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제병에 관하여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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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6-05-18 | 조회수2,421 | 추천수0 | 신고 |
성체용 빵(면병)과 성혈용 포도주 성찬식 빵은 라틴 지역에서는 8세기이래 누룩 없는 빵을 사용했다. 최후만찬 때 예수께서도 이와 같은 빵을 사용하셨을 것이다. 이른바 matzoh라고 부르는 빵은 파스카 기념에서 “눈물의 빵”, 다시 말해서 정처 없이 방랑 생활하는 백성의 빵으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교회 역사에서 초기 천년 동안은 서방이나 동방 교회에서는 성찬례를 위한 빵은 보통의 “일용할 빵”을 사용했다. 다시 말해서 누룩을 넣은 빵이었으며, 동방 교회에서는 오늘날도 이것을 사용한다. 대부분 동방교회에서 누룩넣지 않은 빵 (azymes)을 사용하는 것을 강하게 금지한다. 반대로 라틴 교회는 이 문제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피렌체에서 열린 일치 공의회 (1439)에서 동방과 서방의 서로 다른 사용은 단순히 인식되었고 인준되었다 (DZ 1303). 가톨릭과 일치한 몇몇 동방 교회들은 아직도 누룩넣은 빵을 사용한다. 이는 다른 한편, 밀로 만든 빵은 오늘날 보편적으로 모든 예식에서 사용된다. 지중해 연안의 문화에서 밀로 만든 이 빵은 “좋은” 빵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 자신이 보리빵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참조 요한 6,9.13). 라틴식 사용을 계속하는 것은 좋은 것이며 빵에 대한 질문에 신학적 이데올로기를 세우는 것은 아니다. 초기에 빵은 확실히 단순한 빵의 모양이었다. 주님께서 하나인 빵을 쪼개셨다. Fractio panis (빵 쪼갬)는 고대 교회에서 아주 오랫동안 실천되었다. 그리고 7세기 이후 서방교회에서는 Agnus Dei를 해석하는 찬가로서 빵을 쪼개는 동안 불렀다. 카롤링거 시대에 매우 이른 시기에 실천적인 의미에서 동전 크기 정도로 된 작은 빵 조각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빵에 대한 상징적인 힘(1고린 10,16-17)은 의심할 것 없이 약해졌다. 오늘날 큰 빵 한 덩어리를 사용하거나 큰 제병 하나를 사용하는 것으로 점차 되돌아오고 있다. 디다케(9,4)와 같은 초기 문헌에서 빵은 하나인 교회의 상징이다: “이 빵조각이 산들 위에 흩어졌다가 모여 하나가 된 것처럼, 당신 교회도 땅 끝들에서부터 당신 나라로 모여들게 하소서.” 포도주는 “포도 열매” (마태 26,29; 마르 14,25; 루가 22,18)로 만든 순수한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사제는 포도주의 순수성을 보살펴야 한다. 구약 시대의 유대인들에게 포도주는 축제의 상징뿐만 아니라 또한 땅의 상속을 의미했다. 고대에서 일반적으로 포도주를 마시기 전에 포도주에 물을 섞었다. 음식을 들기 전이나 중에 용기에 포도주와 물을 혼합하여 마셨다. 유스티노 이후 전례 사용은 미사에서도 역시 이러한 관습을 사용하였다. 아마도 예수의 최후 만찬에서도 그랬을 것이다. 혼합하는 것에서 나온 상징주의 해석이 생기게 되었다. 카르타고의 치쁘리아노 (Ad Caecilianum 13) 이래 이러한 해석은 널리 퍼졌다: “잔에 포도주를 물과 함께 혼합할 때,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결합된다. 만일 어떤 이가 포도주만 바칠 때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 없이 남게 된다, 만일 어떤 이가 오직 물만 바칠 때, 사람들은 그리스도 없이 존재한다.” 이 해석은 거의 모든 전례들에 의해 동일하거나 비슷한 형태로 취해졌는데, 병사의 창에 찔려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 (요한 19,34)에 관한 내용을 종종 첨가하였다. 이것과는 예외적으로 단성론 교회는 이러한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그들은 그리스도의 인성 위에 신성을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피렌체 공의회는 말하기를, “교회는 사제에게 성작에 물을 포도주에 혼합하도록 요구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 아마도 그렇게 하셨으며, 그리고 그분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함께 나왔기 때문이다 (요한 19,34)고 하였다. 이 신비가 혼합에서 새롭게 된다. 그리고 요한 묵시록에서 민족들이 ‘물’로 불려지고 (묵시 17,1.15), 포도주와 물의 결합이 또한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신자들의 결합을 드러낸다” (참조 DZ 1320). 공의회의 이러한 선언은 물론 신앙에 관한 교의적 가르침이 아니다. 그러나 이 선언은 동방과 서방의 서로 다른 교회들, 특히 여기에서는 아르메니아 교회와 로마 교회에서 상징주의의 합의를 가리킨다. 다른 한편, 루터는 주님의 만찬의 거행에서 혼합 안한 포도주를 사람의 도움 없이 그리스도 홀로 이루신 우리의 구원에 대한 모상으로 본다. 또한 그는 이러한 실천을 인간적인 첨가 없이 깨끗한 가르침의 대표로 보았다. 포도주와 물을 혼합할 때 외우는 미사전례서의 기도문은 고대의 전례 전승에서 유래한다: 포도주와 물의 합치는 우리 인간성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신성에 우리가 참여하는 상징이다. [전례의 숲] 빵과 포도주 - 성찬례의 재료
예물 봉헌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는 빵과 포도주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만찬에서 직접 당신 손으로 빵과 포도주를 들고 찬양기도를 바치신 뒤에, “이것은 내 몸이다, 이것은 내 피다.”하시며 제자들에게 내주셨습니다. 빵과 포도주는 미사에서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합니다.
