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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하느님 뭐라꼬예?: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생활이 주는 교훈(신명기)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4-13 조회수2,305 추천수0

[하느님 뭐라꼬예?]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생활이 주는 교훈

 

 

광야의 시련, 그 이유

 

“너희는 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인도하신 모든 길을 기억하여라. 그것은 너희를 낮추시고, 너희가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너희 마음속을 알아보시려고 너희를 시험하신 것이다.”(신명 8,2) 모세의 말씀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한 이유는 그 백성이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아니면 지키지 않는지를 시험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은 결국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하느님의 배려였다는 것이지요. 즉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하느님의 뜻에 순응하는, 겸손한 백성으로 만들어 번성하도록 이끄셨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마치 사람이 자기 아들을 단련시키듯,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단련시키신다는 것을 마음 깊이 알아 두어야 한다.”[신명 8,5]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배려와 이끄심은 하느님께서 그 백성을 단련하신 것으로 귀결됩니다. 무엇을 위한 단련일까요? 그들이 약속의 땅에서 편안하게 살게 될 때 마음이 교만해지거나, 유혹 앞에서 하느님의 은혜를 잊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지요. 여러 번에 걸쳐 “하느님을 잊지 않도록 하라!” “하느님께서 베푸신 일을 기억하라!” 강조한 신명기의 호소를 잊지 맙시다!

 

 

내 곁에 있는 하느님의 말씀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계명은 너희에게 힘든 것도 아니고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늘에 있지도 않다. … 사실 그 말씀은 너희에게 아주 가까이 있다. 너희의 입과 너희의 마음에 있기 때문에, 너희가 그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신명 30,11-14)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계명을 들려주며, 그 계명은 우리 가까이 있는 말씀이어서 늘 잘 듣고 실천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는 앞서 6장에서 모세가 말한 “쉐마 이스라엘!”(이스라엘아 들으라!)을 떠올리게 합니다.

 

“율법은 말합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너희 하느님은 …’ 성경은 ‘말하라’라고 하지 않고 ‘들어라’라고 합니다. 하와는 그녀의 주 하느님으로부터 듣지 않은 것을 남편에게 말했기 때문에 죄를 지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하시는 첫 번째 말씀은, ‘들어라’입니다.”[암부로시우스, ‘성직자의 의무’ 1,2,7.: 교부들의 성경 주해, 구약성경 III, 436]

 

 

하느님의 축복은 인간이 의롭다는 이유만으로 베풀어지지 않는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 그들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실 때, 너희는 마음속으로 ‘우리가 의롭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를 데려오시어 이 땅을 차지하게 하셨다.’하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신명 9,4)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염려하는 마음을 담아 의미심장한 말로 당부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구해내시고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하신 것을 두고, ‘우리가 이집트 백성보다 악을 덜 행하고 의롭게 살았기 때문에’ 라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드러내지 않고 마음속으로나마 생각하는 것도 안 된다고 합니다. 정녕 이스라엘은 목이 뻣뻣한 백성이어서 그런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면 더 잘못될 것이 분명하니, 아예 그런 생각일랑 조금도 말고 항상 겸손한 자세로 사는 게 낫다는 것이지요.

 

“주님께서 저 민족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시려는 것은 그들이 악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그들의 땅을 차지하러 들어가는 것은, 너희가 의롭거나 마음이 올곧아서가 아니다. 다만 저 민족들이 악하기 때문에 주 너희 하느님께서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시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약속을 이루시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께서 저 좋은 땅을 차지하라고 너희에게 주시는 것은, 너희가 의롭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신명9, 4-6)

 

이어지는 모세의 말씀에서 하느님의 축복이 이스라엘의 의로움 때문에 자동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님이 명확해집니다. 즉 하느님의 축복의 원인은 이스라엘의 의로움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그분의 호의인 것이며, 그러한 호의의 배경에는 다른 민족들의 악함과 그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아무 죄 없는 다른 민족들을 부당하게 다루신 게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어디까지나 당신이 할 일을 정의롭게 하신 것이고, 그러면서도 이스라엘에게는 그러한 하느님의 일이 축복이 된 것이지요.

