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묻고답하기

제목 성경 따로, 교리 따로? 카테고리 | 천주교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6-05-05 조회수1,241 추천수0 신고

 

[신앙의 해 - 성경과 가톨릭교회 교리서] 성경 따로, 교리 따로?


 

고성균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막 50주년과 「가톨릭교회 교리서」 반포 20주년을 맞이하는 때에 ‘신앙의 해’를 선포하셨습니다. 이로써 교회는 2,000여 년 동안 지켜온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한다.’고 할 때, 우리가 성찰해 볼 것들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믿는가?’, ‘나는 믿는 이답게 살아가는가?’, ‘나의 믿음은 견고한가?’ 등의 질문을 하면서 우리는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신앙을 갖게 되었나?

‘나의 믿음’에 대해 고민하면서 스스로 자문해야 할 중요한 물음이 있습니다. “나는 어떻게 신앙을 가지게 되었을까?”

다음 성경 구절이 이 물음의 답을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10,14)

그렇습니다. 우리는 선포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삶을 보았기 때문에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2,000년 동안 신앙을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그냥 믿고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믿은 바를 선포하며 ‘전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은 어떻게 선포되고 전해집니까? 다양한 수단들을 통해 선포됩니다. 말, 글, 삶이 그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신앙을 가지게 되었는지 돌아봅시다. 우리가 성당에 나가기까지는 이미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가족, 친구, 이웃의 크고 작은 영향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당에 가서 미사에 참례하고, 성경 말씀과 강론도 듣습니다. 무엇보다 교리교육을 받으면서 그리스도교가 무엇을 믿는지를 구체적으로 듣습니다. 교리시간에는 교리서나 성경을 읽으면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믿고 실천하는 것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기도 했을 것입니다.

저는 요즘 근처 본당에서 중고등학생들에게 예비신자 교리를 가르치고 있는데, 가끔 이런저런 질문이 오가기도 합니다. 한번은 우리가 세례를 받으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는 점을 알려주며, ‘용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한 학생이 정의롭지 않은 상황에서도 용서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했고, 우리는 뜻깊은 토론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태 18,23-34에 나오는 ‘매정한 종의 비유’를 함께 읽으며, 하느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기에 우리가 감사와 자유를 체험하게 된다는 점과 우리가 용서받았기에 또한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을 돌아보았습니다. 학생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왜 “용서, 용서” 하는지를 조금은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 같았습니다.


성경과 교리

신앙을 선포하는 데에 중요한 수단은 성경과 교리입니다. 성경과 교리서를 읽음으로써, 그리고 성경 말씀을 듣고 교리교육을 받음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믿는 바에 대해 알게 되고,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과 교리는 똑같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성령의 감도로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한다면, 교리는 ‘신앙과 이성의 빛 아래, 기록된 하느님 말씀(성경)이나 전해지는 하느님 말씀(성전)을 올바로 해석할 의무를 지닌 교도권이 명료하게 체계화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단순히 하느님의 말씀들을 받아 적은 어록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어떠한 분이시고, 어떻게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며 인간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는 성령의 영감을 받은 여러 저자들에 의해 쓰였기 때문에 다양한 문학 양식(이야기, 시, 역사, 편지, 묵시문학 등)을 지니고 있습니다.

반면에 교리서는 명료하고 정제된 언어로 성경과 성전을 근거로 밝혀진 계시를 설명합니다. 그래서 체계적이고 교육적입니다. 읽는 이들이 그리스도교가 믿는 바를 잘 이해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비신자 때에, 교리를 먼저 체계적으로 배우는데, 이는 우리의 ‘신앙 감각’을 익히기 위해서입니다. 이 신앙 감각은 나중에 성경을 통해 성숙되는 우리의 신앙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이 덜 중요해서 나중에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중요하기에 이를 ‘올바르게’ 받아들일 준비로 교리교육을 먼저 하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은 다음, 우리의 신앙은 미사 때 선포되는 말씀과 이에 따른 강론, 사도직 활동, 그 밖의 교육들을 통하여 성숙되어 갑니다. 이 가운데 성경과 관련된 교육은 오늘날 교회에서 무척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는 교리나 신심이 신앙교육의 중심이었다면, 공의회 이후에는 교구, 본당, 수도회 차원에서 조직된 성경 공부로 교우들이 신앙의 원천인 하느님 말씀에 친숙해지고 이를 통해 풍요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배경이 되는 지리, 역사, 문화적인 지식에서 시작하여, 그 말씀이 나에게 어떠한 의미를 주는지 묵상하고, 이 말씀으로 기도하는 영성생활도 소개되었습니다.

