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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하느님 뭐라꼬예?: 하느님 백성이 치러야 할 전쟁(신명기)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7-12 조회수1,792 추천수0

[하느님 뭐라꼬예?] 하느님 백성이 치러야 할 전쟁

 

 

전쟁에 나서는 하느님 백성의 자세

 

신명기가 전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할 ‘전쟁에 관한 법’은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됩니다. “너희가 적과 싸우러 나가서, 기마와 병거와 너희보다 수가 더 많은 군대를 보더라도, 그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신명 20,1) 어떻게 자신보다 더 많은 수의 군대를, 그것도 기마와 병거까지 갖춘 엄청난 규모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러하더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주 하느님께서 전쟁 가운데서 그들을 버려두지 않고 함께 계시기 때문이지요. 모세의 말에 의하면, 전쟁에 직면했을 때 사제는 백성에게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너희가 오늘 적과 싸울 때가 다가왔다. 너희 마음을 약하게 가지지 말고 두려워하지 마라. 당황하지도 말고 그들 앞에서 떨지도 마라. 주 너희 하느님은 너희를 위하여 적들과 싸우시러 너희와 함께 나아가셔서, 너희를 구원해 주시는 분이시다.”(신명 20,3.4)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과 함께 나가 싸울 것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지요. 이어 모세는 군관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하다고 했습니다. “혹시 너희 가운데 새 집을 짓고서 아직 봉헌하지 못한 사람, 포도밭을 가꾸어 놓고서 아직 그 열매를 맛보지 못한 사람, 여자와 약혼하고서 아직 그 여자를 맞아들이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그런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라.”(신명 20,5-7 참조) 새로운 일을 시작했지만 아직 마무리를 못한 사람이 전쟁에서 죽게 되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생기니, 그런 사람까지 싸우러 나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조치의 배경엔 ‘병사들에 대한 배려’와 함께 그들을 ‘제대로 뽑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병사의 많음보다 ‘하느님께 대한 신뢰’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깔려있는 듯합니다. 모세가 언급해야 한다고 한 사항이 또 있습니다.

 

“군관들은 백성에게 다시 이렇게 말해야 한다. ‘겁이 많고 마음이 약한 사람이 있느냐? 그런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라. 그런 자가 형제들의 마음을 제 마음처럼 녹아내리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신명 20,8)

 

겁이 많고 마음이 약한 사람은 전쟁에 나섰을 때 다른 형제들의 마음까지 약하게 할 수 있으니, 그런 사람은 그만 집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곧 그런 사람들은 하느님께 대한 형제들의 믿음을 약하게 하고 그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위험이 있으니 차라리 그런 그들은 같이 하지 않는 게 낫다는 것이지요. 모세가 한 이 모든 언급들을 종합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치러야 할 전쟁은 결코 인간적인 계산이나 힘으로써가 아니라, 오직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치러야할 신적인 업적의 성격을 지닙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대신하여 싸우실 것이니, 백성들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분을 따르는 ‘신뢰와 용기’가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하느님께서 주시는 승리의 원칙

 

역대기 하권 20장의 경우에는. 모압과 암몬 사람들이 쳐들어 왔을 때 유다 임금인 여호사팟이 온 유다에 단식을 선포하고 하느님께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의 손에 힘과 권능이 있기에 아무도 당신께 맞서지 못합니다. … 저희에게 심판의 칼이나 흑사병이나 기근과 같은 재앙이 닥친다 하더라도, 저희는 이 집과 당신 앞에 서겠습니다. 이 집에 당신의 이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곤경 속에서 당신께 부르짖으면, 당신께서 들으시고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2역대 20,6-9) 하느님께서는 여호사팟을 비롯한 온 백성의 기도를 들으시고 ‘회중 가운데에 있는 야하지엘’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저 큰 무리 앞에서 두려워하지도 당황하지도 마라. 이 전쟁은 너희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다. … 이 전쟁에서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다. 제자리를 지키고 서서, 주님이 너희에게 승리를 가져다주는 것을 보기만 하여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두려워하지도 당황하지도 마라. 내일 그들에게 맞서러 나가라. 주님이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2역대 20,15-17)

 

이 말씀을 신뢰한 여호사팟왕은 암몬과 모압에 맞서 싸우러갈 때, 거룩한 예복을 입은 사제들을 뽑아 다음과 같은 환호와 찬양의 노래를 부르며 앞서가게 하였습니다. “주님을 찬송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2역대 20,21) 전쟁에서의 승리는 인간의 힘으로 이루는 일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느님께서 몸소 개입하시어 주시는 축복’이라는 것이지요. 성경은 이스라엘 군대가 개입하기도 전에 하느님께서 싸워주시는 승리가 이미 이루어졌음을 전하고 있는 셈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의 시련의 때에 나와 함께 계시고, 또 친히 앞장서서 싸워주신다는 성경의 말씀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 각자는 나름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우리 영혼을 그릇된 길로 유혹하는 세 가지 원수[三仇]로 ‘마귀’와 ‘세속’과 ‘육신’을 들고 있지요. 이는 우리가 구원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마귀와 세속과 육신과 전쟁을 벌려야 하고, 그 전쟁에서 마침내 승리해야 천국을 얻는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내가 하느님을 의지하고 따르면 내 영혼이 치러야 하는 어떠한 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맙시다!

