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 이스라엘 빵 가게에서 노릇노릇 구워 내는 빵을 보면 납작하고 둥그런 것이,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셨다는 빵도 이런 모습이었겠지 싶습니다. 지금은 먹을거리가 풍부하다 못해 식이 조절을 하는 시대이지만, 몇십 년 전만 해도 우리에겐 보릿고개가 있었습니다. 우리 부모와 조상들은 굶는 자식을 보며 파종할 씨앗으로 배고픔을 달래야 할지, 다음 농사를 기약해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옛 이스라엘도 상황은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시편 126,5-6에 그 흔적이 남아 있거든요. “눈물로 씨 뿌리던 이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이, 곡식 단 들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 옛 이스라엘에서도 가난한 이들은 보리 빵을, 부유한 이들은 밀 빵을 먹었다고 하니 ‘꽁보리밥’은 우리에게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2열왕 7,16에 따르면, 구약 시대의 밀 가격은 보리 가격의 두 배였습니다: “밀가루 한 스아가 한 세켈, 보리 두 스아가 한 세켈 하였다.” 마태 14,13-21와 루카 9,10-17 등에서는 예수님께서 오병이어(五餠二魚)로 군중을 먹이신 기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집트 탈출 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만나와 메추라기로 배 불리셨듯이 예수님께서는 빵과 물고기로 군중을 배 불리셨습니다. 요한 6,1-14에 따르면, 이는 어린 아이 하나가 내놓은 오병이어로 일어난 표징입니다. 곧 어린 아이의 오병이어가 주님 표징의 마중물이 되어준 셈인데요, 이 일을 기념하는 성전이 갈릴래아 호수 북서쪽에 자리해 있습니다. 4세기 후반 이곳을 방문했던 에제리아 수녀는 다음과 같은 순례기를 남겼습니다. “갈릴래아 호수를 바라보는 곳으로 카파르나움에서 멀지 않다. 일곱 샘에서 물이 나와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대추야자를 비롯한 나무도 많다. 이 기름진 곳에서 예수님은 오천 명 이상을 먹이셨다.” 일곱 샘이 있다고 쓰여 있듯이 오병이어 성지는 그리스어로 ‘헵타페곤’(일곱 샘)이라 일컬어졌습니다. 그 발음이 와전되어 지금은 ‘타브가’라 칭해지지요. 성전 제대 밑에 자리한 검은 반석이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감사드리신 곳으로 전해집니다. 제대 앞에는 비잔틴 성당의 유적인 사병이어(四餠二魚) 모자이크가 있는데요, 오병이 아니라 사병으로 표현된 까닭은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이 한 자리를 차지하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병이어를 내어놓은 어린이 말고도 당시 군중에게는 비상 식량이 조금씩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는 교통이 발달하지도, 식당 같은 시설이 흔하지도 않던 시절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선뜻 나누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 식량을 타인에게 주었다간 언제 굶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아이가 내놓은 음식을 예수님께서 나눠 주시는 모습에 덩달아 제 것을 꺼내다 보니 수천 명이 먹고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봅니다. 남은 조각만으로도 열 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고 하니 이는 분명 빵이 많아진 ‘기적’입니다. 곧 오병이어의 기적은 기쁨도 나누면 두 배가 된다는 속담처럼, 먼저 나눈 끝에 풍성하게 돌려받은 기적이 아닐까요?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2년 6월 19일(다해)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의정부주보 6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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