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1일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루카 16장 9-15절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돈보스코의 의미>
한 장애우들 시설에 미사를 봉헌하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미사 끝에 한 형제가 제게 다가오셨습니다. 살레시오회에서 왔다고 하니 당신도 세례명이 ‘돈보스코’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하셨습니다.
왜 세례명을 돈보스코로 정하셨냐고 여쭈었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돈’자가 들어가서 선택하셨답니다. 돈을 좀 많이 벌고 싶어서. 돈 많이 벌면 어려운 사람들 많이 도와주고 싶어서.
사실 ‘돈’(Don)이란 말은 이태리어에서 존칭에 해당됩니다.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위치가 있는 분들, 신부님 같은 분들의 이름 앞에 붙이는 존칭입니다. 따라서 ‘돈보스코(Don Bosco)’라는 의미는 다름 아닌 ‘보스코 신부님’이란 의미입니다.
그런데 사실 저희 살레시오회 창립자인 돈보스코께서는 살아생전 돈(錢)을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필립보 네리 신부님 같은 경우 “주님, 제발 저에게 돈이 쌓이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비오니 아무도 제게 유산을 물려주지 말게 하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하셨답니다.
왜냐하면 착하고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이자 사심이나 욕심이라곤 조금도 없으셨던 필립보 네리 신부님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막대한 재산의 기부를 원했고 유산을 남기려고 줄을 섰었답니다. 복잡한 절차, 계속 쌓이는 돈이 너무 귀찮았던 성인께서는 그런 기도까지 바치셨답니다.
그러나 돈보스코는 정반대였습니다. 누군가가 유산이라도 당신 앞으로 남겨주면 그렇게 기뻐하셨습니다. 틈만 나면 어디 ‘눈먼 돈’ 없는가 하고 주변을 둘러보셨습니다. 돈 냄새 나는 곳을 찾아다니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신의 보호 아래 있었던 수많은 청소년들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돈보스코의 두 손에 셀 수도 없이 많은 아이들의 생계가 달려 있었습니다. 돈보스코는 한평생 아슬아슬했던 통장잔고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습니다. 때로 수천 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내일 아침 먹을 빵이 없어 마음고생을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돈보스코는 천부적으로 대단했던 자존심까지 꺾어가며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했습니다. 정말 마음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며 사람들에게 손을 벌렸습니다.
이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예수님 시대 당시 지도층 인사들이었던 바리사이들 역시 얼마나 돈을 좋아하고 밝혔던지 루가 복음사가는 이런 사실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이 이 모든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비웃었다.”
바리사이들이 돈을 좋아하고 찾아다닌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돈보스코처럼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한 것이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자기 한 몸 잘 챙겨보려고, 사리사욕을 충족시키려고 그리도 혈안이 되어 돈을 따라다닌 것입니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예수님 말씀을 곰곰이 묵상해 봅니다.
사실 재물이란 것 좋은 것입니다. 어느 정도 재물이 있어야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도 갖춥니다. 사람 노릇도 할 수 있습니다. 문화생활도 누립니다. 봉사도 하고 자선도 베풀 수 있습니다.
늘 지나침이 문제입니다. 재물에 대한 과도한 집착, 재물의 노예에로 전락, 재물을 하느님 섬기듯 하는 모습이 문제입니다.
열심히, 그리고 정직한 방법으로 재산을 축척하는 일은 우리가 이 땅에 온 중차대한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성실하고 건전한 부자는 개인의 노력에 하느님 축복이 더해진 결과입니다.
중요한 것 한 가지는 재물에 모든 것을 걸지 말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먹고살만하면 시선을 이웃들에게 돌리라는 것입니다. 재물보다 훨씬 더 위에 있는 것들도 많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사랑, 사람, 우정, 의리, 신의, 그리고 하느님. (양승국 신부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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