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해가 가긴 갑니다만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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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15-11-09 | 조회수1,447 | 추천수0 | 신고 |
(십자성호를 그으며)
먼저 김진태 베드로님께서 저의 의견에 답변 글 주심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사실 저 역시 이 ‘약은 집사의 비유’(1-8절)에서 ‘불의한 짓’(5-7절)을 저지르는 이 ‘불의한 집사’(8절)를 영리하게 대처하였다고 칭찬하는 내용(8절 참조)이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저 역시 베드로 님의 의견에 십분 공감을 합니다만, ‘살인’과 같은 극단적인 비유와 대비하는 건 다소 무리가 있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한 이 ‘비유’는 어디까지나 이해를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한 비교 설명인 ‘사례’에 해당하기에 그 ‘속뜻’은 따로 있다고 여겨집니다. 루카 복음사가도 이 점에 착안을 해서 이 내용을 서술하였을 것입니다.
15장의 세 비유가 ‘자비’라면 이 약은 집사는 ‘자선’일 겁니다. 그리고 이 비유의 단락을 9절까지로 하느냐, 13절까지로 보느냐에 대한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후자인 13절까지로 보는 게 옳다고 여깁니다.
이런 전제로 저의 이 부분 묵상의 이해 내용을 부연코자합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어떤 부자’(1절)입니다.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19-31절)의 ‘어떤 부자’(19절)를 함께 연상해 보셔도 됩니다.
따라서 9절까지의 ‘약은 집사의 비유’와 13절까지의 ‘재물을 올바르게 이용하여라와 하느님이냐 재물이냐.’의 내용을 연결하여 ‘재물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에 대한 비유와 실제 예’라는 소제목으로 묵상해보시길 권유합니다.
이 13절까지의 키워드를 연결해봅시다. 괄호 안은 16장의 절입니다. 어떤 부자(1), 집사가 주인의 재산을 낭비(1), 주인에게 빚진 이들의 빚 탕감(5-7),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8),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11)의 핵심 키워드를 연속적으로 묵상해보시면 다소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이런 방법이 ‘언어유희’적이라고 합니다. 이 핵심 언어의 뜻은 ‘부’, 즉 재물은 어떤 의미에서는 ‘정당, 정직’의 의미보다는 다소 ‘불의, 부정직’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이해됩니다. 루카 복음사가도 이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어쩌면 ‘불의한 재물’로 여겨지는 자신의 ‘재산’을 어떻게 이용해서라도 부자에 상반되는 ‘가난한 이’를 도우라는 ‘배품’을 하라는 것일 겁니다. 이게 ‘자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일인칭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 그러니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또 너희가 남의 것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을 내주겠느냐?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9-13절)”
이 비유에서의 ‘약은 집사의 불의한 짓’에 대한 주인의 ‘칭찬’에 대한 혼돈된 생각이 연상되는 것에 대한 제 나름의 결론입니다. 일부에서는 ‘약은 집사의 신속한 대처’를 첫 번째 이유로 듭니다만, 저는 8절까지가 그 비유의 내용이라면 공감합니다. 그렇지만 13절까지가 이 비유의 연장이라고 보는 관점에서는 ‘부의 분배, 즉 자선’에 대한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9-13절 참조)하신 ‘재물의 올바른 이용’입니다. 이 약은 집사의 ‘영리한 대처’(8절)는 어떤 부자에 상반되는 어떤 빚진 자에 대한 배려인 ‘자선’일 겁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이 복음은 참으로 난해합니다. 그렇지만 이어지는 복음을 통해 종합적으로 묵상해보시면 이해가 좀 쉬울 것 같습니다. 재물은 어떤 의미에서는 불의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약은 집사는 주인의 재산을 일부 축낸 탓에 쫓겨나는 신세였지만 부자에게 빚진 이에게 탕감을 통해 배품이라는 선한 자선을 한 겁니다. 이를 두고 주인[여기에서 이 ‘주인’을 어떤 이는 ‘주님’ 또는 ‘루카 복음사가’로 지칭하기도 함]은 약은 집사를 칭찬을 합니다. 그래서 이 자선이라는 선행을 두고, 예수님께서는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13-15절)에게 ‘하느님이냐, 재물이냐?’라고 언어유희 적으로 꾸짖는 겁니다.
재물에 대한 탐욕은 우리를 눈먼 이로 만듭니다. 참으로 가련한 이는 가진 것이 적은 이가 아닌 그의 재산에 소유당한 이일 겁니다. 죽어서 그분께 가는 마지막 마당에 다려입는 수의에는 주머니가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에 있을 때 소유한 모든 것은 모두 다른 이의 것이 되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가진 것을 베푼 그 선행만은 영원히 자신의 이름에 새겨질 겁니다. 하느님과 재물을 결코 함께 섬길 수는 없죠. 불의한 재물로도 부단히 친구를 만들도록 합시다. 그들이 수의 입은 빈털터리인 나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그래도 일조는 할 터이니까 말이죠.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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