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맛들이기] 성경에서 ‘의로움’이란 구약 성경에서 ‘의로움’은 오직 하느님에게만 있는 속성으로 여겨졌습니다. 하느님께서 다스리실 때, 윤리 기준을 세우실 때, 심판하실 때 그 바탕에는 늘 의로움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시편 7,7-12; 잠언 8,20; 예레 12,1 참조). 그런데 인간의 의로움은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형성됩니다(시편 31,2; 이사 41,10; 예레 23,5-6 참조). 그리고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의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가져야 할 태도는 믿음의 태도입니다(창세 15,6; 하바 2,4 참조). 이스라엘에게 하느님의 의로움은, 특히 하느님이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계약의 내용을 실현하시기 위해 행하신 일과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의로움을 살기 위해 율법을 선택했습니다.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가나안에 정착한 뒤, 이스라엘은 무엇이 하느님의 의로움에 합당한 것인지 고민했고, 그 결과 수많은 율법으로 재생산되었습니다. 바빌론 유배는 율법에 소홀했던 이스라엘의 자기반성을 위한 시간이었고, 이는 더 구체적이고 더 명확한 율법의 준수를 부추기게 되었습니다. 율법은 조금씩 이스라엘의 삶을 옥죄는 심판과 단죄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런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율법에 따른 행위에 의지하는 자들은 다 저주 아래 있습니다”(갈라 3,10). 바오로 사도는 율법에만 의지하고 율법이 지향하는 궁극의 존재가 누군지 잊어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주받은 것’이라 비판한 것입니다. 구약에서 의로움의 개념은 신약에 그대로 계승되었지만, 그 의미는 좀 더 확대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면 하느님의 선물인 의로움(마태 5,6; 6,33 참조)은 하느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올바른 관계를 포함하는 삶의 특성을 의미했습니다(마태 23,38; 루카 18,9-14 참조). 예수님은 인간을 끝까지 신뢰하고 그 신뢰의 끝을 어리석고 비천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의로움을 완성시키셨습니다(로마 8,3 참조). 그런 예수님과 더불어 바오로 사도는 의롭게 되는 길을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하느님을 위하여 살려고, 율법과 관련해서는 이미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 2,19-20). 바오로 사도는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산다.’(로마 1,17)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믿음의 삶이 기쁜 소식, 복음이라 했습니다(로마 1,16 참조). 사랑하는 이들 안에 무모하게 의탁하며 무엇이든 내어주려는 믿음 안에 의로움은 싹트고 완성됩니다.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이사 11,6), 그리고 원수까지 사랑하고 비천한 이들까지 형제자매로 받아들이는 세상, 바로 그곳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의로운 세상이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만들어 가야 할 자리입니다. [2022년 7월 10일(다해) 연중 제15주일 수원주보 3면, 이승환 루카 신부(수원교구 복음화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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