절을 암시하고 있다. 히브리서는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사람들의 죄를 없이하려고 “당신 자신을 바치셨다”(히브 9, 28)고 한다. 마르꼬복음 10장 44~45절, 마태오복음 8장 16~17절과 이사야서 53장 4절, 마태오복음 12장 15~21절과 이사야서 42장 1~4절은 그리스도의 주님의 종 신학의 내용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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