교회 규정에 따르면 제병, 곧 미사 빵은 누룩을 넣지 않고 밀가루로만 만들어야 하며 오래 되지 않아야 합니다. 밀가루 아닌 다른 곡식으로 만들거나, 밀가루에 과일이나 설탕이나 꿀과 같은 다른 재료를 섞어서 만든 빵은 미사에서 쓸 수 없습니다. 나아가 제병은 신앙에 충실하고 전문 기술이 있는 사람이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제병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구를 갖추어야 합니다. 보통 봉쇄 수녀원에서 많이 만듭니다.
그리고 미사주는 포도나무 열매로 만들어야 하며, 다른 물질을 섞지 않은 순수 자연 포도주이어야 합니다. 포도주가 아닌 다른 술, 다른 음료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미사주는 시어지지 않도록 잘 보관해야 합니다. 또한 순수성이나 출처가 의심스러운 포도주는 절대 써서는 안 됩니다(“구원의 성사” 훈령). 한국에서는 한 주류회사에서 특별히 만든 것을 많이 사용합니다.
누룩 없는 제병은 큰 정성을 들여 만들어야
예수님은 어떤 빵을 사용하셨을까? 누룩을 넣은 빵이었을까 아니면 누룩 없는 빵이었을까?
성경은 단순히 빵이라고만 말합니다. 그런데 히브리인들은 파스카 만찬에서는 누룩 없는 빵을 사용하였습니다. 공관복음에 따르면 마지막 만찬은 파스카 만찬이었기 때문에 누룩 없는 빵을 썼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 따르면 파스카는 마지막 만찬 다음 날 시작하였기 때문에 누룩 넣은 보통 빵을 사용하였을 것입니다.
초기에는 신자들이 집에서 만들어 가져온 빵을 사용하였습니다(성 유스티노, 호교론). 신자들은 그 지역 관습에 따라 만들어 먹는 보통 빵을 가져왔을 것입니다(빵은 소금을 넣거나 넣지 않을 수 있고, 어떤 때는 기름을 넣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해에 한 번이 아니라 주일마다 거행하는 미사에서는 누룩 든 빵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동방 교회들에서는 누룩 넣은 보통 빵을 사용했습니다. 지금까지 계속하여 아르메니아 교회를 제외한 동방 정교회들에서는 엄격하게 이 규범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방 교회에서는 9세기 무렵부터 누룩 없는 빵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관습은 11세기에는 거의 의무로 변하였고, 1570년 비오 5세 미사경본은 미사에서 “라틴 교회 관습에 따라 누룩 없는 빵”을 써야 한다고 규정하였습니다. 누룩 없는 빵을 사용하는 라틴 교회의 관습은 마지막 만찬이 파스카 만찬이었다는 해석에 따른 것입니다. 누룩 없는 빵을 축성한 성체는 분배와 보관에 편리하였습니다. 누룩 든 빵에 견주어 가볍고, 잘 굳어지지 않으며, 쪼갤 때 그다지 많은 부스러기를 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편, 큰 동전과 같은 형태의 제병은 12세기에 나타납니다. 누룩 없는 빵으로 오늘날 미사에서 쓰는 하얀 제병입니다. 이러한 미사 빵은 신자들이 집에서 가져올 수 없고 수도원 같은 데서 전문적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중세 클루니 수도원 규정집에는 미사 때 쓸 누룩 없는 제병을 만들 때 지켜야할 자세한 지침들이 실려 있습니다. 성체로 축성되기 때문에 큰 정성을 들여 만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주례 사제의 제병과 신자들의 제병이 모두 같은 크기였지만 나중에 다른 크기로 만드는 관습이 생겨났습니다. 작은 제병은 영성체하는 사람이 많을 때 빵을 쪼개며 생기는 부스러기를 피할 수 있어 편리했습니다.
