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소돔과 고모라의 교훈 제가 이스라엘에서 지내던 초창기, 소돔으로 추정되는 광야로 하이킹을 떠난 적이 있습니다. 끝도 없이 펼쳐진 광야의 한 끝에서 하얗게 퇴색된 암석 하나를 주웠는데 성냥 냄새가 나서 깜짝 놀랐습니다. 같이 간 한 친구는 유황 불에 망한 소돔의 흔적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때는 위치도 모르고 따라다녔지만, 이후 그곳이 소돔과 고모라로 추정되는 남(南)사해 지역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죄 때문에 망한 도시로 성경에 자주 회자되고 인용됩니다(루카 10,12 등). 이 두 도시가 이야기의 중심으로 등장하게 된 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통해서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함께 살았지만 식구가 많아지자 분가를 결정합니다(창세 13장). 당시는 반(半)유목 생활을 했기에 목초지가 부족해지면 대가족이 모여 살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니 롯이 소돔을 택합니다. 척박한 주변에 비해 그곳에는 수자원이 비교적 풍부해 안락한 생활이 가능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곳은 이미 타락해 있었는데, 롯은 그걸 알고도(13절) 경제적 이점만 생각한 듯합니다. 그로 인해 일생일대의 환란을 겪게 되는데요(19장), 소돔의 타락을 유발한 원인도 경제적 안락으로 보입니다. 신명 32,15과 잠언 30,8-9은 생활이 너무 편하고 풍요로우면 하느님을 망각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위치는 창세 14장 아브라함의 전쟁 이야기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임금들이 참전했다는 그 이야기에 역청 수렁이 많은 “시띰 골짜기”가 언급됩니다(3.8.10절). 지금도 남사해 연안에서는 상당량의 역청이 나옵니다. 창세 14,3은 시띰 골짜기를 “소금 바다”라 칭해 그 가능성을 더 높여줍니다. 지금은 도시의 흔적 없이 바닷물과 광야만 있지만, 소돔과 고모라가 망한 뒤 물이 들어차게 되었는지도 모르지요. 실제로 사해 주변은 예부터 유명한 지진대입니다. 시리아에서 아프리카까지 이어지는 세상에서 가장 긴 단층의 일부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 시대에도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을까요? 지각의 일부가 열림으로써 억눌려 있던 유황과 가스가 터져 나왔을 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융성했던 소돔과 고모라를 하느님이 망하게 하신 건 비단 죄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회개’가 없었던 게 결정적 이유였습니다. 재앙을 앞두었던 니네베는 참회해서 구원받을 수 있었으니까요(요나 3장). 소돔과 고모라는 회개의 촉구가 도움이 되지 않을 정도로 도덕적 뒤틀림이 심했던 모양입니다. 과거에는 악으로 여겨진 일들이 반복되면서 무의식 중에 일상으로 둔갑해가는 현상, 그런 도덕 불감증이 두 도시를 움켜쥐었던 건 아닐까요? 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도덕이 밥 먹여주냐?’는 말이 돌지만, 소돔과 고모라의 예에서 보듯, 도덕은 진정 밥을 먹여줍니다. 사기와 편법, 억압이 판치는 사회는 오염된 물 속의 물고기처럼 서서히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지에서 발견하는 소돔과 고모라는, 우리가 악의 만연함을 알면서도 롯처럼 애써 무시하려 하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합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2년 7월 3일(다해)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 미사 의정부주보 6면, 김명숙 소피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