 

그러면 의롭게 사는 것은 어떠한 삶을 말하는 것일까요? 성경책에 이런 해설이 달려있네요. “인간의 의로움은 하느님의 뜻에 순응하고 이웃에게 형제애를 베푸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자세로 인간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며, 하느님께서 그것을 인정하시고 그를 당신의 친구로 받아들이시는 것이다.”[주석성경 구약, 각주 10]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며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 바로 의로운 삶이라는 말입니다.

 

“내가 의롭게 살면 하느님의 축복이 있을 거야.” 이는 우리가 흔히 하는 생각이고, 그 자체로 잘못된 생각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지금 이렇게 하느님의 축복을 받으며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의롭게 살았기 때문이야.”라는 생각은 위험한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칫하면 하느님의 은총에 대해 감사하는 삶을 살기보다, 내 자신이 하느님의 은총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영적인 교만에 빠질 수가 있고, 급기야 대충대충 살아도 된다는 안일한 생각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느님의 은총이 없으면 나는 언제든 잘못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감사하며 그분의 말씀과 뜻을 따르려고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모세가 바친 중재기도의 능력

 

“너희는 광야에서 주 너희 하느님의 분노를 일으킨 일을 기억하여 잊지 마라. 너희가 이집트 땅에서 나와 이곳에 이를 때까지, 너희는 줄곧 주님을 거역해 왔다. 호렙에서 너희가 주님의 분노를 일으켰으므로, 주님께서는 너희에게 진노하시어 너희를 멸망시키려 하셨다.”(신명 9,7.8)

 

모세는 계속해서 하느님을 거역한 그들에게 하느님의 진노로 멸망의 위험이 닥쳤을 때의 일을 상기시키며, 그분의 분노를 잊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그러면서 모세는 자신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며 어떻게 하느님께 진노를 풀어드리기 위해 애썼는가를 말합니다.

 

“그런 다음에 (즉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하느님께 죄를 짓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계약판을 깨뜨려 버린 후에) 나는 전과 같이, 주님 앞에서 밤낮으로 사십 일을 엎드려 있었다. 너희가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러 그분의 분노를 돋우며 지은 그 온갖 죄 때문에, 나는 빵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았다. 그것은 주님께서 너희를 멸망시키려고 너희에게 품으신 분노와 열화를 내가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다.”(신명 9,18.19)

 

“또 주님께서 아론에게도 몹시 화를 내시어 그를 멸망시키려 하셨으므로, 나는 그때에 아론을 위해서도 기도하였다.”(신명 9,20)

“주님께서 너희를 멸망시키겠다고 하셨기 때문에, 나는 밤낮으로 사십 일을 주님 앞에 엎드려 있었다.”(신명 9,25)

 

하느님의 진노가 내리지 않도록 밤낮으로 기도하고 단식한 모세의 노력이 놀랍고, 이를 보시고 응답하신 하느님의 용서 또한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하느님께서는 모세의 중재기도를 어여삐 보시고 당신께 거역한 이스라엘 백성을 멸망시키지 않으셨지요. 그분께서는 백성을 위해 기도하고 단식하는 모세의 마음에 화답하여 당신의 분노를 다 쏟아내지 않고 멈추셨고, 그 백성을 정화하여 이끄셨으며, 마침내 때가 되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나에 대하여, 혹은 다른 누군가에 대하여 하느님의 진노가 내리실까 염려되십니까? 그러할 때 나 자신 혹은 다른 누군가가 기도하고 단식한다면 어떨까요? 모세의 간청을 들으신 하느님께서 우리들의 간청도 들어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번에도 나의 간청을 들어 주셨다.”(신명 9,19) 모세의 이 말씀이 우리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4월호, 조현권 스테파노 신부(대구대교구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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