이렇게 신자들은 교리교육과 성경교육을 충실히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성경 따로, 교리 따로?

성경과 교리를 통해 우리는 신앙을 갖게 되었고, 또 신앙을 성숙시켜 갑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내용들에 관한 이해는 성서적이면서 또한 교리적입니다. 전자는 구세사 안에서 이루어진 인물과 사건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고, 후자는 이에 대한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성찰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우들의 신앙생활을 살펴볼 때에, 그리고 제 자신을 바라볼 때, 왠지 이 성서적인 이해와 교리적인 이해 사이에 간격이 있어 보입니다. 우리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생각할 때, 그분을 이스라엘 민족들을 사랑하셔서 말씀을 건네신 분으로 여기기보다는 무작정 추상적이고 신비적인 어떤 절대자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성경에서 주 하느님에 대해 읽을 때, 이스라엘 역사에 함께하시는 그분께서 바로 삼위일체이신 분이라고 여겨지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그냥 고대 중동에서 사람들이 믿었던 다신들 가운데 하나인 민족 신의 영역으로 이해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교우들에게 ‘삼위일체’의 신비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하면, 자신이 이해한 대로 잘 설명하지만, 이에 대한 성서적 근거는 뭐냐고 질문하면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반대로 내가 읽은 성경 본문이 그 당시 배경 안에서 어떻게 이해될 수 있고, 심지어 내 자신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주는지도 성찰하지만, 이 본문을 바탕으로, 나를 포함한 교회 ‘공동체’가 어떠한 믿음의 내용을 갖게 되었는지, 곧 이 본문이 어떤 교리의 근거가 되는지를 파악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을 느낍니다.


성경과 교리를 함께

교리를 형성하는 데에 성경은 아주 결정적인 원천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는 데에 교리는, 하나의 ‘신앙 감각’으로서 성경을 일반 문학 작품이 아닌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이정표입니다. 이에 대해 「교리교육 총지침」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교리교육은 ‘영적 독서(lectio divina)’, 곧 교회 안에 머무르시는 성령과 일치하여 이루어지는 성경 봉독에 대한 참다운 안내가 되어야 한다. (…) 교리교육이 성경과 복음서들의 본문을 지속적으로 접하는 가운데 성경과 복음서들의 사상과 정신과 안목으로써 주입되고 고취되어야 한다”(「교리교육 총지침」, 127항).

성경을 읽을 때 교리의 안내가 필요하며, 반대로 교리 공부는 성경의 정신과 안목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단순히 그 당시 역사적인 배경 안에서, 또는 내 개인적인 경험 차원에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의 신앙 감각’으로 경청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말씀에 대한 공동체의 이해’는 같이 가는 것이며 이러한 결합은 사실 ‘말씀’이시자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베네딕토 16세께서는 교황 권고 「주님의 말씀」에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 이야기를 언급하시면서, 교리교육과 성경의 결합이 필요하고 이를 가능하게 하시는 분은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강조합니다.

“언제나 하느님 백성을 동반해야 하는 교리교육은 교회의 사목활동의 중요한 한 측면으로서, 이를 슬기롭게 사용한다면 하느님 말씀의 중심적 위치를 재발견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에 대한 루카의 기술은(루카 24,13-35 참조) 어떤 의미에서, 당신 자신 안에서 그 성경의 성취를 보여주시는 그리스도만이 해주실 수 있는 ‘성경에 대한 설명’을 중심으로 하는(루카 24,27-28 참조) 교리교육의 모델을 제시합니다”(「주님의 말씀」, 74항).

한 해 동안 연재할 ‘성경과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우리의 신앙과 관련된 중요한 주제들을 두고, 이에 대한 일반적 교리와 성서적 근거를, 한 개의 성경 본문을 선택해 살펴볼 예정입니다. 그리고 그 본문의 주인공인 ‘바로 그분’께서, 또는 ‘바로 그 사건’이 신앙과 이성의 빛 안에서 오늘날 ‘교회 공동체인 우리’를 통해 계속해서 기억되고 있음을 강조할 것입니다.

신앙의 역사적이면서도(경륜) 교의적인 면을(신학) 결합시키시는 분은 ‘말씀’이시자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가능합니다.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이 신앙의 해를 통해 우리의 믿음과 이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욱더 견고하게 해주시기를 청합니다.

고성균 세례자 요한 - 도미니코수도회 수사. 단순하고 즐겁게 형제들과 어울려 살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우리의 사명에 작은 도움이 되고자 노력한다. 현재 한국 도미니칸 평신도회 영적 보조자 소임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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