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겨자씨와 겨자나무 ‘아니, 이스라엘에도 유채꽃이 피네!’ 누구라도 봄에 이스라엘을 방문하면 보이는 반응입니다. 특히 갈릴래아 호수는 유채 닮은 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현무암도 많아 제주도와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유채꽃 같은 것이 겨자임을 알게 되면, 겨자나무가 어쩜 저렇게 작냐는 감탄이 또 한 번 터지지요. 겨자를 은행나무나 소나무처럼 키 큰 종류로 상상해왔기 때문입니다. 겨자는 일년초입니다. 갓 종류라 맛이 쌉싸름하고, 꽃은 2월 말부터 4월 중순까지 핍니다. 보통 사람 허리 높이로 자라는데요, 기름진 땅에서는 2미터 이상 큽니다. 성지에서 누리는 기쁨 가운데 하나는 성경에서 본 내용을 직접 확인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겨자씨의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와서 (…) 깃들인다”(마태 13,31-32). ‘겨자나무에 새들이 깃들인다.’는 말씀이 언뜻 이해하기 힘들죠. 나무라 하기엔 너무 작은 까닭입니다. 하지만 “겨자씨의 비유”라는 말마디에서도 보듯이 이는 어디까지나 비유입니다. 구약성경에서 나무는 왕조, 왕국, 수장의 상징이었습니다(이사11,1; 예레 23,5 등). 나무에 새들이 깃들인다는 표현도 구약성경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시편 104,16-17을 볼까요? “주님의 나무들, (…) 한껏 물을 마시니 거기에 새들이 깃들이고 (…)” 주님의 나무에 새들이 깃들인다는 표현으로 온 세상에 두루 미치는 하느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에제 31,6에는 ‘향백나무에 새와 들짐승이 보금자리를 마련한다.’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향백나무는 이집트 파라오, 새와 들짐승은 주변 민족들을 상징합니다. 이는 곧 파라오가 주변의 여러 민족을 자기 지배 아래 두었다는 뜻입니다. 다니 4,7-9에서는 바빌론 임금을 큰 나무에 비유하고, 온갖 새와 짐승이 깃든다는 표현을 써서 그가 지닌 권력을 암시합니다. 이런 비유가 예수님의 가르침에도 반영된 것이지요. 다만 예수님의 나무는 창공을 찌를 듯 높게 자라는 게 아니라 세상의 낮은 자들까지 껴안으려는 듯이 옆으로 뻗으며 온 들을 채웁니다. 겨자나무에 깃드는 새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감복한 세상의 민족들이 그분에게 모여오는 형상을 비유합니다. 그리고 겨자씨는 무씨 정도의 크기라, 사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씨앗은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 시대에는 겨자씨가 가장 작은 씨의 대명사처럼 회자되었습니다. 크기는 작은데 순식간에 자라 온 들을 채우기 때문입니다. 곧 씨앗 크기에 비해 생명력이 대단하여 작은 씨의 대명사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겨자씨의 비유로 천국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님을 알려주시려 했습니다. 매년 피는 익숙한 겨자 꽃처럼, 평범한 일상일지라도 소중히 살아간다면 그게 천국이라는 뜻이지요. 그런 일상이 모이고 모여 천국이 쌓이면 이웃에게도 나눠줄 수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이렇게 보면 겨자 꽃은 정말 하늘 나라를 닮았습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2년 5월 15일 부활 제5주일 의정부주보 6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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