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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구약 성경의 12 순간들10: 유배에서의 귀환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6-12 조회수1,484 추천수0

구약 성경의 12 순간들 (10) 유배에서의 귀환

 

 

기원전 539년, 바빌론을 무너뜨린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는 유배되어 있던 모든 민족들의 귀환을 허락한다. 기원전 597년 1차, 587년이 2차 유배였으니, 거의 50~60년 만의 일이다. 고향으로의 귀환. 꿈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바빌론에 있는 생활 기반들을 다 버리고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실 바빌론은 유배자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열어주었었다. 그들이 노예처럼 살았던 것이 아니다. 유배자들은 어느 정도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었고, 경제활동을 했으며, 자유로이 모임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중에는 부자들이나 세력을 갖고 있는 이들도 많았다. 그 기반들을 다 버리고 떠나기가 쉬울까? 더구나 50년이면 이미 세대교체가 되고도 남을 시간이다. 유배 1세대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바빌론에서 태어난 2세대, 3세대가 살고 있었다는 뜻이다. 오늘날 서양의 교포사회를 가면, 그곳에서 자라난 자녀들을 칭하며 ‘바나나’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겉은 ‘노란’ 한국인인데, 속은 ‘하얀’ 서양인이라는 의미란다. 귀환 시기의 바빌론 유다인들도 그랬다. 바빌론 제국에서 태어나, 상류 문화, 문물의 단맛을 접하며 자라온 이들이 정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싶었을까? 성벽조차 없는 예루살렘, 폐허 그 자체인 버려진 땅으로?

 

키루스의 칙령은 고향으로 가도 좋다는 것이지,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는 명령이 아니었다. 떠남은 쉽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바빌론에 남아있기를 원했다. 하지만 하느님 백성인 그들에게 예루살렘은 특별한 곳이었다. 신앙인들은 외쳤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곳이 우리가 살아야 할 땅이다!’ 어찌해야 할까? 무엇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다시 뜨겁게 만들어 약속의 땅으로 향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

 

성경, 특히 모세 오경에는 자신의 뿌리, 민족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담겨져 있다. 일제 강점기 때에 단군의 건국 사화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고 하나로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것을 이해한다면, 이 시대에 편집된 모세오경에 왜 그렇게 족보가 많은지 알 수 있다. 왜 모세오경의 중심이 약속의 땅을 향해 있는지 알 수 있다. 저자는 어쩌면,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아브라함이 모든 것을 버리고 약속의 땅으로 향했듯, 모세가 백성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향했듯, 우리도 그곳으로 향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창세 12,1). 아브라함에게 내리신 이 하느님의 명령이, 이제 어찌 아브라함만을 향한 것일까? 삶의 터전과 자라온 고향을 버리고 약속의 땅으로 향하라고 하시는 하느님의 명령은 이제 아브라함의 후손인 그들을 향한 말씀이시기도 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들의 응답뿐이다.

 

[2022년 6월 12일(다해)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원주주보 들빛 3면, 정남진 안드레아 신부(용소막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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