이러한 관습은 성체의 실제 현존에 관한 신학의 발전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신학에 따라 미사에서 성체 존경과 관련된 세세한 지침들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현행 미사 경본에 따르면 영성체 할 사람이 많을 때 또는 다른 사목 이유로 작은 제병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병, 곧 빵은 크게 만들어 쪼갤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쪼개는 동작으로 신자들이 한 빵을 나누어 먹으며 사랑과 일치를 드러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총지침 321). 다만 사목 이유에서는 작은 제병을 쓰는 것이 좋을 수 있다고 권고합니다.
미사에서 포도주에는 물을 조금 섞어야
빵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신자들이 가져온 포도주를 미사주로 사용하였습니다. 신자들은 당연히 예수님의 피로 변할 포도주의 품질에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투르의 그레고리오(+594)는 미사주에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합니다.
리옹의 한 과부는 죽은 남편을 위한 미사를 위하여 한 해 동안 날마다 집에서 질 좋은 포도주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차부제가 그 포도주 계속 마시고 대신 신 포도주로 채워놓았습니다. 경건한 과부는 날마다 영성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몰랐으나 어느 날 남편이 꿈에 나타나 부인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부인은 다음날 성혈을 모시며 그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요즈음에는 미사주로 백포도주도 많이 씁니다. 그러나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님은 당시 관습대로 적포도주를 사용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사에서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적포도주를 사용하였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16세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 당시 성작수건을 사용하는 관습이 퍼졌는데 이 때문에 백포도주를 많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적포도주보다는 백포도주를 사용하는 것이 성작수건 빨래에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미사에서 포도주에는 물을 조금 섞어야 합니다. 마지막 만찬 이야기를 전하며 성경은 물을 섞는 것에 관하여 말하지 않습니다. 물 섞는 예식에 관하여는 2세기 성 유스티노가 처음으로 말합니다.
고대 그리스나 팔레스티나 지방에서는 보통 포도주에 물을 섞어 묽게 하여 마셨다고 합니다. 포도주가 너무 강하고 진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이스라엘의 기름진 샤론 지방에서 만든 포도주는 물을 두 배 정도 섞어 타서 마셨다고 합니다.
포도주에 물을 조금 섞는 동작의 목적은 예식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현실의 이유로 포도주에 물을 섞었지만 나중에는 의미를 지닌 상징적 동작으로 변하였기 때문입니다. 카르타고의 치프리아노(+258)는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피를, 물은 그리스도교 백성을 가리킨다고 말합니다.
예외적으로, 미사에서 쓰는 빵과 포도주를 특별한 방식으로 만들 때도 있습니다. 미사에서 쓰는 빵은 밀가루로 만드는데, 밀가루에는 글루텐이라는 성분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지방변증” 또는 “글루텐 과민 장 질환”이 있는 사람은 보통 빵을 먹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을 위해 글루텐이 아주 조금만 들어간 제병을 만들어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알코올 의존이나 남용 또는 다른 병으로 술을 마실 수 없는 사제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적셔서 양형 영성체를 하거나 성체로만 영성체를 할 수 있습니다.
빵과 포도주는 주님께서 몸소 정하신 성사 요소
한편, 직권자는 이들에게 미사 때 포도즙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포도즙은 보통 포도주가 되지 않도록 알코올 함량을 최소화시킨 것입니다. 포도를 으깨어 짜낸 즙으로 막 발효가 시작된 상태, 또는 포도즙의 발효를 중단시켜 (얼려서나 본성을 변화시키지 않는 다른 방법으로) 보존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한편, 미사에서 빵과 포도주 대신에 밥이나 떡 또는 쌀로 만든 술이나 차를 사용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 시대 지중해 문화권에서는 빵을 주식으로 하였습니다. “빵을 먹다”라는 표현은 “식사를 하다”라는 뜻이었습니다(마르 3, 20). 그리고 특별한 식사 때는 보통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세상에는 밀 외에 쌀, 옥수수, 감자 따위를 주식으로 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습니다. 음료도 매우 다양합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미사에서 밥이나 떡, 그리고 술이나 차를 사용할 수 없을까하는 질문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떤 이들은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는 주님의 명령에서 “이”를 넓게 이해하면 교회가 바람직한 것으로 바꿀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여러 의견들이 있지만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빵과 포도주는 주님께서 몸소 정하신 성사 요소이기 때문에 변경할 수 없고 존중해야 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4월호, 심규재 실베스텔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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