 

 

화친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대한 조치

 

“너희가 어떤 성읍을 치려고 그곳에 다가가면, 먼저 그 성읍에 화친을 제안해야 한다. 그 성읍이 너희의 화친을 받아들여서 문을 열면, 그곳에 있는 백성은 모두 너희의 노역자가 되어 너희를 섬기게 해야 한다.”(신명 20,10.11)

 

전쟁에 임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무조건 싸울 것이 아니고 일단 먼저 화친을 제안해야, 곧 항복할 기회를 줘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느님의 힘을 두려워하여 그분의 백성에게 항복한 사람들은 죽이지 말고 노역자로 삼아 자신들을 위해 일하도록 조치하도록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이어지는 신명기의 규정에 의하면, 화친하자는 제안을 물리치고 싸우려 하는 (가나안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성읍들의 경우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 성읍들을 포위하면 하느님께서 싸워주시고 그들 손에 넘겨주시는 성읍이니, 그곳의 여자들을 비롯한 모든 것은 전리품으로 삼고 그밖에 남자들은 모두 죽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성읍이 너희와 화친하지 않고 싸우려 하면 그 성읍을 포위하여라. 그러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 그 성읍을 너희 손에 넘겨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곳의 남자를 모두 칼로 쳐 죽여야 한다. 그렇지만 여자들과 아이들과 가축과, 성읍 안에 있는 모든 것, 곧 모든 노획물은 전리품으로 삼아도 된다.”(신명 20,12-14)

 

고대 근동의 문헌과 비문을 읽어보면, 아시리아의 왕들은 전쟁에 이겼을 때, 패자에 대하여 잔인하면 잔인할수록 잘한 일로 여겼다고 합니다. 이러한 기록에 비하면 패배한 적에 대한 처분을 규정한 이스라엘의 이 법령은 좀 더 완화된 셈이라 하겠습니다.

 

 

약속의 땅에 살던 종족들에 대한 조치

 

모세는 위에서 본 것처럼 화친을 제안하였을 때,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성읍과 받아들이지 않는 성읍에 대해 각각 다른 조치를 내립니다. 다음 모세는 하느님께서 주겠다고 약속하신 땅에 살고 있던 특정한 종족, 곧 가나안 종족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선포합니다. 그들의 경우에는 한명도 살려두지 말고 예외 없이 모두다 죽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들이 항복했을 경우를 고려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상속 재산으로 주시는 저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숨쉬는 것은 하나도 살려 두어서는 안 된다.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히타이트족, 아모리족, 가나안족, 프리즈족, 히위족, 여부스족을 모조리 전멸시켜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자기 신들에게 하는 온갖 역겨운 짓을 너희도 하라고 가르쳐서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께 죄를 짓게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신명 20,16-18)

 

‘숨쉬는 것은 하나도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의 대상으로 지목된 민족들은 창세기 15장에서 하느님께서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실 때 언급한 가나안 땅의 사람들입니다. 이는 탈출기에서도 언급되어 있는데, 하느님께서 불타는 떨기 속에서 나타나시어 모세에게 한 말씀이 그것입니다. “내가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에서 구하여, 그 땅에서 저 좋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족과 히타이트족과 아모리족과 프리즈족과 히위족과 여부스족이 사는 곳으로 데리고 올라가려고 내려왔다.”(탈출 3,8. 사도 13,19 참조) 구약성경을 보면, 모세오경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땅’이라는 주제로, 여호수아기와 판관기는 그 약속의 실현이 되는 ‘가나안 정복과 정착’을 주제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가나안에 사는 민족들에게는 왜 이토록 엄격한 처벌이 요구되었던 걸까요? 가나안은 지리적으로 여러 문명이 만나는 교차점에 위치해 있었고, 각각의 임금이 통치하는 독립된 도시국가들을 형성하여 상당히 발달한 문화를 누리던 지역이었습니다. 가나안에는 야훼 하느님께 대한 신앙에 직접적으로 반하는 바알신을 숭배하고 윤리적으로 부패했던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가나안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복당한 후에 그들 속에 섞여 살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쳤습니다. 신명기가 말하는 전쟁에 관한 법에 의하면, 이런 모든 것을 미리 아셨던 하느님께서 그들을 전멸시키라는 명을 내리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전쟁에 관한 법을 보며,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 유익을 줄 전쟁을 벌일 다짐을 해보자는 생각을 해봅니다. 즉 하느님을 향해 나가는 길에 방해가 되는 것들과 싸움을 벌여보자는 의식, 하느님께 반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없애버린다는 각오, 이런 다짐들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것입니다. 이런 각오로 하는 복된 전쟁에 분명 하느님께서 앞장서 싸워주실 것이니까요!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7월호, 조현권 스테파노 신부(대구대교구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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